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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Sep 14. 2018

옥상 텃밭의 가을

엄마의 치유법

가을 농사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H와 J를 돌보거나 집안일 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을 밭에서 보내신다. 옥상에 꽤 오랫동안 가꾸고 지어 먹은 작지 않은 밭이 있고, 해마다 중랑천 텃밭을 신청해 분양받으신다. 올 여름까지 마당이 있는 집을 가꾸며 살았던 언니네 텃밭도 심심찮게 관여하셨으니 손 갈 일이 하나둘은 아닐 것이다. 중랑천은 걸핏하면 범람해 동부간선도로까지 통제되곤 하는데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텃밭은 중랑천과 도로 사이에 있으니 동부간선도로가 통제됐다는 뉴스는 곧 우리 밭이 침수됐다는 소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혀를 끌끌 차다가 물이 빠지자마자 바로 달려가 남아 있는 작물들 잎에 남은 흑탕물을 씻어내고 떠내려간 고랑을 다시 지어 올리면서 보수 작업에 여념이 없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지어 먹는 내 땅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어마어마하게 고집스럽다.




2017년 6월. 고추 따는 H. 꽃무늬 바지는 엄마가 만들어 입힌 파자마.




2017년 6월. 그날의 소출과 J의 옥상 사색. 꽃은 J의 등에도 활짝.




H와 J가 오기 전에는 나도 엄마의 그 도시 농사에 꽤나 공을 들였다. 봄 여름으로는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엄마와 함께 밭에 나가거나, 수시로 옥상 밭을 오르락거렸다. 재미가 없었다면 그랬을 리 없다. 손길 가는 만큼 소출을 내어 주는 것이 신기하고도 기특했다. 그런 것들로 간단히 무얼 만들어 먹는 기쁨도 심심찮게 누렸다. H와 J 덕분에 밭을 들여다보는 횟수와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다보니 이제는 그 밭에 무엇을 심었고,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대신 엄마가 밭에 머무는 시간은 이전에 비해 길고도 깊다. 그늘 한뼘 없는 그 뙤약볕 아래에서 머무는 시간, 심어놓은 씨앗이 싹 트기를 기다리는 시간, 포실포실 흙을 다듬고 까실까실 푸성귀 잎사귀를 들춰보는 시간, 꽃이 지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시간, 일하는 엄마의 손끝이 닿아 뭐든 여물어지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을 위해 물줄기를 찾고 물을 길어다 곱게 흩뿌려 주었을 시간을 엄마는 사랑한다. 엄마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내가 믿고 싶다. 가끔은 고통에 몸부림 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고운 정원을 가꾸며 피고 지는 꽃을 눈길로 매만지는 것이라면 한층 나을 것인데, 엄마가 하는 것은 농부의 피와 땀 그대로의 노동이다. 그럼에도 엄마를 말릴 수가 없다.



2017년 8월 27일. 가을 농사를 위한 밭갈기. 연장을 차지한 H와 J.




H와 J에게 치료가 필요한 만큼 엄마에게도 치료가 필요하다. 마음만 그럴 뿐이다.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힘든 날들을 견뎌왔고 또한 견뎌 나가야 한다. 뙤약볕 아래서 땀처럼 콧물처럼 범벅으로 쏟아냈을 눈물로 고추가 달리고 오이가 자랐을 것이다.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엄마는 여름내 흘린 땀을 다 갈아 엎고 가을 농사를 시작했다. 중랑천에는 아직 나가보지 못했으나 옥상은 벌써 풍년이다. 엄마 마음에도 풍년 들기를, 든 것이 있어야 쏟아낼 것도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는가. 나는 다 헤아리지 못하나 게워내고 비워낸 후에 다시 풍요로 들어차소서 어머니.



2018년 9월 14일. 여름인양 무성한 엄마의 가을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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