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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25. 2019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8월 3일 

커스틴과 요르그, 헨릭과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한 날이다. 다행히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만 새벽까지 노느라고 엄청 초췌했다. 어디에서 만날까 고민하다가 늘 가던 프리드리히샤인에서 만나기로 했다. 3주 동안 다섯 번은 간 것 같네. 조금 일찍 나와 공원 근처 서점에서 엽서 몇 장과 록산 게이*의 [헝거]를 샀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보다 더 잘 읽히는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오후가 조금 지난 시간, 타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근처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한국어 욕을 속성으로 마저 다 가르쳐줬다. 그럴 의도는 없는데 헨릭이 한국어 욕을 정리해놓은 웹페이지를 찾아서 어쩔 수 없었다. 현명한 민족들답게 단기간에 완벽하게 숙지했다. 나의 첫 번째 한국어 제자들과도 그렇게 작별했다. 안녕, 요르그 헨리. 짧은 시간동안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남자들이 떠난 후 커스틴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복스하게너 플라츠 벤치에 앉아 남은 이야기를 했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 공원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내년 여름에 보기로 약속했다. 헤어지는 U반역에서 재빨리 포옹을 했다. 커스틴과 나 둘 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얼른 대기하고 있던 열차에 올라탔다. 거기 더 있으면 나도 모르게 통곡을 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겉으로 조금 울었고 속으로는 참 많이 울었다. 커스틴 역시 돌아가는 길에 울었다며, 이번 여름을 잊지 못할 거라고 문자를 보냈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13년 후가 아니기 만을 바랄 뿐.      


빨개진 눈을 하고 단트라에 들러 막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내게 선물을 줬다. 여행할 때 쓸 수 있는 작은 지갑이었다.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마음 씀씀이에 또 울컥했다. 한국어에 ‘정’이란 말이 있다고 알려줬다. 영어로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이 단어는 사랑보다도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더 있으면 일하는 사람 붙잡고 또 울 것 같아서 곧 일어섰다. 작별 인사는 내일 하면 되니까.   

   

베를린에서 이렇게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이 들지는 몰랐다. 유독 이 도시에서 외로움을 많이 탔고 그럴 때면 낯선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그들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얼마나 내게 힘이 되어줬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계속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에게도 기회란 것이 올까.      


잠들기 전 아주 많이 울었다.     


이 사람들이 나한테 제발 죽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이런 내가 뭐라고.      



토요일 밤이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Roxane Gay 그녀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는 아마존 올해의 책, 아마존 페미니즘 1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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