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나를 놓쳤더니
또 업데이트 문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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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알고 있어.'
노트북에서도 스마트폰에서도 업데이트 안내 문구가 뜰 때마다 봤던 문구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팝업창을 닫았다. 사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으니까.
오랜 지인에게서 몇 년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순간 숨을 고르는 게 느껴졌다. 무슨 중요한 말이 이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를 부탁할 일이 또 생겼나.'
"나 우울증 약 먹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당황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3초. 흔히 방송에서는 정적이 3초 간 지속되면 방송사고라고 부른다. 다행히(?) 3초를 넘기지는 않은 것 같다.)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라는 덤덤한 그의 목소리에 맞추어 최대한 담담하게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복용했는지 묻고 답하며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찾아갈 테니 만나자는 말을 건넸다. 흔쾌히 알겠다고 하는 대답에 며칠 후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전철에서 내려 광역버스로 환승했다.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만난 그의 모습은 몇 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가볍게 안부를 묻고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러 자리를 이동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였다.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마웠다. 용기를 내어 말해주어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용기 내어 담담하게 묻기로 했다. 어느덧 이십 년에 가까워진 인연의 시간. 그때의 그는 강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강해 보이려 했다. 올곧음을 잃지 않으려 했고, 연약한 마음을 감추려 굳세게 행동했다. 옅은 미소를 보이며 알고 있었냐 말하는 그.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일을 하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당혹스러웠단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이유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계속되었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보기만 해도 예쁜 자녀들과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왜...' 그러다 거실 창밖을 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단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며칠은 좋았는데,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집. 그때쯤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인연의 시간이 긴 관계가 그렇듯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전에는 한 번도 묻지 않던 것을 묻는 게 아닌가.
"넌 요즘 관심사가 뭐야?"
나는 이런 주제를 좋아해 왔지만, 그는 아니었기에 더 놀라웠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다며, 꾸준히 글을 쓰고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은 게 요즘의 관심사라고 들려주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모르겠어. 이런 거 생각하며 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어..."
"그냥 요즘은.. 약 복용하는 거랑 하루하루의 기분, 건강만 신경 쓰고 있어"
"모르긴 뭘 몰라. 박정운의 요즘 관심사는 박정운이네!"
순간, 그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사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다. 자연히 흐르는 시간 속에 나름 바삐 사는 동안 나를 둘러싼 환경은 변했는데, 나는 '과거의 나'에서 변하지 않았다. 과거에 생각해오고 정의 내리고 인지하던 것들로 현재를 사는 대로 살았다.
작년 여름, 다리를 다쳐 누워있게 되며 제동이 걸렸다. 뭐 좀 해보려 했는데 나의 시간이 강제로(?) 멈추어 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시달리다 그 고통마저 익숙해질 때쯤, 불안함이 찾아왔다. 나만 멈춘 것만 같은 불안함. 이대로 잊힐 것만 같은 불안함. 이렇게 끝난 것만 같은 불안함. 불안함은 불안함을 낳았고, 그 불안함은 또 다른 불안함을 낳았다. 그러자 우울함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원치 않게 다리를 다쳐 '4평 원룸'이라는 독방에 갇혀 우울함이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갇힌 건 내 몸이 아니었다. 과거에 생각하던 '미래의 모습'에 갇혀 현재의 모습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샌가 나를 놓쳤더니 사는 대로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
마치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채 사용해 오다 취약해진 보안으로 바이러스에 걸려 오류가 발생해 멈춘 컴퓨터처럼. 멈추어버린 컴퓨터는 서비스 센터에 맡기면 된다. 며칠 뒤면 초기화되어 깨끗이 비워진 컴퓨터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우리가 아는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 맞다. 과거를 알고, 그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끌 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 나는 나를 이끌 자격이 아직 없었던 것이다. 무면허로 운전한 꼴이었다.
어릴 때는 이 사자성어를 '공부를 많이 해라'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하고 시험을 잘 보아야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정도 말이다. 공자도 과거의 전통과 역사, 학문을 알아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니 내가 잘못 이해한 것만은 아니겠다.
올해, 보호대도 완전히 풀고 다시 예전처럼 편히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조심히 다니고 있다.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던 '글 쓰기'를 시작했다. 과거의 나를 소환해 질문하고 답해보며 다시금 정립하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다른 이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저 내 속도대로 가면 된다. 예전의 나를 익히고 새로운 환경에 놓인 나를 알아가며.
그와 헤어지며 부르면 달려올 테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고, 헤어지기 아쉽다며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그의 목소리에 조금은 힘이 들어간 것 같다. 다행이었다.
'잘 있게나, 내 조만간 또 한번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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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업데이트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