남편와 싸우고 시어머니를 찾아갔다
승현으로 인해 속상한 마음이 들 땐 하소연할 곳이 필요했다. 내 대나무숲은 항상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뿐만이 승현의 흉을 흉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흉보는 며느리 대처법을 알고 계셨다.
"어머, 그거 미친놈 아니니? 내가 그걸 낳고도 미역국을 먹었구나."
"어머니... 그렇게까지..."
"정윤아,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초장에 확 잡아야 돼. 다 뒤집어 버려."
"어머니... 그렇게까지..."
내 남편을 나 말고 욕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 한 사람, 시어머니뿐이다. 나보다 더 크게 화를 내주는 시어머니를 보면 이상하게 금세 마음이 누그러들곤 했다. 속이 시원한 대신 뒤이어 시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긴 해야 했다. 지나간 세월, 시아버지가 한 잘못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무 데도 얘기할 곳이 없었구나. 그러니 지금까지 이토록 한이 맺혀있지.'
그 시절은 참는 게 아내의 미덕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남편들은 사과하는 법도 잘 몰랐을 것이고. 그로 인해 참기만 한 마음은 그렇게 곪아 아무리 고름을 짜내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친정부모님도 없이 그 시절들을 견뎌낸 어린 나이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게다가 딸도 없이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는 그 힘든 마음을 어디에 기대며 사셨을까.
한 시간 정도 나 반, 시어머니 반 각자 남편을 욕하고 끊을 때쯤 시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윤아, 그래도 너는 승현이 사랑해서 결혼했잖아."
시어머니의 그 말은 꼭 이렇게 들렸다. 너의 사랑에 대해선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라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어느새 화는 누그러져 있고 내가 사랑하는 승현의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매사 다정하고 뭐든 다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나의 남편. 잘생긴 건 덤.
그런 승현이기에 당연히 연극팀 MT를 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승현은 결국 갔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한동안 멍했다. 나는 무작정 차를 몰고 시댁이 있는 김포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식탁에 앉혀놓고 밥부터 먹이셨다. 난 한 번 찐 살은 도통 빠지지 않는 편인데 당시 3kg이나 빠져있었다. 시어머니의 밥은 따뜻하고 맛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면서도 밥은 다 먹었다. 밥을 다 먹자 시어머니는 과일까지 내오시며 내 이야기를 찬찬히 다 들어주셨다. 중간중간 '이 미친놈!' 추임새도 빼놓지 않으셨다.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다 털어놓으니 덜어낸 말만큼 감정도 가벼워졌다. 모든 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 머쓱해졌을 때 시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셨다.
"승현이 어디야! 당장 오라그래! 정윤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아주 혼구녕을 해줄 테니까."
내가 온 이유를 시어머니에게 대충 들은 시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다.
"아버님... 그렇게까지..."
나는 시아버지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 승현을 변론해야 했다.
"연극은 팀워크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그 팀 연출이 보통이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갔겠죠."
어라? 나 왜... 화가 났었지? 호르몬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안방까지 내주시며 자고 가라고 하셨다. 그날 밤, 시어머니의 체취가 묻은 낯선 침대에 누워 나는 달게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생리가 터졌다. 첫 번째 인공수정은 실패였다. 시어머니에게 이야기하자 다음엔 잘 될 거라 위로해 주셨다.
점심쯤, 어쩐 일인지 시동생까지 김포 집으로 왔다. 나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임신이 안 됐으니 술을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소주 한 병을 시켜주셨다. 나는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내 편을 들어주시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이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부모님은 승현과 나를 두고 봤을 땐 내 편이 아니라는 걸. 아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저 철없이 넋두리하는 날 달래주신 거겠지.
시아버지는 대리비까지 손에 쥐어주셨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며 다짐했다. 다시는 시어머니에게 그녀가 끔찍이 사랑하는 남자, 승현의 흉을 보지 말아야지. 그리고 다시는 우리 둘의 일로 시부모님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아야지.
집에 도착하자 MT에서 돌아온 승현이 있었다. 승현은 날 맞이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평소 같으면 사과를 받고 얼렁뚱땅 넘어갔겠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인공수정이든 시험관이든 계속해야 할 텐데 다시는 서로 이런 실수로 상처 주지 않아야 했다. 충분한 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승현도 나도 서로의 이해만 바라고 있었다. 나는 억한 심정이 들었다. 아이를 가지려고 일도 그만두었고 아이를 가지는 과정도 여자만 너무 힘든데 왜 남편은 자기의 상황까지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걸까. 앞으로 임신, 출산, 육아를 하는 과정에는 얼마나 더 많은 나 홀로 희생이 필요한 걸까. 난 문득 모든 것이 자신 없어졌고 임신도 결혼도 놓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1년 전 그때 나와 승현은 둘 다 부모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는 불현듯 찾아와 부모가 되게 만들지만 어떤 아이는 부모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찾아오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