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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15. 2019

신혼 전쟁 (3)

친정, 시댁, 친인척, 친구. 주변인 관계.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내 나이 서른에 결혼을 했다.

그때 남편의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


그래서였을까.

그의 주변인 중에 결혼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결혼생활에 대한 인식이 좀 생겼을 텐데

그런 경험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우리는 내가 호주에 오자마자 법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해외생활 중이라 비자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결혼생활의 시작이기에 결혼식은 필수였다.


하얀색 원피스에 하얀 구두를 신고 하얀 장미를 든 채

할머니 공무원이 읽어주는 성혼선언문을 따라 말하고

끼고 있던 커플링을 다시 서로 끼워주며 결혼식을 마쳤다.


생활이 조금 안정되면

한국에 나가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간소한 결혼식이 나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한국 결혼식을 어떻게든 먼저 했어야 했을까.'

종종 속상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나에게 그는 좋은 남편이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꽤 허술한 사위, 매부였다.

언제부터 좋은 딸이고 동생이었다고

아빠랑 언니만 생각하면 남편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 곳에 오기 전 아빠랑 언니 생각에 눈물 흘렸던 만큼

남편이 채워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나는 혼자 씩씩하게 대구에 인사도 하러 갔는데

엄마 산소에 인사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남편이 너무 섭섭했다. 

27살의 꼬마신랑은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집인 시댁도 마음에 거리가 생겼다.




그와 나의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인식도 좀 달랐다.


내가 호주에 온 목적은 결혼이었다.

호주에 나가 그와 결혼하기 위해 만 5년 시간의 회사를 정리했다.


결혼을 하러 호주에 올 때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의 축하, 우려와 함께

그들의 고마운 마음이 담긴 축의금도 꽤나 많이 받아왔다.


그 축의금으로 함께 신혼여행도 가고

초기 정착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 마음들인데,

그가 나의 사람들에 대해 무심한 것이 내내 속상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결혼을 한지도 모른 채

새벽에 카톡을 보내기도 하고

그의 친인척들은 와이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존중받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27살의 그도 남편이 처음이라 많이 서툴렀고

30살의 나도 아내가 처음이라 자주 실수했다.

서럽고 섭섭한 마음은 그때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위로해주긴 하지만 그땐 남편도 내가 왜 그리

서운해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1 년쯤 흐르고 남편과 함께 한국에 갔다.

늦었지만 양가 상견례도 하고, 

웨딩플래너를 통해 스드메 웨딩촬영과 웨딩홀 투어도 했다.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한지

직접 느낀 남편은 그때부터 나를 좀 이해했던 것 같다.

얼마나 서운하고 외로웠을지 말이다.

많이 미안해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거의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서로 알고 있고 만나보아서

이제는 서운하거나 섭섭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서로 감당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작은 약속 혹은 장치들을 마련했다.


명절, 어버이날, 생신 등에 따라

정해진 용돈과 선물은

시댁에는 나의 이름으로

우리 집에는 남편의 이름으로 보낸다.


사위로서 장인어른께

며느리로서 시어머님께 최선을 다하지만

그 이외의 시댁 가족 -형제, 자매, 친인척-은 각자 알아서 챙긴다.

- 따로 측정된 경조사비는 없고 각자 용돈으로 경조사 챙기기를 의미한다. -


친구에 대해서는 원하면 함께 만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등등




사실 내가 남편에게 이제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우리 아빠에게 아주 가끔 연락하지만

정작 자기 엄마한테는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


둘도 없는 효자처럼 자기 부모에게만 최선을 다하고

처가에는 시큰둥 냉담하다면 여전히 서운하겠지만

그로서는 정말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사위 노릇을 하고 있는 거라

딱히 뭐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남편 같은 아들 낳으면 난 서운해 미칠 것 같아.

엄마한테 전화 좀 해!!! 이 불효 아들아!!!" 잔소리를 끼고 살기에

이번 주말 나에게 

"서울 아버지 새로 가신 사무실은 어떠시대?" 물어보는 마음이 

그의 가상한 노력이란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그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노력하는 만큼

나는 스스로 나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진짜 우리 가족'에게 

더욱 집중하여 생활하려 노력한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점점 발란스가 맞아간다.


서로 잘하는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못하는 걸 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나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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