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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Jul 31. 2022

인정 좀 해주지 그래

그곳에서 만난 목소리들

몇 년 전, 독일의 한 남성이 이슈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평생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금수저여서 그랬을까. 아니다. 하르츠 피어(Hartz-IV)라는 정부 보조금 덕분이었다. 무료 의료보험과 침실이 딸린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제공받고, 매달 지급받는 한화 약 50만 원 정도의 보조금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왠지 게으르고 은둔의 삶을 살 것 같지만, 오전 6시에 기상을 하고 이웃들도 만나며 철저한 자신만의 루틴으로 지냈다고 한다. 신경 쓰는 게 싫어 이성은 만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인생을 산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지만 내가 독일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게 아니니 굳이 깊게 생각해 볼 필요는 없겠다.




스물네 살, 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직업을 가졌다.

학창 시절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슈퍼마켓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돕긴 했지만, 경제활동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부모님이 주겠다는 일정의 급여도 받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대학 학과의 조교가 되어 교직원으로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직업을 거쳤다. 직업도 다 다르고 그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도 모두 달랐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 조교

나는 체육학과 실습 조교였다. 골프실, 배드민턴장, 마사지실, 체육관 등 실습수업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습실의 물품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각종 스포츠 대회 출전 등을 관리했다. 행정 조교도 마찬가지이지만 담당 교수님들과 소통을 자주 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소통 방식에서 발생했다. 대학에는 정규직 교수인 전임교수 외에도 겸임교수, 시간강사 등 계약직 교수들도 있다. 학생들은 정규직 교수든 계약직 교수든 당연히 모두 같은 '교수'로 볼 것이다. 그건 조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교로서 정규직 교수와 계약직 교수를 구분해서 대할 리 있겠냐마는 간혹 일부 계약직 교수들 중에는 정규직 교수와 같은 대우(?)를 받길 원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전제로 깔리는 것이 '학번'이다. 체육학과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출신 학교와 상관없이 본인의 학번을 언급하며 마치 후배에게 일을 시키듯 지시하고 우위에 서서 대우를 받으려 했다.


영업사원

처음부터 영업직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동기들이 그랬듯 체육지도자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졸업 후 조교를 했기에 현장지도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택한 건 대형 피트니스센터에서 회원들을 유치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내가 일하던 지역은 이미 여러 곳의 대형 피트니스센터들이 있었다. 공급이 충분하니 수요가 아쉬울 일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아쉬운 건 공급을 하는 쪽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갑과 을의 위치가 정해진다. 일반화를 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본인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돈이 얽혀 있는 상황이라면 어깨를 으쓱하는 것뿐만 아니라 턱도 들린다. 그러고는 이런 눈빛을 발사한다.

'실적 올리고 싶으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설득해봐'


전화상담원

아나운서 아카데미 수료 직후, 돈을 벌어야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구했다. 마침 6개월 단기 계약의 전화상담원 자리가 있어 시작했다. 그 안에 아나운서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그랬다.) '컴패션'이라는 해외 어린이 후원 단체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후원자들을 대하다 보니 일반 콜센터보다는 비교적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청일점이었던 난 다소 격앙된 분들과 통화할 일이 잦은 편이었다. (어쩔 땐 일부러 자원한 부분도 없지 않다.) 사실 격앙된 분들의 대다수는 오해가 풀리면 금세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외는 어디에나 있는 법. 전화를 받고 있는 상담원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니 눈에 뵈는 게 없는지 폭언을 폭격하기도 한다. 한 시간 동안 듣고 있노라면 귀가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청원 경찰

6개월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방송사에 취업하지 못했다. 아나운서 아카데미 주변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근처 은행의 청원 경찰이 되었다. 은행원은 아니었지만 은행원 옆에서 일을 하며 느낀 바로는, 은행은 복불복이다. 어느 지점에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 '신촌역 6번 출구 앞 10미터'라는 초역세권 입지 덕분(?)인지 대학생, 유학생, 상인, 직장인, 주민, 외국인 등 하루 평균 방문 고객이 300명인 곳은 천국일 리 없었다. (역시 급여가 좀 더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화 [모던 타임즈] 속 찰리 채플린처럼 매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원활히 순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순환이 끊어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강성 고객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웬만한 고객은 다 기억하고 있던 나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큰소리는 기본이요, 자녀 혹은 손주쯤 되는 은행원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심한 경우 쥐고 있던 통장이나 카드를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는 꼭 이런 대사를 날린다.

"내가 이 은행이랑 몇 년을 거래했는데!? 지점장 나오라 그래!!"


단편적으로 쓰긴 했지만, 공통점을 발견했는지.

내가 만난 대학의 교수, 헬스장의 회원, 후원 단체의 후원자, 은행의 고객. 만난 곳도, 만난 사람의 역할도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대우받길 원했다. 각자의 역할을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혹은 그 이상의- 대우를 원한 것이다. 왜일까. 왜 그토록 인정받길 원했을까. 사실 '인정을 받는다'라는 표현 자체가 아이러니한 것 같다. 그들의 역할이나 당시의 내 역할은 인정을 해주고 인정을 받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 그런 시스템이 존재할 리 없었다. (조교가 교수를 교수로 인정해야 교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정과 대우를 원하는 태도는 존재했지만, 그들에게는 애석한 점이 있었다.


내가 만난 '교수'는 수업 준비가 안 된 채 오기도 했고 조교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수업에 늦기도 했다. 그 '회원'은 터무니없는 할인과 있지도 않은 혜택을 요구했고, '후원자'는 실제 후원자가 아니었다. 출처 모를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전화해서 '후원자'인 척 다짜고짜 따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객'은 계좌는 있지만, 거래를 거의 한 적 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장기간 거래를 하지 않은 고객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 입출금 거래가 없으면 한도가 자동으로 줄어든다.)

 

다산 정약용은 논어의 한 구절을 보고 이렇게 풀이했다.


남에게 인정받는 데 주력하는 사람은 행동이나 실천보다 말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말은 나의 필요와 요구를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무시당하기보다 인정받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인정 욕구에 과몰입하는 순간, '역할'은 '권력'으로 변질되어 '착각의 무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서로의 역할에 맞는 행동과 말이 만들어낸 소통보다는 권력의 말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마치 '나 좀 알아줘'라고 응석을 부리듯 말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반면교사가 필요했던 순간의 단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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