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그는 동백림에서 통하지 않았다.

7월 27일

by 안나

그 유명한 베를린 게이 프라이드의 날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 통용되는 정식 명칭은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hristopher Street Day), 약칭 CSD라고 한다. 1969년 뉴욕의 게이바 ‘스톤월 인’에서 경찰들이 과하게 단속을 실시했고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최초로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사건이 ‘스톤월 항쟁’이며 올해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베를린 퍼레이드의 슬로건은 바로 이 문장이다. “Every riot starts with your voice.”


모든 항쟁은 바로 당신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13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접했던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을 목도했기에 이번 여행 일정도 일부러 7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맞춘 것이었다. 허나 전날 밤의 숙취와 피로로 인해 퍼레이드를 보고 싶은 의욕은 제로에 수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늘 가던 베트남 식당에서 오리 고기를 넣은 팟 씨유를 먹고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근처 카페에서 로제 와인을 마셨다. 약간 기대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정신 나간 스타일은 못 봤다. 다만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늘씬한 남자들이 꽤 있었는데 다리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서 몰래몰래 봤다.


나란 변태.


당연히 사진은 찍지 않았다. 물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굉장히 좋아했을 테지만. 나중에 더 많은 이들을 관찰했으나 아 뭐 저렇게도 입었고만, 고생했네, 정도의 감상 밖에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스타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무리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이 시기에 일부러 휴가를 맞춰서 온 외국인들도 엄청나다고 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효시에 된 사건에 유래를 둔 유서 깊은 행사임과 동시에 베를린 최대의 파티인 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오후 3시 임에도 과음으로 인해 길 한복판에서 기껏 마신 맥주를 다시 토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퍼레이드 초반을 놓쳐서 그저 단순한 대환장파티를 피곤한 상태로 지켜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콘텐츠를 접해서 그런가 작정하고 헐벗은 수많은 이들을 봐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베를린 역시 유럽을 뒤덮은 폭염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함께 퍼레이드를 구경하기로 한 예진씨에게 약간의 사정이 생겨서 그저 기다려야 했다. 그리하여 약속된 시간에서 3시간이 지난 후에 예진씨와 접선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이자 베를린 퀴어 문화의 핵심 장소인 놀레도르프 광장역은 과밀한 인구밀도로 인해 잠시 폐쇄되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잠긴 문 앞에 매달려 그 안에 배치된 경찰들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다.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 때문에 예진씨는 한 정거장을 걸어와야 했다. 길고긴 여정이었다. 오후 5시가 되어 드디어 우리는 접선했다. 퍼레이드고 뭐고 살벌한 더위와 각자의 스트레스로 인해 맥주가 간절했기에 근처 펍에서 갈증을 달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예 퍼레이드 구경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사람들 사이를 뚫고 길로 나섰다.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지독하게 술에 취해서 엄청난 음악 소리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광란의 도가니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둘 다 너무 피곤했다.


옷을 너무 많이 입고 있었다.


술을 안 마셨다.


나는 곧 투어에 참여해야 해서 9시 쯤 예진씨와 저녁을 먹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하지만 그렇게나 기대했던 20년대 베를린의 분위기를 체험하는 투어는 실망 그 자체였다. 투어 설명은 뭐 기가 막히게 해놨더니만. 역시 인터넷을 믿어서는 안 된다. 중간에 너무 지겹고 피곤해서 투어의 마지막 펍은 생략하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그래도 팁은 안 줄 수가 없어 5유로나 줬다. 비싼 맥주 한 잔 마셨다고 생각해야지, 어쩌겠나. 투어비로 45,000원이나 냈는데. 만나자마자 은근슬쩍 에어비앤비에서 20프로나 떼어 간다는 등의 말을 해서 처음부터 정이 떨어지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베를린을 가이드하겠다는 사람이 바로 오늘 CSD 행사가 있는 줄 몰랐다는 거다. 만나기로 한 역은 일시적으로 폐쇄됐고 일찌감치 메시지를 보냈어도 답은 없고. 차라리 취소됐으면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른 참여자는 한 시간이나 늦어놓고 가이드를 못 찾겠다는 둥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해서 기가 막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가 진정한 승자였다.


더크라는 가이드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거니와 베를린에 대한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해서였다. 허나 가이드로는 영 부족했는데 나에게 질문을 하다가도 내 대답을 칼 같이 자르기도 했으며, 은근히 터키 출신의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과 무시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서독 출신의 아재와 단둘이 한낮의 베를린을 걸어 다녔던 것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개인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특히나 나이든 아재와는. 그가 대단한 지식을 가졌거나 투어가 흥미로웠다면 상관없었겠지만 기껏 그가 한 것은 베를린에서 아주 오래된 펍에서 술 한 잔 마시면서(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그 펍의 내부 장식을 보는 것과 백년 전에 사용했다는 마을 공동 펌프를 보여주고 작동해보는 것뿐이었다. 특히나 유서 깊은 펍에서는 바깥 자리에 앉아 있다가 벌과 파리가 너무 많아 안 쪽 테이블로 옮겼는데 굳이 예약된 좌석에 앉아서 날 당황하게 했다. 여기 앉지 않는 게 나을텐데요, 하는 말에 어차피 잠깐 있다가 갈거니까 괜찮다고 했다. 당연히 그걸 지켜보는 사장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반도 넘게 남아있는 리슬링 와인을 3초 만에 들이키고 서둘러 일어났다. 내가 지금 이 사람과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펍의 사람들이 내가 이 독일 아재와 데이트라도 한다고 생각할까봐 끔찍했다. 가장 어이없었던 상황은 터키 이주민 주민들이 많은 동네에 들어선 5성급 호텔에 대한 언급이었다.


“잘 봐, 여기 유리가 깨진 거 보이지? 이 호텔이 여기 들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 터키계 이민자들이 이렇게 막 유리를 부순거야.”


그는 이렇게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하며 은근히 내게 베를린의 터키 이민자들이 몰지각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했다. 만약 그 사건의 내면에 숨은 의미(이방인으로 정착하기 힘든 상황, 교육 기회와 적정 수준의 일자리 부족, 유럽의 전반적인 경기 불황, 베를린 시의 예산 문제 등등)를 파악하려는 약간의 노력이라도 했다면 그렇게 한 두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주민이 주를 이루는 동네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겨우 5성급 호텔 건축이라면 나라도 돌을 던졌을 것이다. 지나가던 우리 개도 함께 던졌을 거다. 베를린에 겨우 2주일 있었던 나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데 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부터 여기 살았던 사람이 왜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있을까.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살았던 집 앞에서 자기가 썼다는 책의 한 장을 읽는 것으로 설명을 마칠 때부터 어째 느낌이 싸하다 했다. 이 아저씨야, 그런 건 나도 벌써 구글에서 다 찾아보고 왔다고요. 그 정도 관심이 없었다면 내가 공부도 안하고 굳이 이런 세부적인 주제의 투어를 신청했겠어요? 어디 피 같은 남의 돈을 날로 먹으려고. 이 뻔뻔한 영감 같으니.

펌프 하나 찍었네...


덥고 피곤하고 짜증난다.


다시 출발 지점 근처의 자기 친구가 하는 펍으로 간다고 하여 미안하지만 내가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그만 끝내자고 하고 프리드리히샤인으로 향했다. 이 아재와 1분이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아 서둘러 헤어졌다. 앞으로 다시는 내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데 만나기로 한 식당 앞에서 문자를 보냈지만 예진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아까는 3시간 지금은 대략 1시간. 난생 처음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딱히 화는 나지 않지만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하루 종일 밖에 있었더니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여행 중이니까 이렇게 모든 일이 다 꼬이는 날도 있는 거지. 게다가 자꾸 왔더니 프리드리히샤인에 정이 든 것도 같다. 사랑과 관심에 고픈 어린 사람들로 가득 찬 놀렌도르프플라츠 근처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오늘 하루를 이 동네에서 보냈어도 재밌었을텐데. 예진씨를 기다리면서 방금 전에 보았던 시위대를 생각했다.


근처 역에 도착하고 약속 장소로 걸어오는데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너무 화려하거나 과하게 헐벗은 사람들은 없었지만 다들 개성이 넘쳤다. 다소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분위기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거의 다 독일어로 쓰여 있어서 정확히 무엇에 관한 시위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대답을 잘 해 주려나 잠시 고민하다 무지개 디자인의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저, 실례합니다만 지금 시위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오늘이 프라이드잖아요. 성소수자 인권 전반에 대한 시위에요. 서쪽인 놀렌도르프 광장에서 하는 행사와 비슷하지만 여기까지 퍼레이드 행렬이 오지는 않으니까요.”


독일에서 동성 결혼의 완전 합법화가 이뤄진 것은 2017년. 미국과 영국보다도 늦은 시기라 다소 의아했다. 그동안 독일 국민의 절대 다수의 찬성 여론이 우세했지만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이 반대했다고. 차분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시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게 대답해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서울에서는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이 사탄의 무리들이라며 이런저런 욕을 먹는다는 뉴스가 종종 나왔었는데.


30분 후, 아까 내 문자를 받고 다시 잠들어버렸다며 지금 달려가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이상하게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약속 장소로 서둘러 달려온 예진씨의 눈이 피로에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한 사람한테 괜히 저녁에 보자고 한 것 같다. 예진씨와 독일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 가려고 했으나 주방이 예상보다 일찍 닫는 바람에 거기 직원이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추천해줬다. 아주 훌륭한 양반이었다. 그의 추천을 듣는 척 하다가 늘 먹어보고 싶었던 팔라펠을 먹어보기로 했다. 딱히 뭘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늘 궁금했지만 혼자서는 시도를 못했던 음식이다. 숙소 근처에 아주 싸고 충격적으로 맛있는 레바논 레스토랑이 있어서 매일 같이 끝내주는 팔라펠을 먹었다는 예진씨와 함께 배터지게 저녁을 먹고 근처에 꽤나 훌륭하다는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진씨는 주로 카페에 갔던 터라, 이곳의 펍에서는 단 한번도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여기 와서 한 번도 소세지를 먹은 적이 없어서(슈니첼도!) 소세지 안주에 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각자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나를 계속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며 밥도 맥주도 본인이 다 사길래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하지만 한국인은 행동이 빠르다. 고마워요 예진씨.


한참을 떠들다가 이제 슬슬 일어나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텐더가 실례가 되지 않으면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는 글로벌 이슈 특히 북한에 대해 관해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 갑자기 극동 아시아 및 북아메리카 등의 국제정세에 대해 브리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진씨는 피곤한 와중에도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한 태도로 대화에 임해서 약간 민망했다. 오늘은 딱히 정치 얘기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너와 너희 친구들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 연애 상태는 어떤지, 휴가에는 뭘 하고 싶은지, 이 동네에 추천하는 레스토랑이나 바는 어디에 있는 지, 아까 퍼레이드 할 때 뭘 했으며 그 중 가장 미친놈들은 누구였는지, 그런 주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남한에서 왔음을 알리는 순간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그동안 이 주제에 대해 남한 사람들의 실제 생각을 무척이나 듣고 싶어 했던 눈치였다. 여행 중에 조금이라도 세계적인 사안에 관심이 있는 똘똘이 청년들을 만나면 꼭 이런 질문을 듣는다.


“맨날 뉴스에 북핵이나 전쟁 도발 등에 대해 나오는데 서울에 산다는 너희들은 어떤가? 무섭지 않은가?”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청년실업율과 높은 집세, 지구온난화 그리고 월요일이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인터넷 안 될 때다.”


그러나 세상 진지한 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세계 평화에 대해 걱정했다. 내가 대충 던지는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마음이 아팠다. 이스트 베를린에서는 내 개그가 통하지 않는 구나. 웨스트 베를린에서는 내가 한 마디만 해도 다들 빵빵 터졌는데. 이 양반은 대대손손 동백림에서 살았나보구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과 부모님 및 다른 친척들이 동독 출신이라 아무래도 서독 출신 사람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는 개인 정보까지 알려줬다. 순간 나의 통찰력에 약간 놀랐다. 유머 감각이 부족하고 진지한 쪽은 역시 동쪽 지방 사람들이었어.


오늘로서 베를린 여행을 마무리하며 폴란드로 떠나는 예진씨와 함께 역으로 걸어가며 이런저런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했다. 아무 생각 없이 U반에서 검표원 만난 적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녀는 그야말로 울부짖으며 대답했다. 예진씨는 하필 일주일 교통 패스를 다 사용한 다음날 깜박 잊고 U반을 탔다가 검표원을 만났고 60유로의 벌금을 내야 했다고 한다. 내가 사용하는 한 달권 가격이 그 정도다. 참고로 나는 AB 지역만 이용하는 오전 10시 이후에 탑승 가능한 한 달 패스를 샀다. 예진씨의 생생한 불운을 듣고 있자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나 역시 베를린에 온 지 열흘 째 되는 날 표검사를 당한 적이 있었다. 아주 멀쩡하게 생긴 일상복 차림의 양반이 열차가 출발하자 스리슬쩍 앞에 나와서 뭐라뭐라하니 사람들이 주섬주섬 표를 꺼냈다. 나도 눈치껏 한 달 패스를 보여줬다. 표검사 거의 안 한다더니 하긴 하더만. 진짜 재수 없으면 걸린다던데, 실제 사례를 보게 될 줄이야. 앞으로의 여정에서는 건강하고 행복한 순간만 가득하기를 빌어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예진씨의 최종 목적지는 친구가 거주하고 있다는 남프랑스. 지금 거기는 용광로 수준이라는데 더위 안 먹게 조심하라고 인사를 건넸다. 여행 중의 인연과 특별한 순간을 만든 건 처음이었다. 한국어로만 떠들었더니 어찌나 기분이 좋든지. 흐뭇한 기분으로 침대에 들어갔다.


오늘은 꿈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퍼레이드의 시작과 함께 두 명의 중년의 경찰관 아저씨들이 손을 잡고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이 다음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면에 실렸다. 스물 두 해를 한국에서 살았던 내가 넓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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