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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Jan 28. 2020

존 루트의 루커리 빌딩,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설계자들

도시계획개론속 백색 도시가 탄생한 그곳에서

나의 학부 전공은 도시공학이다. 


선배들의 선배들이 언젠가 뜰 거야 뜰 거야 라고 1960년대부터 말해왔다는, 당시로선 한국에 그다지 흔하지 않은 전공이었다. 도시공학이라는 틀 안에선 건축 토목 환경 교통 사회학 경제분석 법 부동산 심지어 조경까지도 한데 넣고 둘둘 말아 가르쳤다. 한 도시를 만드는 데에는 그만큼 잡학스런 지식이 필요하니. 

거대한 인간 레미콘이 되어 이것저것 잡식으로 섭렵하게 되면, 대학 4학년이 된다. 


도시계획 기사 실기시험에서 내주는 커다란 전지 한 장에 신기를 발휘할 수 있어진다. 세 시간 동안 수십 동 아파트 단지를 주동 간격 맞춰 때려 박고, 신도시 하나도 뚝딱 주어진 인구대로 학교와 도로용량 계산해 마카로 죽죽 그어 칼라링까지 마칠 수 있다. 

그렇게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형 건설회사 면접을 보면 대략 <건설회사 관리직에 가장 적합한 전공을 나왔군>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걸로. 사실 군내 나는 속내는 네... 저는 아는 게 엄청 얕고 넓어요 다. 


어쨌거나, 나의 도시공학과에서는 2학년 1학기쯤 아직 눈빛이 맑은 애들에게 얘들아 이제 전공 공부해야지 하면서 썰을 푸는 도시계획개론이란 과목이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그 건축학개론 이랑은 스케일이 다르다. 건축은 미터를 다루지만 도시는 킬로미터를 다루거든. 어쨌거나 도시계획개론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발전을 보작 시면.... 이런 썰들이 책 앞부분에 응당 위치했다. 


1학년 때의 내가 이거 배우려고 대학 왔나 지긋지긋한 미적분 물리 화학 원서의 터널을 기어 온 지라, 그래 드디어 전공 공부라는 걸 해보게 되는구나 라고 기쁘게 펼쳐본 도시계획개론 책. 저자는 있지만 뭔가 편저자 공저자가 있는 것 같고 일본 책도 좀 많이 직역한 느낌의 그런 그 시대의 개론 책이었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장. 호수도 운하도 건물도 다 인공으로 조성된 백색도시다. 현재 과학산업박물관 건물만 살아남았다. 백색도시는 워싱턴DC로 넘어가 하얀 국회의사당을 창조했다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이었던 시카고 만국 박람회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인공 운하

그 두터운 도시계획개론책을 예습 삼아 넘기다가 나는 백여 년 전 만국박람회 도시들의 흑백 사진을 발견했다. 

오 이 찬란한 런던의 수정궁~~~ 아 시카고의 칼 같은 선이 살아있는 백색 도시...~~~~~~ 아 이런 철제 뼈대에 유리 새장, 대리석 새하얀 인공도시라니. 흑백사진 속 호수를 바라보는 조각상의 시선이 전생의 내 시선인 것만 같았다. 가슴 심뻑 반했다. 조선시대 말 우리나라 짚신 끌고 말똥 밟던 시절에 이 사람들은 이렇게나 크고 멋진 무엇을 만들어냈단 말이지. 오 멋져라. 나 전공 잘 선택한 것 같아 라고. 


당시 관련 교양과목에서 우리가 본 최신 단지개발사례가 일본의 하우스텐보스 라고 있었다. 17세기 덴마크 콘셉트의 일본 관광단지. 덴마크보다도 더 덴마크스럽게 만들었다는 호들갑스러운 비디오를 단체로 마악 감상한 터였다. 와 우리나라에도 하우스텐보스처럼 서구에서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정궁을, 백색 도시를 관광단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에버랜드에서라도!라는 공상을 강의실 뒷자리에서 뭉실뭉실 펼쳤더랬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몇 겹의 삶을 살고.. (직업이 몇 번 바뀐걸 이렇게 표현하게 되네.. 드라마 도깨비 후유증..)


시카고에 오게 되었다.  



루커리 빌딩 로비 전경, 양옆의 유리블록 길로 아래층 상가에 부족한 빛을 전달하는 1888년 오리지널의 멋진 설계다.


그리고 시카고의 마천루 빌딩의 효시라는 1888년 작 루커리 빌딩을 갔다. 


시카고에 건축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존 행콕 타워와 윌리스타워에 도장 찍고 심화과정으로 들리는 곳이 루커리 빌딩이다. 루커리 빌딩의 로비 부분만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지라 미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여기서...라는 설명에 감흥을 안고 간다. 하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이 건물의 오리지널 건축가가 아니다. 이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한참 후인 1905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로비 실내 변경 공사를 한 게 전부다. 


원본과의 사진을 대조해 보면, 음.. 그 아름다운 오리지널 주철 램프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집착하는 쌍으로 된 돌덩어리 대형 화분으로 바꾸어서 가슴 먹먹 화가 난다. 그 아름다운 로비의 주철 장식은 왜 또 대리석으로 덮었을까. 누가 선현의 찬란한 작품에 먹칠을 했어 가 바로 이 케이스다. 속상함이 만발하다. 


루커리 빌딩 홈페이지에서. 화면 가운데  아름다운 쌍 등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떼어 버렸다


저 쌍 등을 떼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둔 쌍 화분. 이분 자신의 작품에는 다 이런 쌍 화분을 둔다. 밋밋 별로다


계단 난간 양쪽의 철제 디자인이 미세히 다르다. 왼쪽이 오리지널, 오른쪽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모던화 하게 한다며 바꾼 금속 철물이다. 이러고 디자인비 공사비 청구했니...


루트의 오리지널 주철 기둥 디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대리석으로 덮었다. 복원공사 시 일부 까서 전시해 놓았다.


이 아름다운 루커리 빌딩의 오리지널 건축가는 대니얼 번햄(Daniel Burnham)과 존 루트(John Root)다.  

번햄과 루트는 동업자 관계의 건축가다. 루트는 천재적인 창의성을 발휘하는 건축설계 담당이었고, 번햄은 주로 회사의 경영, 비즈니스적인 일을 담당했다. 이들은 시카고에만 40여 개의 건물을 설계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3개다. 그중 하나가 이 루커리 빌딩이다. 


루커리 빌딩은 1888년에 철골로 건물을 11층까지 올린,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마천루였다. 

시카고 대화재 이후로 지어졌던지라 테라코타를 써 화재에도 견딜 수 있게 했다. 태양빛을 아트리움 천장에서 받아 그 빛을 천장 유리블록을 통해 곳곳에 분산했다. 

이곳의 지반은 초콜릿 머드라고 불리는 물컹한 지반이었던지라 사람들은 이 건물이 무너질 거라고 장담했다. 이 건물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건물 완공 후 번햄과 루트는 꼭대기 11층에 자기의 공동사무실을 옮겨 사용했다.

시카고 대화재 후 불에 안타는 테라코타(이미 불에 구워 나온 재질임으로)로 지은 루커리 빌딩. 창문과 창문 사이가 두터운 게 지금 우리네 대형 공사현장에서나 보는 철골로 지어서다.


현재 루커리 빌딩의 실내 투어는 대부분 로비에만 국한된다. 시카고 아키텍처 센터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재단의 일정을 찾아보면 11층의 번햄 라이브러리까지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번햄 라이브러리는 번햄과 루트의 설계 회사의 회의실이다. 반 정도가 옛날 오리지널 그대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최근에 복원된 상태다. 나는 보다 많은 걸 한방에 보고자 기다려 후자의 투어를 선택했더랬다. 


도슨트 할머니와 함께 이거 봐 요기 ATM자리가 사실 조금 지반이 가라앉았어 까지도 보고, 번햄 라이브러리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설명을 들었다. 


"이 회의실이 바로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를 계획하고 준비하던 룸이에요. 그때는 이 근처에 높은 빌딩이 이것밖에 없어서 요기 요 창문 바깥으로 하이드 파크의 박람회장 부지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죠. 그래서 준비위원회 사람들이 저기엔 호수를 파고 그 옆엔 건물을 대칭으로 앉히고 하며 조감도처럼 내려다보며 편리하게 일할 수 있었지요. "라고.



화면 왼쪽 흰 조각상 아래 난롯가에서 번햄과 루트는 시그니쳐 사진을 남겼다. 아래 사진 참고(도슨트 할머니가 나를 째려보시네--;;) 


나 순간 매우 당황했고 멍해졌다. 

그간 잊고 살았던 내 소싯적 추억 같은 도시계획개론의 한 챕터에 들어와 있는 이 아득한 느낌. 지금 내가 있는 이 조그만 방의 오크 테이블에서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계획했다고? 

나 지금 여기 오래된 오크 설계도면 서랍의 냄새를 꿍꿍거리며 맡고 앉아 있는데!. 

타임워프를 한 것처럼 멍하니 번햄 라이브러리에서 좀 더 앉아 있고 싶었다. 

....나는 누구... 나는 지난 세월에 뭐했나... 앞으로 뭘 해야 하나,,,같은 생각을 주룩주룩 맞고 싶었다.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도슨트 할머니의 재촉에 주적주적 궁둥이를 들었다. 도슨트 할머니 왈, 놀랍게도 현재 번햄 라이브러리는 무려 루커리 빌딩의 같은 11층에 입주한 회사의 공용 회의 공간으로 쓰인단다. 그래서 와이파이 비번도 벽에 있고ㅠ.ㅠ 이런 복 받은 회사들을 봤나. 역사 속에서 노닐며 회의를 하고 있네. 


번햄 라이브러리에서, 왼쪽이 번햄 오른쪽이 루트


이 장소가 왜 번햄만의 라이브러리로 이름 붙여 졌다면, 동업자 루트가 41살의 이른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해서다. 이후 이 건축회사의 이름도 번햄 앤 루트가 아닌 번햄 컴패니로 바뀌었고 이 공간도 번햄 라이브러리로 남게 된 게다.  


이 공간을 둘이 점유하던 시절, 루트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1893년의 월드 콜럼비안 엑스포지션, 우리말로는 흔히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총감독을 맡았다. 

루트는 1891년 1월 12일 이 루커리 빌딩 11층의 번햄 라이브러리에서 그 역사적인 준비 회의를 시작했다. 그 이후 갑작스레 폐렴에 걸려 사망한다. 이후 동업자 번햄이 이 공동 회사를 혼자 떠맡고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총감독도 이어받았다. 


살아생전 루트는 전 미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을 모두 초청해 14개의 박람회 건물을 다양하게 창조해 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후, 바통을 급히 건네받은 번햄은 이전까지 회사 비즈니스 경영에만 치중했던지라 아직 디자인 철학이 세팅되지 되지 않았다. 번햄은 그냥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백색 도시라는 획일적 콘셉트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번햄은 이후 오래오래 살며 수련을 거쳐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 뉴욕 플랫아이언 빌딩도 만들고 시카고 도시계획도 만들었다.... 오래 살면 장땡이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지도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조감도

그렇게 번햄이 탄생시킨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스타일, 화이트 시티 즉 백색 도시는 건물이 다 하얗다. 옛날 그리스 로마시대 건물을 본떠서 크게 크게 새로 만들어서다. '신고전주의'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이 백색 도시 덕에 1880~1900년대에 폭죽처럼 피어오르던 시카고 학파의 창의적 건물들이 싸그리 도태되었다고 평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 이전 파리나 런던에서 열렸던 만국 박람회는 수정궁이나 에펠탑을 내세우며 근대 도시건축의 커다란 한 발을 내디뎠다. 미국 역사가 짧다 라는 콤플렉스에, 번햄을 비롯한 준비위원회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시대 옛날 건물을 너무 고민 없이 소환해 버렸다.  

루트가 좀 더 살아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총감독을 했더라면. 시카고는 미국 건축의 발전에 기여한 근사한 근대 건축물을 보다 많이 남겼을 텐데. 


시카고 아키텍처 센터 도슨트들을 따라 시카고의 오래된 건물 속살을 보다 보면, 다들 각자 설명하는 건물에 대해 엄청난 프라이드가 있으시다. 가끔은 이 건물 담당을 저 건물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얼굴을 익히게 된 도슨트도 여러 명. 그중 한 분이 비장한 얼굴로 이야기하셨다. 루트가 41살에 죽지 않았더라면, 미국 건축의 아버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아니고 이 사람이었을 거라고.   


루트가 남긴 시카고의 루커리 빌딩이나 인근 모나드녹 빌딩의 기술적 진보, 웅장한 스케일의 아름다움을 알현한 나는, 이 도슨트의 의견에 고개를 매우 끄떡인다.   


아참. 루커리의 뜻은 떼까마귀가 사는 숲이다. 건축 당시 근처의 정치인들이 하도 시끄러서 그랬다는 설과 정말 이 자리에 까마귀가 많아서 라는 설이 있다




... 존 루트의 또 다른 역작 인근의 모나드녹 빌딩은 시카고 커피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번에 쓸까나. 

.... 에고 요즘의 내 글쓰기 지렁이 속도 같아서는 참... ㅠ.ㅠ 

....... 요렇게 포스팅해 놓으면서 내가 나에게 주는 숙제나 클리어해봅시다...... 

   




참고:

세계박람회 1851~2012(international exposition 1851~2012) / 주강현/ 

   - 제3장. 박람회 도시와 건축의 실험실(Expo Cities and Lab for Architecture)

Chicago Architecture Center Walking Tour, Rookery Building/ Docented by Mary Edward Walker/ 2020/11/20 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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