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Jul 15. 2019

신혼 전쟁 (2)

짠돌이 남편의 혹독한 경제수업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He is a real penny-pincher.

He is toooooooooo stingy and tight.


가까운 호주인들에게 농섞인 어조로 남편을 소개하는 말들이다.

나의 남편은 그야말로 '구두쇠'이다.


인생의 모토는 '가성비'이며

고급 매장에 들러 비싼 물건을 살 때보다

필요한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살 때 희열을 느낀다.


지난 7년간 지켜보니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매장에 가서 바로 구매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 바로 어제도 슬리퍼를 사러 아웃렛에 갔는데 그가 원하는 모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한국에서 주문해서 배송받는 비용과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하는 가격을 비교하더니

결국 사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70불이었는데 말이다.-


마트 영수증 하단에 바우처를 꼼꼼하게 챙겨보며

이번 주는 어떤 마트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주는 남자이다.


교환과 환불 작업을 결코 귀찮아하지 않으며

기름값이 쌀 때 주유소에 기름통을 들고 가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이런 남자와 함께 산지 6년째,

이런 그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정말 많은 다툼, 오해, 분노, 화가 있었다.

이런 남자와 사는 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연애와 결혼생활에서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경제' 일 듯하다.


상대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기 위해 호기롭게 지갑을 열고

뒤돌아서서 나 홀로 통장 잔고와 씨름하는 일.

결혼생활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남편은 연애 때도 다른 남자들과 좀 달랐다.


3살 어렸던 백수 남자 친구는

주말에 데이트를 하기 위해 평일 5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돈에 맞추어

데이트 코스를 짜 오고 맛집을 검색해왔다.


대구에서 서울로 나를 만나러 올라올 적마다 그는

KTX보다 2만 원 정도 저렴한 고속버스를 이용했고

정말 급한일이 있지 않는 한 택시는 타지 않았다.


29살이던 나는 자가용으로 데이트를 하는 것에 익숙했었지만

그의 '당당함'과 용의주도한 '준비성'에 너무나도 현혹되어서

정말 단 한 번도 그가 초라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가진 것 안에서' 철저히 현실만을 사는 사람이었다.

은행에 많은 지분이 걸려있는 할부 자동차도 없었고

비싼 식사값을 카드사에서 대신 결제해주지도 않았다.


허세 없이 담백한 그가 좋았다.

돈이 많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절약하며 사는 게 갑옷처럼 몸에 익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찌질 해 보이거나 인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자기가 돈을 좋아하고 아끼는 것처럼

타인의 돈도 소중하다는 것을 함께 알고 있었다.


내가 밥값을 계산할 때면 식당을 빠져나와

"애인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사줘서 정말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

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결혼을 했다.

그는 언제나 그대로였지만

내가 느끼는 것들은 그 전 연애기간과 달랐다.


결혼을 하고 한 1년 정도는 마트에 갈 때마다 얼굴이 부었던 것 같다.


내가 카트에 물건을 넣으면

'부인 이게 더 싼데요?'

'부인 이건 왜 필요한 거예요?'

'부인 이거 진짜 다 먹을 수 있어요?'

'부인.'

'부인.'


그의 그런 질문들 안에는

나의 소비패턴이 현명하지 못하고 충동적이라는 말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무조건 돈을 아끼려는 그가 미웠고

명확하지 않은 역할분담에 화가 났다.

언제나 그는 상사 아닌 상사였다.

날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 그것도 속이 상했다.


남편의 돈 씀씀이가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보다 셈에 밝았고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걸

옆에서 매일매일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현명하게 돈 쓰는 거 인정해.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못해도 좀 잘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정해진 역할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어떻게 내가 갑자기 남편처럼 해."


전쟁이었다.

비싼 명품을 갖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마트에서 10불 20불로 다투게 되는 게 서러웠다.

자주 울었다.




남편과 첫 번째 합의점을 찾아냈다.


100불 이상의 결제 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것.

그 이하에 대해서는 서로 터치할지 말 것.


서로 믿고 신뢰해보겠다는 의지만으로 싸움이 많이 줄었다.

돈도 되려 예전보다 덜 썼다.




사촌언니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출장을 간다고 했다.

언니도 너무 보고 싶고 여행을 한지 꽤 되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언니가 말레이시아에 온다는데 얼굴 보고 와도 돼?"라고 동의를 구했다.


생각 외로 그는 흔쾌히 "다녀와요"라고 했다.


나는 남편을 두고 혼자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언니도 만나고 콧바람도 쐬었다.

짠돌이 남편은 내가 정말 원하는 일에는 언제나 "YES."를 말해주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무조건 돈을 안 쓰려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필요하고 원하는 일을 위해 대비하는 남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조금씩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득으로 모든 지출을 부담하고,

남편의 소득은 무조건 저축하기 시작했다.


주마다 눈에 띄게 저축액이 늘어났다.




1 년 후 나는 혼자서 다시 런던-파리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그는 연식이 오래되지 않은 작고 하얀 중고차를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그는 열심히 자기를 따라와 준 나에게 언제나 더 큰 보상을 주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남편과 내가 안정적인 소득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주별로 하고 있는 저축, 지출의 항목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정리하였다.


- 고정 저축

- 생활비

- 각자 용돈

- 고정비(named 레전보인휴, 자동차 레지스트레이션, 전기세, 보험금, 인터넷, 휴대폰)

- 교육경력비(원하는 교육 수강료 혹은 남편 연장 구입)

- 영주 비자비

- 한국 경조사


용돈 계좌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계좌를 각각 항목별로 조인트 계좌로 오픈했다.

각자 웨이지 계좌로 돈이 들어온 후 정해진 요일에 메인통장으로 옮겨놓으면

계산된 금액대로 각 계좌에 자동이체로 분산되는 시스템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소득에서 지출 후 남은 금액을 저축하는 것을 꺼려했다.

소득에서 최소 50% 이상을 저축하고 남은 금액에 맞추어 살자고 했다.


짠돌이 남편에게 받은 몇 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나도 꽤 많이 변해있었다.


시스템이 만들어지니 생활이 안정되었다.

돈이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나가는지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고,

모든 계좌가 공동명의이기에 서로 더 책임감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었다.

남편의 웨이지가 올라가도 고정 저축금액만 상향 조정하고 지출은 기존의 금액에 맞추어 생활했다.

생활비를 늘린다고 해도 그 금액도 또 모자랄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약간 빠듯하게'가 어느 순간 그와 나의 생활비 항목의 주제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갔고

지금은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 이렇게 "내 남편이 짠돌이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그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함께

한편으로는 그런 그가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부유하지 않다.

나는 항상 남편에게 '돈이 없어. 남편 용돈으로 저녁 좀 사줘.'를 입에 달고 산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서글프거나 서럽지 않다.

그저 내가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빠듯하다는 의미일 뿐이기에.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부자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처음 호주에 올 때 한화로 30만 원 정도의 돈만 가져왔다는 것을

결혼하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너무 적은 돈으로 결혼, 이민생활을 시작한 우리기에

그때와 비교해보면 실로 엄청난 순자산 증가율이다.


우리는 잘 헤쳐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나열한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경제'에 관한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삶의 가치관'에 가까운 의미일 듯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부자의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다.

'부자가 되고 싶은지,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지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남편 직업상 현장 먼지 속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이

일을 마치고 20년 된 포드, 도요타를 덜덜덜 끌고서

얼마나 큰 대저택으로 퇴근하는지 그는 알고있다.


정말 허름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하우스 3, 4채를 소유한 부자라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월요일마다 쓰레기통을 건물 앞에 내놓고 대청소를 하는

우리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는 젊은 시절 잘 나가는 플러머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다 독립하자 자기 집들은 세를 주고

우리 아파트에서 제공하는 유닛에서 생활하시며 주에 20시간 정도 근무하신다.

토요일 저녁마다 빨갛게 입술을 칠한 고운 와이프 분과 외식을 나가신다.

딸은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골드코스트 대학병원 전문의이다.


호주에 와서 이런 남편과 살면서 나도 많이 변했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 것.

남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말 것.




내 남편이 스스로에게 인색할 수 있는 이유는

- 타인에 대해 의식하지 않음

- 우리 둘의 삶이 가장 중요함

- 미래지향적임

- 그를 위해 철저하게 현실을 객관화함

-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음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강한 사람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기승전 남편 자랑 같은 글이 된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장점을 내가 닮아가고

나의 장점을 그가 닮아가고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함께 노력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이 일련의 과정이

좋은 결혼생활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남편과 결혼해서 정말 행복하다.

여전히 다이아반지, 샤넬백 이야기를 하면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 대 짠돌이지만.


매일을 성실하게 땀 흘리고 돌아온 그를 보고 있으면

열심히, 감사히, 발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사랑으로만 버티기에는 사는게 벅찰 때가 있다.

사랑하는 좋은 배우자 혹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혼 전쟁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