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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n 24. 2019

나의 20대

전형적인 삶, B+의 미덕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나는 1985년생, 현재 한국 나이로 35살이다.


강남 8 학군 중 한 동네에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크게 공부를 잘하지는 않아 일류대에는 가지 못했지만

또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어서 아쉽지 않았다.

큰 어려움 없이 서울 4년제 대학교 중 한 곳에 입학했다.


인문학부의 한 전공으로는 취업이 어렵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

-사실 전공이 너무나도 맞지 않아 복수전공 말고는 졸업학점을 채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회과학부의 너도 나도 다한다는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애교심이 전혀 없었던지라 졸업식에는 스스로 참석하지 않았다.

일 년 정도 외국계 기업에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했다.

3개월 정도 한 토익 전문강좌 사이트에서 무료 강의로 공부한 후 TOEIC 930점을 획득했다.

만점이 수두룩 했었지만 혼자 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점수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그때부터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썼다.

대기업은 매번 낙방. 서류통과조차 되어 본 적이 없었다.

몇 번의 시도 후에 대기업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중구 무교동의 한 곳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고

왠지 느낌이 좋아 직접 서류접수를 하는 열의를 보였다.

서류 합격이라는 연락이 왔고 

5번 정도의 추가적인 면접, 테스트 등을 통해 최종 합격했다.


입사 통보를 받고 나서야

그 회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꽤나 많이 크고

안정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업시장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구직활동은 중단하기로 했다.

새로운 조직에 쉽게 순응했고 

점심시간마다 청계천을 거닐 수 있는 직장인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대기업, 교사, 공무원 등 

선망의 직장 혹은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나도 어디 가서 뒤쳐지지는 않는 20대 중반의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딱히 내세울 것은 없었지만 또 막상 빠지는 것도 없다는 이유로

지인들이 소개팅을 줄지어 잡아줬었다.

많게는 하루에 3번의 소개팅 제안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항상 누군가와 데이트를 했다.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


의대생, 한의사, 대기업 사원 등등

초반 몇 번은 선망이거나 신기하거나 편리하기도 했지만

금세 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매 번 들었다.


한의사와 데이트를 한다는 걸 주변에서 알았을 때는

나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내내 연락이 없던 어떤 친구에게서 소개팅을 주선해달라는

뜬금없는 문자를 새벽에 받기도 했었다.


그 시절 나도 순간순간이 힘들기는 했다.

A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 콤플렉스도 있었지만

또 딱히 엄청난 열정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큼 노력한 적도 없었기에

B+의 삶을 받아들이며 이대로도 괜찮다고 자위했다. 


언제나 그랬다.

반복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아.'

'이것도 감사하지.'

'잘나지는 않았지만 빠지지도 않아.'를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아주 크게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그것의 주된 이유였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만족하면 행복해진다기에

감사해하고 겸손해하고 

지금 내가 가진 삶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들만을 나열하여

'나도 이 정도로 괜찮아요.'를 뽐냈었다. 행복하고 싶어서.




그렇지만 나는 행복해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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