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Aug 30. 2019

태풍은 방심할 때 온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1 

4년 전 가을, 추석 연휴 2주 전 나는 갑작스럽게 대만 행을 결정했다. 당연히 모든 티켓이 두 배가량 비쌌지만 카드를 긁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경기 북부의 소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야 했다. 시집도 안간 과년한 딸이 가족과 친지들을 버리고 바다 건너에서 유람을 즐기고 오겠다는 사실을 탐탁치 않아 하셨던 엄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2주 내내 청소를 하고,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기름진 전도 부치고, 출국 전날에는 몇 시간이나 함께 고스톱을 쳤다. 허리에 경련이 왔으며, 패가망신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동력 착취와 금전적인 손해는 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떠나는 것보다 돌아오는 것이 더 지랄맞다는 것은 정확히 사흘 후에 알게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그 고단한 여정의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이 있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연결편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 날 오전부터 모든 비행기 출발이 한 시간씩 지연이 되었다. 새벽 5시에 눈떠서 7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는데, 출국장에서 3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 추석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공항 터미널의 모든 곳은 다 헬게이트였다. 일주일 먼저 대만에 도착해 유유자적 홀로 여행을 즐기고 있던 이번 여행의 친구, 리타언니에게 대강 상황을 설명했다. 아마 예정보다 2시간은 늦을 거라고.


과연 리타언니를 무사히 만나서 국제 미아가 되지 않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오후 늦게 타이페이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내로 들어갔다. 그렇다, 비가 오고 있었다. 이정도 비는 곧 그칠 거니까 괜찮겠지. 그런 안일한 태도를 버리게 된 것은 그 다음 날 밤 뉴스에서 폭우로 인해 타이페이 시내 한 건물에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시점이었다. 타이페이에 망할 태풍이 상륙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다음 날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아주 잠시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오후 들어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우 호텔로 돌아와 TV를 켰다. 이름도 심란한 태풍 ‘두쥐안’이 경로를 바꿔 대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는 일본으로 가던 놈이었는데 어찌하여! 다급한 표정의 기상 캐스터들이 알 수 없는 말로 긴박하게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중국어로 들으니 더 심각하게 들렸다. 대만 여행 카페에 들어갔다. 다들 집단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오후 3시를 기점으로 타오위안 공항의 모든 항공편이 결항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와중에 에바 항공은 떴다며 다들 경탄해 마지 않았다. 


4시, 타이페이의 상징인 101빌딩이 강풍에 흔들리고 있으며, 전망대에 있던 관광객들에게 물과 담요가 지급되었고 엘리베이터 운행 중단으로 약 60층까지 걸어 내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5시, 시내 지하철 역에서 폭우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하철이 운행을 하지 않으니 도대체 숙소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냐는 물음도. 여기는 공항인데 항공편 결항으로 다시 시내로 돌아가야 하지만, 숙소는 대체 어떻게 구하는 지 아니 그보다 시내로는 어떻게 가야할 지 걱정하는 글도 끊임없이 올라왔다. 


6시, 버스도 택시도 운행이 정지되었다. 뉴스에서는 사람들과 가로수가(!) 비바람에 날아가는 화면이 나왔다. 시내 외곽 관광지로 향하는 도로가 폭우로 무너진 것 같았다. 


7시, 시내 한 건물 꼭대기층 전체에 화재가 발생했고, 뭔가 폭발해서 불길이 치솟는 현장이 뉴스 화면에 잡혔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는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호텔 창문으로 떡하니 보이던 거대한 101 빌딩이 비바람과 안개로 인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가로수가 공기 인형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이러다가 굶어 죽는 거 아냐? 라는 질문이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리타언니는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아마 언니였을 거다. 저녁 한 끼 안 먹는다고 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불안했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가 결항될 수도 있었다. 배고픈 상태로는 공항 난민이라는 역경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결연한 표정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 갈 채비를 했다. 냉장고에 물이 없었다. 라면도 먹고 싶었다. 아 엄마가 추석 때 어디 놀러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편의점을 털 기세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산은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라 그냥 맨몸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 웃음이 났다.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강풍이 몰아쳤다. 옷이고 머리고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살벌하게 휘몰아쳤다. 자칫하면 날아오는 무언가에 머리를 가격 당할까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편의점으로 달렸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물미역 같은 머리를 하고 편의점을 털기 시작했다. 물과 삼각김밥과 컵라면과 가장 중요한 맥주. 그리고 후식으로 먹을 밀크티와 우유 푸딩도 쓸어 담았다. 허리케인 온다고 마트에서 사재기하는 서양인들을 보며 마음껏 비웃었는데,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이 귀중한 식량을 가지고 무사히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는 길은 식량 때문인지 더 비장한 각오를 가지게 되었다. 좀비 영화에서 치료제 같은 걸 획득해서, 죽을 고생을 하며 연구소인지 군부대인지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꼭 돌아가다가 흑인이나 히스패닉 캐릭터 한 명은 좀비 떼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으며 죽는다. 하지만 나는 어찌됐든 살아서 그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또 그 다음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해야 했다. 젠장.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전방을 경계하면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가, 바람에 쓰러져서 나뒹구는 바이크와 가로수를 보고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내가 이러려고 여길 80만원이나 주고 왔어! 맨날 개처럼 일하고 추석에 쉬려고 왔는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박장대소를 할 수 있었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리타언니도 옆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산발을 하고.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꼭 끌어안고 비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웃고 나니, 더 이상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 날 밤,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한참 직장 상사와 소개팅 남의 욕을 하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태풍 두쥐안은 대만 시내를 뒤집어 놓고 중국에 상륙한 뒤 곧 소멸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도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매일매일 고민만 하던 상황이었고 남들처럼 평범한 관광과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두쥐안씨를 만나 재난 영화를 한 편 찍고 나니, 한바탕 요란한 꿈을 꾼 기분이었다. 적어도 시시한 여정은 아니었으니. 이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조금은 당차게 때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직장 생활을 잘 이어가면, 그건 10대와 20대를 위한 로맨틱 드라마가 될 수 있었겠지.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이번 여행의 최종 관문이었음을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리타언니와 나는 다른 날 타이페이에 도착해서 같은 날 한국으로 귀국하는 여행 일정을 짰다. 공교롭게도 동시에 이스타 항공사의 티켓을 결제하는 순간, 나만 문제가 생겨서 다른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다. 나는 인천-타오위안, 언니는 김포-송산 공항 이용으로 우리는 체크 아웃 후 각자 시내에서 헤어졌다. 언니는 지하철을 타고 20분만에 송산 공항에 도착해 오후 4시쯤 김포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의 항공편은 5시 출발 예정. 홀로 타오위안에 도착하여 쓰고 남은 대만 달러는 마사지에 다 털어 넣었다. 나는 내리는 비를 뚫고 지우펀도 갔다 왔고, 그놈의 딤섬도 먹었으며, 마사지도 받고, 공항 면세점에서 귀여운 머그컵과 펑리수도 한 박스 샀다. 이러면 다 한거지. 


타오위안 공항은 전날 결항으로 인해 출발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흡사 시리아 난민 캠프 같은 상황이었다. 인천 공항이 헬게이트였다면, 타오위안 공항은 진짜 헬이었다. 터미널 안의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공항의 모든 게이트는 마구 바뀌고 있었으며, 내가 탈 비행기는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 시각 2시간 후에 게이트가 열렸다. 오후 7시, 이제 집에 간다! 신나게 자리에 앉았다. 한참 후 기장의 방송이 들렸다. 정말 미안한데 45분 후에 출발할거야, 이해해줘서 고마워. 승객들은 너도나도 승무원에게 술을 요청했다. 한참 후 또 기장의 방송이 들렸다. 정말정말 미안한데 관제탑에서 45분 더 기다리라네, 미안해서 어쩌지? 지금 비행기들이 활주로에도 가지 못하고 다같이 기다리고 있어. 조금만 더 안전한 기내에서 기다려줘, 이해해줘서 고마워.


나는 이해한 적 없는데, 이 자식아! 


이 방송으로 다들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후 9시, 한 남자 승객이 승무원에게 울먹이며 물었다. 이거 타고 인천에서 싱가폴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되는데, 저는 어떻게 하나요…직원도 마음으로 울었다. 태풍 때문에 어제 다 결항되어서 지금 공항이 난리에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태풍으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고국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 비행기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고, 하필이면 활주로 두 개 중 하나가 공사 중이라, 모든 이착륙 비행기는 활주로 하나를 동시에 이용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 착륙하는 비행기들도 차례가 밀려서 다들 몇 십 분 동안 공항 주변만 돌고 있다고도 했다. 이러니 게이트가 끊임없이 바뀌고, 직원들은 비행기가 언제 뜰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승객들은 여차하면 폭도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집에는 어떻게 가지? 고민하다 오빠에게 다급한 메시지를 날렸다. 제발 도와달라. 나를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주시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굽신굽신. 9시 30분, 드디어 비행기가 인천으로 출발했다. 짐 찾으니 1시,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자기 연민에 빠질 기운도 없었다. 출근, 그놈의 출근을 해야 했다. 망할. 


어쨌거나 타이페이는 여러모로 굉장한 도시였다. 나는 101 빌딩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거기서 보는 타이페이의 야경이 어떠한 지, 중정 기념당인지 박물관인지 뭔지 하나도 보지 못했고, 타이페이의 핫 플레이스는 단 한 군데도 가지 못했지만 그 해 가을,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유쾌한 3일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거면 다 된 거 아닌가. 


하지만 다시는 여름의 끝자락에 동남아시아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 


작가의 이전글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