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내 루이스 설리반의 작품과 그 본인의 묘지.
시카고 건축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루이스 설리반(Louis H. Sullivan, 1856~1924)의 작품은 일단 아름답다. 건축하는 사람들이면 들어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이란 말을 한 사람이다. 미국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승 이기도 하다.
루이스 설리반은 미국 근대의 철골 빌딩 건축가이지만, 그의 작품 곳곳에는 세밀하고 장식적인 디테일이 만개해 있다. 테라코타와 목재와 철재를 재료로 쓴 유기적이고도 심미적인 드로잉. 실용주의의 미국 근대 건축 같지 않다. 그의 작품들은 철골 마천루이지만 부분 부분 왠지 유럽에 있어야 할 듯한 아르누보 느낌이 가득하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며 단순하고 직선이 가득한 건축물이 대세가 되자, 그의 값비싼 심미적 작품세계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는 시카고 건축학파의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중년 이후로는 큰 작품수주를 못 하고 말년엔 무일푼으로 죽었다.
그는 이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에 모뉴먼트급 커다란 묘지석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1890년에 Getty라는 성을 쓰는 기업가가 죽은 아내를 기리며 의뢰한 작품이다. 이 묘비 디자인은 루이스 설리반의 디자인 철학이 한데 잘 응집되어 있는 작품으로 시카고 랜드마크에 올라 있다.
루이스 설리반 역시 사망후 여기에 묻혔다.
무일푼으로 죽었던 1924년 당시에는 평범한 묘비석이었으나, 5년 후 그의 오리지널 디자인에서 발췌한 모티브로 장대하고 아름다운 묘비석이 완성되었다.
무일푼으로 죽고 잊혀진 루이스 설리반의 건축 작품을 20세기 중반에 재 발견한 사람이 있었으니, 리처드 니클(Richard Nickel, 1928~1972)이라는 사진가다. IIT 건축학과의 의뢰로 그의 작품을 찍기 시작했다가 그의 작품에 반해 이십년도 넘게 그의 잊혀진 작품을 발굴하고 방대한 양의 사진과 실측을 남겼다.
그는 루이스 설리반의 작품인 시카고 증권 거래소가 헐리는 것을 반대해 철거현장에서 반대시위를 벌였다.건물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기를 설치하고, 밤에 잠입해 자료로 테라코타 조각이라도 수집하려다가 무너진 잔해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이 알려지며 가치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헐리는 행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생겨났다.
그는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에서 자신이 목숨을 바쳐 지킨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 이야기는 여기까지.
루이스 설리반의 시카고내 다른 명작들도 한 큐에 다 써내려갈까 했는데 따로 써야겠다.
스크롤이 너무 길어져도 읽는 사람 피곤하고 쓰는 나도 노안온다 ㅎㅎㅎ
인제 딸내미랑 주말에 넷플릭스 지브리 영화 보기 하러 쓩~ 팝콘튀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