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킴 Nov 17. 2019

시카고 팔머 하우스 힐튼 호텔

이난영과 김씨스터즈가 머물렀던 역사의 호텔 



벌사 팔머를 끔찍이도 사랑한 나이 많은 남편 포터 팔머는 유언장에 나중에 부인이 재혼하는 남자에게 까지도 줄 유산을 따로 남길 정도의 극 자상함?을 보였다. 부인이 쓰는 걸 감당하지 못할 꺼라며. 

어쨌거나 벌사는 재혼을 하지 않았고, 남편이 남긴 유산을 플로리다의 부동산에 투자해서 2배로 불렸다. 


그녀가 남긴 부는 가족의 팔머 하우스 호텔에 그대로 재투자되었다. 1923~5년 그녀의 아들들이 기존의 7층짜리 호텔을 헐고 다시 25층으로 신축하는데 쓰였다. 큰 부지의 반씩 반씩 잘라 신축을 진행하며 영업을 했던지라, 

현 객실 1639개의 팔머 하우스 호텔은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속 영업하고 있는 호텔이다.


좌로부터, 팔머 하우스 호텔의 변천. 1871년 완공 후 13일 만에 화재로 전소된 호텔->두 번째 호텔->1923~5년 아들들이 엄마 돈으로 지은 현 호텔


팔머 하우스 호텔은 1945년 힐튼 그룹에게 넘어갔고 2005년 또 다른 토르 에쿼티(Thor Equities) 투자회사로 소유권이 바뀌었다. 투자자일 뿐 운영은 계속 힐튼이 운영하는지라, 호텔명은 팔머 하우스 힐튼 그대로다. 


시카고 시는 이 유서 깊은 건물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2005년 투자회사의 매입 전에 잽싸게 이 건물을 시카고의 랜드마크로 지정했다. 시카고 시에서는 랜드마크 건물의 매입 가격 반 이상을 복원에 쓰면, 12년 동안 세금 환급(tax break)을 주는 특혜를 준다. 투자사는 240 밀리언 달러에 이 건물을 매입하고 170 밀리언 달러를 복원에 썼다. 

그래서 이 건물에는 티파니 컴패니에서 제작한 24K 금도금 대형 촛대가 아직도 번쩍번쩍 그 세를 과시하고, 프랑스 화가가 그린 대형 천장화가 잘 복원되어 있다.


티파니 컴패니에서 제작한 초대형 24K 촛대...(여기서 티파니는 보석상 티파니의 아들 티파니다)



역시나 티파니 컴패니에서 작업한 피콕 도어








팔머 하우스 힡튼에는 초대형 호텔답게 많은 연회장이 있는데, 그중 백미는 호텔 로비에서 바로 연결되는 엠파이어 룸이다. 1933년 오픈하여 당대의 프랭크 시나트라, 쥬디 갈란드,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하던 시카고의 핫 플레이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큰 공연장이 많이 생겨 1976년 문을 닫았고 현재는 연회장으로 쓰인다.



호텔 로비에서 바로 연결되는 엠파이어 룸 입구에서 웨딩 촬영 중이다.





2008년부터 도슨트를 시작했다는 할머니가 팔머 하우스 호텔 투어 중 말씀하셨다. 나 이 투어 오랫동안 진행했지만 이렇게 행사 시간이 안 겹쳐 모든 연회장을 다 돌아보고, 객실이 만실이 아니라 호텔에서 키를 내줘 빈방까지 들어가는 일은 정말 드물어 라고... 투어 시작 전 참가자들의 출신 도시나 국가를 물어본 분이셨다. 


나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빈 객실 보러 가는 19층 복도에서 갑자기 복도에 걸린 사진 하나를 가리키셨다. 이 호텔의 객실층 복도에서는 그간 엠파이어 룸에서 공연했던 수많은 연예인의 사진과 공연 연도를 액자에 넣어 벽에 전시해 놓았았는데, 저기에 한국 사람들 있다며.. 

정말 모르면 그냥 지나갈 복도 속 한 사진이었다.  


그곳에는  굵은 눈썹을 힘차게도 그려 넣은 김시스터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밑에는 1962,1963,1964,1965,1966이라고 5년간의 공연 연도까지 펜으로 넣어 액자화 되어 있었다. 

정말 반갑고도 신기했다. 21세기의 걸그룹 원더걸스가 이분들의 콘셉트를 많이 차용했던, 한류 걸그룹의 원조인 전설의 김시스터즈 말이다. 이분들을 여기 시카고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김시스터즈는 엠파이어 룸에서 이렇게나 많은 시간 동안 공연을 했다.



김시스터즈는 한국 대중문화사의 매우 큰 한 페이지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두 딸과 이난영의 친오빠로 낙화유수를 작곡한 이봉룡의 딸, 즉 친자매와 사촌 자매 3명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걸그룹이었다. 이난영의 남편인 기타리스트 김해송은, 1950년 한국전쟁시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7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던 이난영은 사실 한국 역사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 출신이었다. 저고리 시스터즈는 1939년 이난영과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민요가수 이화자로 구성된 4인조 걸그룹이었다. 


이난영은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1953년 갓 열 살이 넘은 자신의 딸들과 조카딸에게 영어 노래를 가르쳐 미 8군 무대에 세운다. 당시 김시스터즈의 인기는 대단했고, 그 입소문이 휴가 나간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의 쇼 비즈니스 업자에게까지 흘러간다. 쇼 비즈니스 업자는 한국으로 와 이들의 공연을 본 후 바로 계약을 했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까지 받아 이 김 시스터즈를 미국으로 데려간다. 



엄마 이난영은 딸들이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도록 피아노 가야금 색소폰 기타 등 1인당 10개 이상의 악기를 마스터시켰다. 1959년 김시스터즈는 미국의 에드 설리반 쇼라는 티브이쇼에 섰다. 당시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나 롤링 스톤즈가 서던 티브이쇼였다. 매회 다른 악기를 들고 나와 완벽히 연주하고 노래하던 김 시스터즈는 비틀스보다도 많은 22회 출연 기록을 남겼다. 1960년 2월에는 라이프지 특집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김시스터즈의 팬인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나, 배우 커크 더글라스와의 만남도 기사화되기도 했다. 


1960년대 김시스터즈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타더스트 호텔의 전속이 되었다. 지금의 라스베이거스가 셀린 디온 같은 유명 가수들을 거금을 주고 전속으로 두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당시 김시스터즈는 미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불 정도인데, 1주에 만 오천 불을 받고, 라스베이거스 전체에서 개인 5위의 세금납부 기록을 세웠다. 

김시스터즈가 공연하던 엠파이어 룸의 실내. 거울로  뒷벽이 둘러싸인 화려한 무대다. 



그녀들이 전속으로 있던 라스베이거스의 스타더스트는 말 그대로 이미 더스트가 된 상태다. 신규 호텔이 많이 생기자 영업 악화로 2006년 문을 닫고 건물 전체가 2007년 폭발 공법으로 한순간에 사라졌거든. 

그런데 이 시카고에서 그녀들의 흔적을 이렇게나 보존해 호텔 벽에 걸어놓고 있다니. 참 반갑고 고마웠다. 


전성기의 그녀들이 이 시카고의 호텔에서 매해 공연했던 이유는 당시 김시스터즈의 미국인 매니저가 이 동네 출신이라 서다. 그래서 김시스터즈는 공연 후 미국인 매니저의 엄마가 사는 인근 일리노이주의 농장에서 휴가를 보냈다. 늘 반짝이는 무대의상의 화보가 아닌, 편안한 스웨터 바지의 화보를 남기기도 했다. 

김시스터즈 스스로가 꼽은 최고의 공연도 70년대에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시카고의 축구경기장에서 8만여 관중 앞에서 공연한 것이기도 하다.  


  

가운데가 엄마 이난영, 백인이 에드 설리반, 나머지 셋이 김 시스터즈. 저날의 동영상을 보면 김시스터즈가 한국에서 온 재능 있는 우리엄마라며 소개하고,  모던한 이난영이 등장한다


1963년, 김시스터즈는 엄마 이난영을 미국으로 초청해 에드 설리반 쇼에도 같이 출연했다. 

한복 차림의 구슬픈 이난영이 아닌 원더걸스 스타일의 신나는 이난영은 지금 봐도 참 신기하다. 김시스터즈의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시카고의 호텔에서 엄마 이난영이 김치찌개를 끓였다가 쫓겨날 뻔했다고 한다. 

63년에도 김시스터즈는 이곳에서 공연을 했으니 김치찌개 사건의 시카고의 호텔은 여기 팔머 하우스 힐튼일 게다.


이렇게 힘들게 김시스터즈가 일찍이 미국에서 기반을 닦아놓은 덕에 윤복희와 패티김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21세기 지금에 이렇게 싸이와 BTS의 한류로 자랑스레 활활 타오르고 있고. 





어쨌거나 시카고 팔머 하우스 힐튼 호텔에는 변하지 않는 룰이 있다


.... 지금의 천지신명, BTS가 와도 객실에서 김치찌개 끓여먹기는 안돼요...





*김시스터즈의 시카고와 일리노이에서의 다양한 사진을 보려면 아래에

https://blog.naver.com/gettyimageskorea/221287790733



*이난영과 딸들의 에드 설리반 쇼에서의 노래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a8401199.tistory.com/397




기타 참고문헌:



원조 걸그룹 김시스터즈

https://swingpeople.blog.me/221636894320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180783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045536&sc_section_code=S1N36&sc_sub_section_code=S2N71

https://blog.naver.com/gettyimageskorea/221287790733

이전 14화 초콜릿 브라우니의 창시자, 시카고 근대 재벌 팔머 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