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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Sep 11. 2018

엄마들의 단톡 방

끼기도 빠지기도 애매한 방

H의 반 엄마들이 모여 있는 대화방은 학교 소식이 있을 때마다 들썩인다. 자기가 이해한 가정통신문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거나 작은 준비물이라도 남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현장학습이나 소풍 때 우리는 도시락을 이렇게 준비했어요, 하고 한 엄마가 사진을 올리면 또 다른 여러 엄마들이 저마다 도시락 사진을 올리고, 그 준비물은 이렇게 준비했어요 하고 또 한 엄마가 사진을 올리면, 어디서 사셨나요, 어디 시장 입구 문방구에서요, 빨리 가셔야 할 것 같아요 파란색은 한 개 남아있었어요, 저는 다이소요~, 대강 이런 식이다. 입학 후 매달 이어지고 있는 엄마들의 반모임(물론 나는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약속도 모두 그 대화창에서 이뤄진다. 이런저런 학교 소식이나 아이들과 함께 하기 좋은 동네 주변 행사, 체험 프로그램, 강연 정보들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 대화창은 입학하고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자마자 반대표를 자처한 엄마의 주선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학교 행정에 관한 알림을 모두 보내주는 학교장 주도의 앱과 담임선생님 주도로 알림장 내용을 다시 한번 상세히 보내 주거나, 학부모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는 내용이 전달되는 앱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데, 엄마들이 단체 대화방까지 만든다는 소리에 여간 피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정보는 이미 학교에서 보내주는 소식에 충분히 담겨 있고, 앱 알람이 있으니 발송과 동시에 받아볼 수 있어서 학교 정보에 어둡기도 어렵다. 게다가 보나 마나 말 많을 그런 단체 대화창에서 오고 갈 얘기들이 너무나 충분하게 예상되기도 해서 시작도 하기 전에 피곤했던 것이다. 어쩌다 보면 내가 H의 엄마가 아니라 고모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아직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들이 알게 되면 H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에 대한 시선은 또 어떻고. 그래서 나는 대화창 멤버이기는 했으나 거의 말을 하지는 않고 다른 엄마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한 번씩 들춰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내가 진짜 엄마였어도 그런 행동은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무 명 남짓 모여있는 대화창이라 한 마디씩만 해도 알람이 무시무시하기에 알람도 꺼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 대화방에서 오고 간 대화를 놓친 적은 없다. 개인차는 있을지언정 학교 소식이나 아이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하거나 조금만 느슨하면 아이가 난감한 상황에 맞닥드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정통신문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알림장도 읽고 또 읽어본다. 그러니 다른 엄마들의 말이 아무리 피곤하게 느껴져도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을까 봐 예의주시 하게 되는 것이다.


2018년 5월 13일. 꽃은 다 진 중랑천 튤립밭.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것처럼 엄마도 똑같이 학교 적응기가 필요하다.



4월 23일. 그날은 새벽부터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H 첫 소풍인데 새벽부터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가 좋지 않자 학교에서는 실내 활동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비가 와도 진행을 한다고 안내해왔으나 빗줄기가 너무 거세고 강풍도 좀체 잦아들 기세가 아니었다. 행여나 학교에서 비상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하며 날씨 정보만 들락거리고 있는 참이었다. 7시 4분. 대화창이 다시 열렸다. 다들 난리였다. 그날은 나도 대화에 끼어 한 목소리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노래를 불렀다. 걱정도 염려도 함께 하니 조금 나은 기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연대를 하는 것인가...

 


ㄱ이랑 ㄴ이랑 ㄷ이랑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는데
아이들 나오나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엄마가 올린 저 말속에 H의 이름도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을 앞둔 7월 24일의 일이다. 보자마자 아니 이게 웬일이야 했다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 곧 안심했지만 심장이 뛰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어느새 같은 반 친구들과 밖에서 만나 놀려고 약속을 다 하고 오다니. 같은 마음이었을 그 엄마가 다시 한번 약속을 확인하고, 했던 약속도 곧 잊어버리고 마는 아이들의 첫 약속을 성사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되어 내가 곧 답장을 보냈다.


H는 할머니 통해 확인하고
바로 약속 장소로 내보낼게요~^^



그날 H를 비롯한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웠을지는 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한참 있다가 H와 J가 함께 있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사진 아래에는 곧 이런 멘트가 달렸다.


J가 혼자 왔어요


유치원에서 온 J가 할머니를 추궁해 형아 찾아 삼만리를 했을 것이다. 사진 속 H와 J는 삐질삐질 땀이 난 채로 붉게 상기된 얼굴이었는데, J의 얼굴은 유독 심술이 나고 억울해하는 티가 역력했다. 형아가 혼자서만 놀이터에 갔다는 사실 때문에 섭섭했을 것이다. 아직은 서로 해야 하는 일이 다를 수 있고, 생활과 일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 같다. 함께 있지 않을 때 서로를 찾는 모습은 옛날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봐서는 다행이기도 하다. 


그날 엄마는 결국 고민 고민을 하다 놀이터에 나가지 못하셨다.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들도 서넛이 모여있었던 모양인데 그 사이에 끼어 H와 J를 챙겨 올 엄두를 내지 못하신 거다. 그런 생각들로 마음은 놀이터에, 몸은 집에 있었을 엄마가 나는 또 아프다. 대신 내가 그 대화창을 통해 아이들 단속을 부탁하고 마무리를 지었는데, 결국에는 한 엄마가 응가가 마려웠던 J의 뒤를 좇아와 집에 들어오는 것까지 확인을 한 뒤에야 돌아갔다.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몇몇 사건 이후로 그 대화창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여전히 끼기도 빠지기도 애매해 다른 엄마들 하는 양을 따라 눈치만 보고 있지만, 이렇게 저렇게 내가 얻는 것들, 받는 도움들을 생각하면 소홀히 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겨울방학을 마칠 즈음, 2학년 반 배정을 마칠 즈음이면 이 대화창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막이 흐르다 사라지는 수순을 밟겠지. 그래도 그때가 되면 나도 H도 J도 마음이 한 뼘씩은 더 자라서 담대하고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렵지 않다. H와 J는 친구들과 더 신나게 놀면 될 일이고 나는... 나는...



2017년 6월 23일. 엄마의 채송화. 애든 어른이든 그 마음은 그저 짐작만 할 뿐 대체로 닿을 수는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올해 엄마는 채송화를 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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