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킴 Feb 05. 2020

존 루트의 벽돌 마천루, 모나드녹 빌딩

인텔리젠시아 커피와 한국인의 40년 된 샌드위치 가게.

모나드녹은 우직하다. 암갈색 불독같은 단단한 빌딩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높은 벽돌구조 빌딩이라 서다. 벽돌 벽만의 순수한 두께가 183센티다. 무려 1891년에 16층 빌딩 전체를 벽돌로 올렸다. 

우리나라 강남 교보타워도 벽돌이잖아요 하면 실례. 

우리나라의 그것은 철골 콘크리트에 단지 얼굴만 치장용 외벽 벽돌이다. 

이 모나드독 빌딩은 순수히 내력 벽돌로만 올라갔다. 

모나드녹 빌딩의 기록적인 183센티 두께 벽돌 내력벽


모나드녹 건물은 미국의 초기 고층빌딩 발전을 담당했던 시카고학파의 대표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건물 하나에 초고층 건물 발전의 여러 단계가 다 들어 있다. 

건물의 북쪽 부분은 벽돌구조지만 남쪽 부분 일부는 철골조다. 

한 건물 안에 설계와 구조 변화가 단 2년 사이에 일어났다. 

사실 북쪽 부분이 먼저 지어졌고, 임대가 잘 되자 건물주가 남쪽의 땅을 사 건물을 새로 짓고 연결한 탓이다. 

북쪽 초기 건설 쪽에서 본 모나드녹 빌딩, 건물 맨 윗선이나 창문의 모양 등이 다르다
요 톡 튀어나온 삼면 유리 형식 덕에 채광이 좋아지고 임대면적이 커진다.

모나드녹 북쪽은 벽돌로 두텁게 벽을 만들었지만, 남쪽은 철골을 도입해 벽이 얇아졌다. 북쪽 부분의 건축가 루트의 루커리(1888년) 빌딩이 이미 철골로 잘 서 있었지만, 미국의 다른 건물이 철골로 지어지다 무너진 사례가 있었다. 이에 건축주가 처음에는 안전히 벽돌로 가자고 요청했다. 

 

시카고의 지반은 초콜릿 머드라고 불리는 검은 진흙 층이다. 그 진흙 위에 기초를 마치 배처럼 띄우는 플로팅 기초(floating foundation) 공법을 썼다. 이 16층 벽돌 건물 북쪽이 안정적으로 서 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건축주는 남쪽 부분에 공사기간도 빠르고 기술적으로도 진보한 철골 도입을 허용했다. 벽이 얇아지면 그만큼의 임대 면적도 늘릴 수 있다는 장사 속 계산도 한몫했다. 

 

참, 이 모나드녹(Monadnock)의 이름은 건축주의 고향인 뉴햄프셔의 산 이름에서 땄다. 사실 이게 아메리칸 원주민의 단어라서 미국인도 잘 발음을 못하는 단어다. 이 건물 투어에서 만난 할머니들께 이거 도대체 어떻게 읽어요 여쭤보니 어휴 우리도 힘들어 그냥 모나드낙 마나드낙 마음대로 발음하란다. 


북쪽 부분의 건축가인 존 루트( John Wellborn Root )가 공사 도중 41세로 갑자기 사망했던지라, 2년 후 남쪽 부분은 홀러버드&로셰(Holabird & Roche)라는 다른 건축가 팀이 진행했다. 남쪽 부분의 완공 시점은 1893년, 바로 시카고 만국 박람회가 열리던 해이다. 


이 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가 꽃피워내던 마천루 건축의 미국 고유의 디자인 시도들이 사라지고 서양의 그리스 로마에서 디자인을 따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보면 먼저 지어진 북쪽의 창문들은 우리네 1960년대나 지었을 것 같은 미국식 모던함인데, 나중에 지어진 남쪽의 기단이나 꼭대기는 더 오래된 느낌을 주는 유럽 카피 디자인이다.  


북쪽 초기 건설분은 시카고학파의 특징을 나타내며 단순 모던하다.




남쪽 추가 건설분은 신고전주의 형식을 띄며 유럽의 무엇을 본땄다.




원래 빌딩과 추가 증축분이 만나는 중간. 건물 매스가 커서 멀리서 통으로 보면 한 건물 같지만 이렇게나 다르다. 


이 모나드녹 빌딩이 1891년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이유는, 당시 세계에서 최고로 큰 빌딩의 위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로비를 중복도 형태로 양쪽에 상가들을 실내와 실외 모두 통유리창으로 배치했다.  

그 위에는 상업용 임대 오피스를 배치했다. 최초로 건물 안에 네 개의 대형 우체통과 상주 우편배달부를 두어 이 안에서 모든 비즈니스가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의 인터넷 연결처럼 말이다. 


당시 럭셔리 빌딩 계단 난간에 쓰던 검은색 주철 장식 대신, 새하얀 알루미늄 장식으로 세계 최고의 호화로움을 과시했다. 알루미늄의 초창기에는 금보다도 비싼 시절이 있었다. 1889년에 알루미늄의 공업적 생산과 정제가 마악 시작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희토류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신기술을 발명하자마자 빌딩 공사장에 바로 도입한 최 신상 럭셔리 빌딩이라고나 할까. 


건물 위층에서 떨어뜨려 편지를 넣는 건 금지지만, 이 앞에서 편지함에 넣는 건 아직도 유효. 


건물 내 아름다운 철제 계단
당시의 럭셔리 신기술, 알루미늄 난간



모나드녹은 백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월의 쇠락을 겪었다. 현 건물주 부부는 이 건물을 살 때의 기쁨을 무려 그랜드 캐년을 획득한 것에 비유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 지은 빌딩을 좋아하지만, 자기네 같은 사람들은 옛날 것을 좋아한다고. 이 모나드녹은 미국의 오래된 빌딩계의 화룡점정 이라며.  


그렇게 현재 부부는 수십 년에 걸쳐 그 수많은 임대인이 나갈 때마다 사무실 한 칸 한 칸을 옛날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고 최근에야 그 긴긴 작업을 끝냈다. 로비와 복도의 복원도 바닥 타일부터 우체통까지 아주 세심하게 마쳤다. 이 고풍스럽고 럭셔리한 빌딩은 변호사나 건축가 심리상담센터 등의 고급 수요층에 임대되고 있다. 


시간에 따라 몇번이나 덧칠공사 된 로비 타일 맨 아래층을 공사중 발견, 전체를 이렇게 다 복원했다.

심지어 건물주는 로비층의 수십 개의 가게들은 신상 업종이 아닌, 건물 전체 분위기에 맞게 옛날 스타일의 앤틱 한 업종에게만 임대를 한단다. 모나드녹 빌딩의 남쪽 문으로 들어가 양 쪽의 가게들을 통창으로 훑어보며 걷다 보면, 해리포터 영화 속 어두침침한 장인들의 가게를 엿보는 느낌이다.  

때 묻은 검고 커다란 금속 기계와 높은 의자가 있는 구두 수선집, 미드에 나오는 것 같은 명품 가방 수선집, 옛날 중절모 모자 가게, 바느질선이 보이는 수제 양복점에 앤틱 한 바버샵까지. 밤새 요정들이 일하고 있고, 늙은 주인장 할아버지는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듯한 광경이다. 

수제 남자 모자 가게 바깥에서 한컷. 이제 수은중독 매드 해터는 없어요.
모자가게 안. 오른쪽에 나무로 깎은 모자 틀들이 가득하다. 
수제 남성 모자 가게의 모자 상자. 옛 영화 필름통같다.
신발 수선 가게. 손님은 저 높은 의자에 앉아 신발을 수선한다. 
이렇게 구두나 가방 고치는 집들의 작업을 중앙 복도 양쪽으로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의 앤틱 한 가게 중 미국 사람들에게 제일 유명한 것은 럭셔리 수제 남자 전용 모자 가게. 모자 가격이 650불부터 시작한다는 이 고급 가게는 SOM이란 유명한 건축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퇴직하고 나와서 만든 가게다. 할리우드 유명인사부터 고위 정치인까지 이 모자가게의 단골이란다. 유리창 너머의 단아한 모자 상자만 봐도 아아아...  킹스맨 콜린 퍼스도 이걸 보면 세트장 이사하자고 할지도 몰라 싶다. 하지만 여자에다 범인인 나는 이 가게에 들어가 볼 일이 없다.


사실 나는 모나드녹 빌딩에는 커피 마시러 간다. 

커피 좀 따지는 분들 왈,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는 게 있다. 캘리포니아의 블루보틀, 포틀랜드의 스텀다운, 그리고 시카고의 인텔리젠시아다. 블루보틀이 미국 대도시 전역과 한국에까지 매장을 냈지만, 인텔리젠시아가 꽉 잡고 있는 시카고에는 진출하지 않은 이유다. 


인텔리젠시아는 시카고에는 6개의 직영 매장뿐이다. 최근에 마켓 컬리에서나 현대백화점 판교 점에서 인텔리젠시아를 볼 수 있다. 인텔리젠시아는 뭐랄까 한국의 프맅츠 커피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시카고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로스팅 납품 쪽을 꽉 잡고 있다. 많은 시카고 로컬 카페들이 우리는 인텔리젠시아 원두 써요를 자랑스럽게 유리창에 붙여 놓고 있다. 


인텔리젠시아 내부. 저 천장 등이 이 건물 로비나 위층 사무실 모두에  주렁주렁 달린 1891년 오리지널의 복원품이다. 
인텔리젠시아 커피잔 바닥에는 빨간 별이 있다. 다 마실 때까지 라테아트 모양이 다 살아있는 진함이다.

미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바리스타들이 인텔리젠시아 출신이다. 인텔리젠시아 자체 로스터리 스쿨을 졸업한 솜씨 좋은 정직원 바리스타들은 자신의 작품을 마실 고객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몇년 전 한국 야쿠르트와 함께 콜드 브루 열풍을 몰고 온 찰스 바빈스키도 인텔리젠시아를 거쳐 갔단다. 모나드녹 빌딩의 레트로 한 인텔리젠시아에서 따뜻하게 예열된 도기 잔에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 이게 요즘 나의 작은 사치다.  



이 글을 쓰면서 사진 보충하러 모나드녹 나갔다가 알게 된 사실 하나. 모나드녹 로비의 오래된 앤틱 가게 중에 해리스 샌드위치가 있다. 늘 오며 가며 보는 통창 너머의 주인장의 모습이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 같았다. 칠리 수프를 주문하며 보니 오! 이건 한국식 영어 발음! 슬쩍 한국말을 꺼냈다. 주인 아주머니 화들짝 놀라시며 어머 여기 한국사람 안 오는 곳인데 라고 썰을 푸셨다. 어? 캐나다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속에 나 빙의된 느낌.


이 샌드위치 가게가 무려 40년이 넘었고, 본인께서 세 번째 주인이라며... 처음에 10년은 미국인이 했고, 30년 동안 한국인 셰프 출신 할아버지가 하시다가 은퇴하셔서 3년 전에 자기가 이어받으셨단다. 30년 동안 주인이시던 한국인 할아버지는 음식 맛 체크하러 수요일에 나오신다고. 그렇게 내려오는 레시피로 좋은 재료 써서 음식에 자신이 많으신 듯하셨다.   


그러면서 메뉴판에 있는 라이스 누들 수프가 육개장 베이스라고 담에는 이것 시켜보라고 하셨다. 앗 저는 미국식 허연 치킨 누들 수프인 줄 알았죠. 방금 먹은 칠리수프도 엄청 진하고 맛있었는데. 담엔 저걸 시켜봐야겠네용 했다. 

해리스 샌드위치 샵
위의 하얀 스폿 등이 영화 배트맨 촬영 시 설치한 것이라고. 메뉴판을 확대해 보면 라이스 누들 수프 있어요. 



미국의 국가 등록 역사 문화재(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NRHP))에서 한국인이 하는 샌드위치 가게가 30년 이상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또 하나 아주머니가 자랑하신 건, 이 해리스 샌드위치 가게가 배트맨 영화에 한컷 나왔었다고, 계산대 위 조명이 그때 촬영팀에서 바꾸고 간 거 그대로 쓰는 거라고 하셨다. 이 건물 내부는 다 1891년 오리지널 스타일 복원으로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침침한 노란 불빛에 앤틱 등 쓴다. 아주머니께서 손으로 가리키는 그곳에만 하얀 형광등 색깔 조명이 알알이 빛나고 있었다. 


어 이거 건물 관리 측에서 원상회복하라고 안 해요?라고 여쭤 보니, 아주머니 싱긋 웃으셨다. 난 싫어 밝은 조명이 좋다고. 안 바꾸고 버티면 되지? 

넵. 40년 50년 계속 잘 버티셔서 모나드녹 찾아오는 한국 분들께 시카고 추위를 육개장 라면으로 푸시라 반갑게 맞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역사의 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잘 녹아든 한국 가게 봐서 저도 반가웠습니다. 이만 총총. 

    


이전 03화 시카고 건축 학파의 별 같던 건축가 존 루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