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오전에 리타언니에게 안부 문자가 와서 천식 환자 같은 목소리로 잠시 통화를 했다.
“너 베를린에서 계속 산다면 어떨 거 같아?”
“..... 생각해봤는데 진짜 한국이 최고여.”
꼭 엘리베이터도 에어컨도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모국어로 친구와 떠들 수 있는 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나 커피를 정확하게 주문하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크다. 미안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영어 메뉴 달라고 하는 것도 조금 질렸다.
오후 내내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근처 멕시칸 레스토랑 자파타(Zapata)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치킨 엔칠라다를 흡입하고 너무 더워서 정처 없이 걸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짜가 마시고 싶었다. 스타벅스 사랑합니다. 여섯 시 반, 기온은 아직도 32도였다. 겨우 일리 커피 간판이 있는 작은 카페를 발견하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주문했다. 커피, 아이스커피를 원합니다. 아이스크림 말고 아이스큐브 넣은 커피요. 절실한 내 표정을 읽은 사장님이 아주 작은 잔에 얼음 세 개 동동 띄운 커피를 가져다 줬다. 한국이었다면 커피 인심 박하다고 두고두고 저주를 했겠지만 그저 행복했다. 카페인과 알콜이면 나는 매우 쉽게 불행에서 벗어난다. 골 때리는 건 옆 테이블의 커플이 아주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거다. 야 늬들은 덥지도 않냐 이놈들아.
아이스커피를 마시고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아 바로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졌다. 베를린에서도 손꼽히는 아이스크림 맛집이라 이 동네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한국 사람들도 봤다. 더위에 지쳐 방에서 잠시 쉬다 저녁 마실 나가는 길에 크루즈 여행 다녀오는 소냐와 엘라를 만났다. 어쩐지 주말 동안 둘 다 전혀 안보여서 야반도주라도 한 건 아닌가 궁금했다.
버스 정류장을 가기 위해 단트라 지나가다가 막스보고 반가워서 일단 들어갔다. 여동생이 둘째 낳기 위해 병원에서 열심히 힘주고 있는 중이라고. 참고로 둘째 아이 역시 아들이라고 한다. 이름 뭐 지어놓은 거 있냐고 물어보니 말도 안 되게 독특한 이름(보디?라고 하네)이 유력한 후보라고 하여 둘 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아주 약간 걱정했다. 학교에서 놀림 당하면 안 될 텐데. 너무 더워 라들러 한 잔 단숨에 들이키고 더 햇 바* 에 왔다. 오늘 따라 라이브 음악이 너무 듣고 싶었다.
이 재즈바는 기찻길 아래에 있다. 이보다 더 힙한 장소는 아마 없을 거다. 재즈에 대해 더 알고 음악을 들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는 건 1도 없어서 약간 안타까웠다. 몰라도 음악을 듣는데엔 아무 문제가 없긴 하다.
구석에 앉아 있다가 뮤지션들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는 자리로 총총 옮겼다. 나처럼 홀로 바에 앉아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첫 칵테일로는 피나 콜라다. 두 번째는 맨해튼을 주문했다. 재즈 듣는데 맨해튼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을 마셔줘야 할 것 같았다. 시카고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있었다면 아마 그걸 주문했을 것이다. 한 시간 가량의 첫 번째 공연이 끝난 후 두 번째 공연이 시작됐는데 어디선가 리코더 소리가 들려 이상하다 했더니 관객 중에 한 명이 같이 연주하고 있다.
연주 도중에 계속 열차가 지나가는 진동이 느껴진다. 이곳은 매일 밤 8시에 문을 열어 대강 12시까지 계속 공연이 이어진다. 따로 입장료는 없지만 대신 음료 가격이 약간 비싸다. 기찻길 아래에 양 옆으로 출입구를 만들어놓고 밖에서도 훤히 다 보이는 유리벽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음악 소리에 이끌려 자연히 바 앞에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즐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나란히 서서 구경하는 모습들이 역시나 미어캣들 같다. 그 중 몇 명은 바 안으로 들어와 칵테일을 마시며 남은 공연을 더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한동안 밖에서 음악을 듣다가 총총 자기 갈 길을 간다.
아주 심하게 격정적인 드럼 솔로가 이어지는 와중에 미국에서 온 것임에 분명한 관객들이 데시벨 200 정도의 수준으로 박장대소를 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마치 20년대 베를린의 재즈바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공연과는 상관없이 자지러지게 웃어재끼는 얼뜨기 부자 관광객들과 나처럼 가난하기 그지없이 고매한 취향만 가진 아주 먼 나라에서 온 작가 지망생이 있었을테다. 주구장창 읽었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소설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12시가 되어 공연이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누가 봐도 약쟁이 홈리스 백인 아재가(나보다 어릴 지도 모른다) 돈을 구걸한다. 무시하고 지나갔더니 정류장에서 통화 중인 다른 여자에게도 구걸한다. 그녀도 무시하자 그녀의 대화를 조롱하듯이 따라한다. 우리는 무언의 계약이라도 맺은 듯이 버스가 올 때까지 서로의 옆자리를 지켜줬다. 이 약쟁이들은 건장한 백인 남자들에게는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만만한 여자들한테만 동정을 바란다. 벌써 몇 번이나 당했는지 모른다. 아까 낮에는 야외 좌석에서 밥을 먹는데 형편없이 트럼펫을 불며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인간도 봤다. 적어도 음악이라고 할 정도의 연주를 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지. 우연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마주친 약쟁이 노숙자들은 죄다 백인 남자들이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사회 보장 제도라면 서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이 나라에서 저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백인 남자라면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단 한 번은 주어졌을 거다. 물론 ‘제대로’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막스가 퇴근하지 않아 라들러 한 잔 더 마시고 귀가했다. 막스의 조카는 엄마 뱃속이 너무 안락해서 그런지 어쩐지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동생이 진통을 시작한지 20시간이 되었다고. 보통 초산이 힘들면 두 번째는 그나마 쉽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엄마 말씀으로는 오빠는 대략 하루가 지나고서야 나왔지만 나는 진통이 시작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태어났다고 했다. 가만 놔두면 울지도 않고 낯도 안 가리고 순해서 거저 키웠다고도 하셨다. 말썽도 안 피우고 무난한 성격으로 곱게 자랄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보내놓으니 완전 지랄 맞은 미친 인간이 되어서 나한테 속았다고도 하셨다.
엄마,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디다. 아시잖아요?
* The Hat Bar 베를린에 다시 방문한다면 단연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다른 수많은 술집처럼 현금 결제만 가능하고 칵테일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당연히 맥주도 판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것이 분명해서 일요일 저녁에 갔는데 그래도 사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