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카고 건축 센터에서는 수십 개의 건축 걷기 여행을 제공한다. 주제별로 진행되는 한 지역의 투어나, 한 건물을 들어가 지하부터 탑층까지 샅샅이 보는 형태다.
나는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연간 가족회원으로 등록하고, 애가 학교에 적응한 이후로 지하철을 타고 잽싸게 나와 거의 모든 투어를 섭렵했다.
시카고 건축 센터의 투어중 한 건축가의 이름을 걸고 걸으면서 작품들을 주욱 흩어 보는 정규 투어는 세 개다.
1번은 오크 파크에서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투어
2번은 IIT 대학에서의 미스 반 데 로에 투어
3번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의 루이스 설리반 투어가 있다.
1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오크파크에 자기 신혼집 짓고 살면서 동네 사람들 집을 많이 지어서.
2번은 미스 반 데 로에가 IIT 학교 건축 학장으로 오면서 부임 조건이 학교 건물은 자기가 짓는다여서.
3번은 루이스 설리반이 시카고가 성장하던 근대에 가장 유명한 건축가였으므로.
시카고 다운타운의 루이스 설리반의 건축물은 다 지척에 있다. 시내를 걸어 다니며 쇼핑을 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던 사람들이라면 어 내가 갔던 바로 그 건물이잖아 를 외치게 되는 지하철역 인접 초 역세권 건물들이다.
1. 칼슨 피리에 스콧 빌딩(Carson, Pirie, Scott and Company Building, 1899년)
칼슨 피리에 스콧 빌딩의 전체 샷
칼슨 피리에 스콧 빌딩의 2층 입구 상세샷
시카고 시내의 가장 대표적인 루이스 설리반의 역작이다. 이 건물은 원래 칼슨 피리에 스콧 백화점이란 이름으로 모든 건축학 서적에 나와 있다.
이 백화점은 이 건물을 100여 년도 넘게 쓰다가 2006년 초반에 파산했다. 현재는 부동산 투자회사의 소유이고 여러 주체가 건물을 임대해 쓰는지라, 이 건물은 건축가의 이름을 딴 설리반 센터로 개명되었다.
현재 상층부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우리나라 인천공항 제2 여객 터미널을 설계한 겐슬러라는 유명 건축회사가 임대해 쓴다.
현재 설리번 센터로 바뀐 카슨 피리에 스콧 빌딩 입구
일이층 상세 샷
두텁고 장식적인 주 출입구 안에서 밖을 찍은 샷
실내의 기둥장식
주 출입구 안의 기둥 나무 장식
이 건물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여러 번 개보수가 있었다. 시카고 건축 학파의 다른 스타인 다니엘 번햄도 손을 댔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보적이었던 루이스 설리반의 유려한 주 출입구는 그대로다. 아름다운 철 장식에는 루이스 H 설리반의 이니셜도 숨겨져 있다. 그래 이걸 바꿀 수는 없지.
메인 출입구 위 장식. 아치 양쪽에 루이스 H. 설리반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여기 L H S 겹쳐서 이렇게
현재 일이층은 중저가 백화점 타깃이 위치하고 있어 동네 편의점에 슬리퍼 끌고 가듯이 누구나 친근히 접근할 수 있다. 일층과 이층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며 유려한 기둥 장식을 하얗게 칠한 것부터, 근대의 철골 빌딩의 두터운 벽 감상해도 된다. 우리는 21세기의 투명한 커튼월의 시기에 살고 있는 지라, 근대의 신기술이었던 철골 공법의 벽은 우와 내가 침대처럼 누울 수 있겠다라고 많이 두텁게 느껴진다.
일이층에서 필요한 생필품 뭐라도 사도 되고 일층의 탁 트인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쉬어도 된다. 이 건물은 시카고 다운타운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에게 강남역 뉴욕제과 같은 만남의 장소 랄까.
이 작품은 지하철 역사 지상구간에서 늘 보던 그 건물이다. 마치 종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자그마하고 지저분한 옛날 5층 건물 바라보는 느낌의 이것은, 루이스 설리반과 그 동업자 당마르 아들러(Dankmar Adler)가 초기에 지은 건물이라 서다. 그들의 워낙 초기작인지라 국가 등록 역사 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 (NRHP))에다가 시카고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있다.
2019년 건축 투어 당시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투어 인솔자는 옛날 외장 복원공사까지 마친 후 고수익을 창출할 부띠끄 빌딩으로 바뀔 계획이라 했다.
랜드마크 건물의 외장 복원공사는 대부분 시의 지원을 받지만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작업이다. 코로나로 호텔업이 심한 침체기에 접어든 상태라 현재는 어떻게 진행 중인지 나도, 그들도 이 건물의 미래를 잘 모를 게다.
(아무튼 이 시기를 틈타 롯데호텔이 시카고 한복판의 유수한 호텔 사들이는 것을 보면 신기. 이전에 뉴욕의 초고급 호텔 사들인 것도 신기*신기 했다만. )
고가지하철 L 아래서 올려다본 주얼러스 빌딩
주얼러스 빌딩 옆면
3. 일련의 식당 건물들( Haskell-Barker-Atwater Buildings, 18, 22, 28 S. Wabash Ave. 1875-1877년 )
지하철 역을 내려 이 앞을 오며 가며 늘 지나다녔던 건물이라 루이스 설리반 투어에서 이 앞에서 멈춰 서길래 깜놀 했다. 1896년에 루이스 설리반이 20여 년 전에 완공된 건물을 1,2층만 아름답게 리모델링했다.
1, 2층만 리노베이션 했던 이유는 바로 이 앞으로 건물 2층 높이에서 지나다니는 시카고의 L( elevated의 줄임 말) 라인이 1892년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시내를 천천히 다니는 지하철 차량 안 사람들의 시선이 건물 2층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이에 지상 보행자의 눈요기를 위한 1층과 함께 2층에도 널따란 창과 건물 장식이 필요했다.
루이스 설리반의 미려한 장식 철재
철재장식은 2층까지
철재장식은 2층까지
왜 지하철인데 땅을 안 팠나요라고 한다면, 이 일대는 초콜릿 머드라고 불릴 정도로 지반이 약해서다. 자본이 모이는 곳에는 지반에 특수한 공법으로 마천루를 지었지만, 대중들의 길고 긴 지하철 노선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시카고 다운타운은 도시 성립 초창기부터 엘리베이터가 땅속이 아닌 건물 2층 높이로 구조물을 올려 지어졌다.
이 시카고의 철컹철컹 완행선 같은 오래된 고가도로 지하철 L은 배우 산드라 블록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의 배경이다. 그녀가 지하철역(Randolph/Wabash station)에서 매표원으로 나오는지라.
건물 앞 철제 장식이 루이스 설리반의 유기적인 모듈답다. 너무 가까운 데에 있었던 그의 작품. 지하철과 많이 붙어있어 그 그림자에 조금 어두운 가게들이다. 투어 하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 있을 만큼 인도가 넓은 곳이 아닌지라 인솔자도 급히 설명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몇 개의 간단히 빨리 먹고 빨리 가는 패스트푸드식 식당이 도열한 건물, 루이스 설리반이 했다니 언제 한번 배고플 때 가봐야지 생각.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오른쪽에 다닥다닥 붙은 세개의 작은 건물이다.
4. 오디토리엄 빌딩(Auditorium Building, 1889 )
이 건물은 19세기 말 기술로 당시 시카고 최대 높이, 미국 건물중 가장 넓게 지은 멀티 유즈 건물이다. 극장과 호텔과 사무실 등이 복합된 용도다. 초기에는 시카고 시립 오페라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사용하다 대공황 때 닫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참전병 훈련소로도 쓰였다. 1946년부터는 루스벨트 대학의 소유가 되었다. 예전에 호텔과 사무실로 지은 공간은 대학의 공간으로 쓰고, 현재 극장 부분은 제프리 발레단이 사용한다.
현재 이 건물은 앞서 말한 시카고 건축 센터의 투어에선 현관까지만 보여준다. 속을 보려면 별도로 오디토리움 극장 홈페이지에 안내된 한 시간 반짜리 유료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오디터리엄 투어 안내판
그렇게 오디토리움 극장의 두터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범인은 매우 당황한다. 건물 겉으로 보던 루스벨트 대학 학생들이 쓰는 부분은 두텁고 튼실한 벽이 직각으로 잘 서 있는데, 극장 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순간 아악 하고 소리 지르고 스노 보드 탈 때처럼 양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이거 안전해 안전해? 기둥이 기울었어! 아치가 동그랗지 않고 한쪽으로 형태가 밀렸어! 바닥의 타일들은 반질반질 닳아 있고, 바닥과 기둥과 아치가 눈으로 보기에도 많이 기울어서 터키의 지하 동굴에라도 들어간 느낌이다. 특히나 발을 딛고 있는 곳의 수평과 수직에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거 뭐야 하고 식은땀을 흘리다가 건물을 뛰쳐나갈지도 모른다.
로비 아치의 오른편을 보면 기둥 바로 윗부분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찌그러진 것이 육안으로 관찰된다. 사진 포샵한것 아닙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려앉은 지반과 보수의 흔적 1
백년이 넘는 동안 내려앉은 지반과 보수의 흔적 2
오디터리움 빌딩의 물컹한 지반 때문에 19세기말 철도구조 얹고 콘크리트를 들이 부은 여러겹의 안정화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심각히 기울어진 일층이 머리 위로 십층이나 되는 무거운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니. 삼풍 이후 수십 년 동안 수차례의 안전불감증 사고를 겪은 한국인들이라면 경악한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오디터리움 극장을 안내하는 인솔자나 극장 직원들은 유유자적 자신의 일을 하며 이 안을 태연히 지키고 계신다.
안전에 철두철미한 미국 지식인들 왈... 초콜릿 머드라는 물컹한 지반에 안착한 이 철골 건물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연적으로 많이 가라앉았지만 허용 범위 안이고, 잘 보수해서 쓰는지라 안전하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속으로 들어가보면, 이 건물은 외장보다는 극장 천장과 안 쪽에 루이스 설리반의 특징이 집약되어 있다. 이 극장을 지을때 젊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제도공으로 일했고, 후에 이곳의 모티브를 자기 작품에도 가져다 썼다.
루이스 설리반의 유기적인 드로잉
오디터리움 극장의 천장 장식
완공당시 미국에서 가장 넓은 건물이었던 이것은, 극장부분만 해도 좌석이 7개층이다.
건물 내에 있는 루이스 설리반의 조각
루이스 설리반의 동업자, 당마르 아들러
사실 시카고 다운타운내 루이스 설리반 투어는 시카고 주식 거래소를 헐며 아치를 옮겨 세워 놓은 곳에서 시작한다. 그건 바로 전 글에 소개했으니, 이렇게 끝을 맺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