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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조 Sep 01. 2022

취미: [ 사색 ]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의 선선함이 좋다. 가을의 스산함이 좋다.

청명하면서도 쓸쓸한 그 느낌이 좋다.

그래서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오늘 학교에서 4교시가 끝난 후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을 보았다. 햇빛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보면 아주 멋있다. 꼭 천사가 내려올 것만 같았다. 구름 뒤의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곳으로 가보고 싶다. 구름 뒤의 세상으로......


1996년 10월 7일에 쓴 일기이다.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난, 반에서 매우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는 줄의 맨 끝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학교 두 개 건물 중 더 높은 건물, 그중 가장 높은 층, 맨 오른쪽이 우리 반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교실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참 맑았다. 아주 커다란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하늘에 널려 있었고, 그 뒤에서 빛줄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사실 뭉게구름은 언제고 쉽게 볼 수 있는 구름인 데다 10월의 가을 하늘이면 더더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름이 마침 햇빛을 가린다면, 당연히 햇빛은 퍼져 보일 것이다. 그런데 열세 살의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저런 상상을 했던 거다. 재밌는 건 저렇게 상상을 하고 나서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날 붙잡아주어 함께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인데, 내가 이런 하늘을 좋아하긴 하는구나


어릴 때부터 말수는 적었지만, 상상을 자주 했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다면 그렇게 됐을까?'

'그건 왜 그런 걸까?'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상상은 공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다 '사색(思索)'이라는 단어를 알고 난 뒤부터는 '나는 사색을 즐긴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였을까. 학교에서 취미, 특기를 적어 제출하라고 했을 때 취미란에 당당히 [사색]이라고 적었다.


참 많이 혼났다. 장난하지 말라며, 유난 떨지 말라며. 그거 다 망상이라고, 그런 게 어떻게 취미냐며 많이도 혼내셨다. 당시 말주변이 없던 난 선생님의 일방적인 논리에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 하고, 취미란에 다른 것을 채워 넣었다. 그 이후로도 매년 취미란에는 다른 취미를 만들어 제출했다.


이십 대가 되어서도 주변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사색? 생각하는 그거? 그게.. 재밌어...?!"

"고상하네"


혼자 고상한 척한다는 뒷말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색'이라고 하면 무언가 철학적이거나, 위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이 '사색'의 사전적 정의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상위권의 대학을 다니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주변의 반응들은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색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대단한 업적을 쌓거나 큰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라는 개인의 인생에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돌이켜 보니 사색의 시간들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생각을 하는 행위에도 시간이 들다 보니 행동에도 시간이 걸린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서두르지 않게 되고,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또, 아무래도 여러 겹 생각하다 보니 상황이나 상대를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마치 내면에 필터를 장착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감정 기복이 적은 편이고, 여유로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마지막으로 순간의 행복을 느낀다. 깊이 생각해보려는 노력 덕분에 넓게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주변의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장마가 끝나고 선선해진 날씨, 맑은 하늘, 퇴근길의 아름다운 노을빛, 그런 노을빛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해맑은 뒷모습 등.



취미를 묻는 질문에 더는 사색이라고 답하지 않는다.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다고 해서 나의 취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언제부턴가 취미도 돈이 되는 취미를 해야 한다는 말이 들려오지만, 그 또한 괘념치 않는다. 내가 얻은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었다는 것을 아니까.


어린 시절 나의 일기장에는 '쓸쓸하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시에 내가 느꼈던 쓸쓸함은 어떤 쓸쓸함이었을까. 지금 느끼는 쓸쓸함과 같은 것일까. 알 길이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가을을 참 좋아한다는 거다. 선선, 스산, 쓸쓸, 사색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계절이니까.


가을이 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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