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랑 대화해본 적 있으세요?
내가 목소리를 다듬으며 얻은 것들
이 글은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체'로 써보려고 해요.
처음 아나운서를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MBC 전종환 아나운서와 허일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종환 아나운서처럼 부드러우면서 힘 있고, 허일후 아나운서처럼 중저음의 굵고 단단한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느 지망생들이 그랬듯 연습을 했지요. 목소리를 '고치려는' 연습 말이에요.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 아" 소리를 내며 목을 풀고,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입을 크게 벌려 간판에 적힌 글자들을 읽었고요. 전철 안에서는 선 채로 복식호흡을 연습하고, 퇴근 후에는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했어요.
그러기를 몇 년, 비록 원하던 지상파 아나운서는 되지 못했지만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 마이크를 잡기도 하고 스피치 강사로서 수강생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이런 말들을 듣게 되었다는 거예요.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저도 강사님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어요."
'누구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라고 말했던 제가 그런 말을 듣게 된 거예요.
쑥스럽고 민망하면서도 고마운 칭찬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말을 듣는 입장이 되어 보니 느끼는 게 몇 가지 있더라고요. 먼저,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목소리가 될 수 없다'라는 거예요. 앞서 말한 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저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연습을 했지만, 저는 그 아나운서들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질 수는 없더라고요. 사실 당연한 말이잖아요. 똑같은 신체를 가진 게 아니고 성대의 생김새도 다를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계속 비교하면서 자책을 했거든요. 완벽히 똑같아질 수 없는데도 말이죠.
다음으로 느낀 건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정말 많다'라는 거예요. 저도 '목소리가 좋다'라는 말을 듣는 입장이 되었지만, 제가 듣기엔 저보다 목소리가 더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심지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할 정도로 멋지고 예쁜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들도 있고요.
'나는 몇 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다듬었는데, 그냥 타고난 목소리가 저렇게 좋다니'
그때 알았어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요.
'내 목소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나로 존재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러려면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내가 내 목소리를 좋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내 목소리의 장점을 찾고 그걸 더 발전시키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럴 때 비로소 나에게 어울리는 나만의 좋은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이고요. 목표를 세우는 건 도움이 되지만, 비교하고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었죠.
그래서 저는 목소리는 고치는 게 아니라 다듬는 거라고 생각해요. 병원을 가야만 하는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내 목소리는 없애야 하는 병이나 바로 잡아야만 하는 잘못이 아니거든요. 그저 아직 다듬지 않은 원석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가슴이 아닌 배와 몸통이 부풀게 해야 하고, 자음과 모음의 정확한 소리를 내기 위해 입술과 혀를 바삐 움직이려고 하다 보니 내 몸을 컨트롤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목소리를 다듬으면서 깨닫고 얻은 게 있었어요.
말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복식호흡을 연습하면서 차분함과 여유를 얻었고, 발음을 또박또박 정확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촘촘하고 세세하게 보면서 읽다 보니 어떤 상황이나 문제들을 마주했을 때도 제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지 않고 꼼꼼하게 보려는 자세를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탁 트인 발성을 만들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질러 보니 목소리를 키워야 할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누구'와 똑같은 목소리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이니까요. 나의 입술과 나의 혀와 나의 몸과 대화를 하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다듬어 가는 거예요. 어제는 안 되었던 게 오늘은 될 수 있고,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나를 더 성장시킬 테니까요. 그렇게 나를 알아가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