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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May 21. 2022

초콜릿 브라우니의 창시자, 시카고 근대 재벌 팔머 가

시카고 팔머 하우스 힐튼 호텔의 창립자 


저 시카고 가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고했을 때 들었던 인사말 중 하나는 이랬다.

어 시카고 피자 많이 먹겠네요. 저희 집으로 배달 좀 시켜주세요 -_-;;;라고.

시카고 피자는 한국에서 가장 흔히 접해봤을 시카고의 고유명사 중 하나다. 사실 그래 봤자 피자는 이탈리아가 원류고 여기 시카고는 그 변종중 가장 두터운 것이다. 

.  

진짜 시카고에서 탄생한 오리지널은 사실 브라우니다. 초코파이는 차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초콜릿이 조청처럼 진득진득하게 씹히는 네모난 브라우니 말이다.


브라우니는 19세기 시카고의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벌사 팔머(Bertha Palmer)라는 여성이 그 시작이다. 다른 음식들이 원조에 논란이 있는 것과는 달리 브라우니는 시카고가 그 확고한 원조다.  남편 포터 팔머는 팔머 하우스라는 호텔을 그녀에게 결혼 선물로 지어준 시카고의 부동산 재벌이었다. 그 호텔이 완공 13일 만에 1871년 시카고 화재로 타 버리자 다시 더 크게 지어 선물하기까지 했다. 19세기에 레전더리 삼십 대 후반 노총각이던 포터 팔머는 사업차 알게 된 지인의 가정에서, 당시 무려 13살이던 벌사 팔머를 보고 반해 21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포터 팔머

23살의 나이차에도 결혼한 벌사 팔머는 그런 남편에 업혀 꽃처럼 살지 않았다. 당시 어린이 교육에 앞장섰으며, 여성 소셜 클럽을 만들었다. 당시 여성은 학교를 가지 않고 가정교육만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여성 소셜 클럽 안에서 교육 계몽시켰다. 노동자 계층의 여성 계층도 소셜 클럽에 포함하려는 노력을 했다. 

또한 유럽에서 모네, 르누아르, 로댕의 작품들을 대량 수집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기증함으로써, 미국 3대 미술관으로서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컬렉션의 근간을 만들었다.



1893년, 시카고에서는 그 유명한 만국 박람회가 열렸다. 

당시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하고 활동적인 상류층 여성이었던 벌사 팔머는 여성 관리 위원회의 장(President of the Board of Lady Managers)이란 명예직을 맡았다. 명예직이었으나 실무자보다 더 발 벗고 일한 그녀는  시카고 만국 박람회 안에서 여성이 만든 발명품과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단독 전시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 당시의 벌사 팔머. 미 중부 시카고를 대표하는 옥수수 등 곡물 패턴 드레스를 파리에서 주문 제작해  입고 국제 귀빈 만찬에 나가 시카고를 홍보했다.


이에 워싱턴 DC 정부를 직접 찾아가 청원을 했고, 이는 미국 역사상 여성이 여성을 위한 청원을 한 첫 번째 사례였다. 벌사 팔머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여성 건축가를 찾아내 고용해, 41개 나라에서 온 여성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단독관을 마침내 탄생시켰다. 여성의 참정권도 없던 시대에 말이다. 


이때 벌사 팔머는 만국 박람회를 찾는 사람에게 대접할 먹을거리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에 자신의 팔머 하우스 호텔 패스트리 셰프와 함께 케이크보다는 작은 그 무엇, 그리고 도시락에 들어갈 수 있는 씹을 거리를 고안해 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브라우니, 초콜릿 케이크와 초콜릿의 중간 정도 되는 네모난 디저트다. 당시에는 브라우니라는 말조차 없었는데 후에 이 레시피가 책으로 나오며 브라우니라는 말이 붙었다. 


벌사의 브라우니. 구 인쇄본 메뉴판이라 7달러였고 실제론 10달러로 계산하더라. 


팔머 하우스 호텔은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속 영업 중인 호텔이다. 호텔 로비의 바나 레스토랑에서 저 오리지널 레시피 그대로의 초콜릿 브라우니를 판다. 벌사의 브라우니는, 호두가 들어가고 살구 글래이즈가 가미된 아주 뜨끈하고 쫄깃한 초콜릿 브라우니 위에 커다란 아이스크림이 올라와 뜨끈 질척거리게 서빙된다. 

아. 이게 진짜 시카고 오리지널의 맛이다. 


팔머 하우스 힐튼 호텔 로비 레스토랑에서 서빙되는 원조 초콜릿 브라우니



포장 시에는 브라우니의 레시피를 상자 아래에 접어 넣고,  팔머 하우스 힐튼 리본으로 묶어 준다






시카고의 초기 재벌과 정치 예술 유명인들이 많이 묻혀 있는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에서 팔머 가의 가족묘는 가장 좋은 곳에 있다. 호숫가에서도 가장 향이 좋고, 다른 곳을 굽어보는 안정적으로 높은 곳이다.  

왜 그리스 신전 디자인인가요 이분들은 그리스 이민자인가요 하면, 일단 아니오 이다. 그때쯤 미국 건축에 신고전주의가 많이 유행해서 이 디자인이 나왔다. 본인 가문의 묘를 서양 문화의 근원, 그리스 신전처럼 크고 멋지게 짓는 것이 가문의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도 되고. 



그레이스랜드 묘지공원에서 가장 좋은 곳에 가장 크게 묻힌 팔머 가의 가족묘
그리스 신전 스타일은 미국에서 신고전주의가 당시 유행해서다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석상 무덤처럼, 아주 높은 석곽 안에 안치되어 있다. 




부인이 재혼할 남자에게까지 유산을 남겼던 자상함의 끝판왕 남편 포터 팔머
사치했으나, 플로리다 땅 투자로 그 이상을 번 버사 팔머. 플로리다에서 사망해 시카고 여기로 돌아와 묻혔다.
이후 팔머가 후손들은 바닥에 묻힙니다


참고: 

베다 팔머 관련

https://www.palmerhousehiltonhotel.com/about-our-hotel/

https://www.amazon.com/gp/video/detail/0IQWGOM89UG43IQC2FFP48A0OL/ref=imdbref_vi_tt_piv?tag=imdbtag_vi_tt_piv-20

https://en.wikipedia.org/wiki/Chocolate_brownie

https://en.wikipedia.org/wiki/Bertha_Pa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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