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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31. 2019

모든 여행은 누군가의 친절로 완성된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2 

언니, 여기 런던 애새끼들 진짜 무서운 놈들이야.


여름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온 후배가 파스타를 입에 넣다 말고 경고했다. 그 당시 런던에서 2년 넘게 디자인을 공부하던 희라는 십대 아이들에게서 다채로운 봉변을 당했던 경험을 알려주었다. 그 중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사건은 바로 런던에 가면 꼭 타보게 되는 2층 버스 방화 시도 사건이었다. 그때 희라는 양 옆으로 머리를 딴 스타일을 하고 2층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자꾸 뒤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살벌하게 생긴 여자애가 희라 머리카락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하고 있었다고. 너무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더니 그 여자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라이터를 집어넣었다고 했다. 당연히 사과의 말이나 변명의 말도 듣지 못했다고. 경악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내게 희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근데 언니 걱정 하지마. 런던 되게 좋아.” 


나는 수틀리면 생판 남의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는 청소년들이 가득한 도시로 당장 그 다음주에 떠나야했다. 5년 전 초여름이었다. 


브릭 레인 마켓에서 마주친 그래피티 


런던에서의 일주일은 은행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막내 이모와 함께 했다. 늘 친구들과 패키지 여행만 했던 이모는 런던만 느긋하게 돌아다녀 보고 싶어하셨다. 말 잘 듣고 술 잘 마시고, 무엇보다 영어를 할 줄 알며 이모의 휴가 일정에 맞출 수 있는 내게 기회가 왔다. 여행 경비는 이모가 다 댈 테니 안나 너는 몸만 오렴. 당연히 호텔 예약도 매일마다 가야할 미술관을 정하는 것도, 뮤지컬 예약도 다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긴장했다. 그 와중에 동양인에게 해꼬지를 하는 흉측한 서양인들에 대한 괴담을 듣고 있자니 다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네 이 인의예지를 모르는 서양놈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하기만 해봐라. 가만 있지 않겠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런던 히드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차갑기로 소문난 런던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안고. 


12시간의 비행 후 거지꼴을 하고 워털루 역 바로 다음 역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런던 지하철인 튜브에 올라탔다. 그 때 하필 퇴근 시간과 겹쳐서 내릴 역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찼다. 서울의 매끈한 지하철과 다르게 런던의 지하철은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무릎이 닿을 지경으로 좁았다. 이모와 나 둘 다 거대한 캐리어를 하나씩 좌석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이러다가 제 때 못 내릴 수도 있겠다 싶어 워털루 역에서 일어섰다. 바로 다음에 내리니까 미리 출입문 앞에 서 있으려고. 엉거주춤 복잡한 출입문 앞으로 움직일 때 한 멀끔한(이게 중요하다) 청년 한 명이 내 캐리어를 잡고 열차 칸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내리나요,라고 정중하게 물어보는 그에게 나는 당황하여 지금 아니고 다음에 내려요. 근데 너무 고마워요,하고 대답했다. 순간적으로 허리를 굽힐 뻔했다. 다음 역에 내리지만 정말 고맙다고 괴성 아닌 괴성을 지르는 내게 그는 미안하다고 한 마디를 하고 총총 사라졌다. 저들은 내게 어떻게든 해를 입힐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런던은 되게 좋은 곳일지도 몰랐다. 그 청년의 배려가 내가 세우고 있던 수많은 가시를 다시 들어가게 했다. 세상에 아직도 인류애가 남아 있는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니. 


그 후로 사흘 동안 무난한 관광을 했다. 나흘째 밤, 런던 시내의 야경을 돌아보고 싶어 런던의 가장 핵심적인 관광지를 지난다는 15번 버스를 탔다. 출발지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스퀘어. 도착지는 4.8 킬로미터 떨어진 런던탑과 타워 브릿지였다. 


막상 보니 더 화려했던 타워 브릿지
세븐 시스터즈에서 만난 사모예드 
코벤트 가든 


이미 다 돌아본 곳이었지만 2층 버스에서 바라보는 밤의 풍경은 더 매력적이었다. 타워 브릿지에서 내려 템스 강변을 따라 슬슬 다시 출발한 곳으로 걸어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로 가는 버스가 다니는 코벤트 가든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출발 대기 중이었다. 런던의 버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통 카드를 찍는 기계가 기사의 운전석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다. 늘 하던 대로 오이스터 카드를 기계에 댔는데 기계가 고장났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모와 나 둘 다 카드가 안 돼서 이거 타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버스가 가는 건가 안 가는 건가, 의아한 눈으로 기사를 바라봤다. 타도 되냐는 나의 물음에 기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기계가 안되니까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하고 대답했다. 사실 그 정도는 서울의 버스 기사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별 생각없이 자리에 앉았는데 사건이 시작되었다. 우리 뒤에서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역시 참 멀끔하게 생겼다) 기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왜 관광객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겁니까? 그러면 안된다고요!” 

“아니 이보슈. 내가 언제 무례했다고 그래요?”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는 그들의 말싸움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의 말다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그랬더니 그 건너 바로 옆에 앉아있던 한 할아버지가 또 맞장구를 치셨다. 저 사람 저거 저거, 참 못되게 말합디다.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는데 말이에요. 그들은 또 버스 기사의 무례함에 대해 성토했다. 이모는 이들이 우리 때문에 신경전을 벌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런던의 아름다운 풍경에 재차 감탄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쳐 한참을 가만히 듣고 만 있다가 용기 내어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아까 저희 때문에 기사님하고 싸우신 건가요?” 

“네. 저 사람이 예의 없게 굴었으니까요. 그쪽 잘못이 아니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예상치 못한 그들의 다툼과 이어진 그의 대답에 내 눈은 똥그래졌다. 나는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런던의 대다수 성인 남성들은 우리가 동양인이고 또 여성이기 때문에 겪지 말아야 할 불친절을 겪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기면 주변에 있는 누군가 나서 줘야 한다고 믿는 듯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항의하거나 불친절에 목소리를 높여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타인을 위해 대신 싸워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한거지. 다들 런던 관광청에서 일하나. 즐겁게 여행하라는 인사를 하고 그는 자신이 내려야 할 곳에서 내렸다. 


생각해보니 그 전날에도 갑작스러운 친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의 저열함도. 


그때의 야경이로다 
런던 아이 


런던 도심 한가운데에는 버스 정류장들이 수없이 흩뿌려져 있기에 구글 맵을 킨 아이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내가 들었던 또다른 괴담 하나는 관광객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노리는 누군가가 아주 날렵한 자세로 홱 채어간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까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폰을 꼭 쥐고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벤치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리저리 눈을 돌려가며 정류장을 찾고 있던, 누가 봐도 얼치기 관광객인 내게.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길 잃어버렸어요? 어디 찾고 있어요?” 


나는 도와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 왜 굳이 나한테 와서 길 잃어버렸냐고 물어보는 거지. 잠시 멍해 있다가 아이폰 화면을 보여주며 여기 이 정류장을 가려고 하는데 이쪽으로 가면 되나요, 하고 물어봤다.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그는 맞는 것 같으니 이 길 따라 쭉 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이 앉아 있던 벤치로 돌아갔다. 그는 그저 길 잃고 헤매는 가련한 관광객을 돕기 위해 내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는 아주 키가 컸고, 건장한 몸을 가졌으며 결정적으로 흑인이었다. 내가 그의 겉모습만을 보고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참담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왔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1년 동안 단 한 번 나를 위협했던 건 다름 아닌 백인 남성이었는데. 그 순간 나의 얄팍한 생각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니 그냥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어디 가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은 다 하고 살았는데. 나불대던 내 입을 때려주고 싶던 순간이었다. 


이런 소소한 친절을 경험하고 나니 이리저리 낯선 도시를 헤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어서 어째야 할 지 모르겠을 때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간단히 해결되었다. 왜 그런 당연한 해결책을 내 삶에 도입하며 살지 않았을까. 다만 마냥 헤매는 걸 절대 좋아하지 않는 이모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계시니 적당한 정도로만 해야 했지만. 이때부터 나는 여행지에서 마주친 이들에게 말을 걸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런던의 사람들은 그런 내게 마지막까지 미소를 지어주었는데, 그 중 또다른 이는 바로 경찰관이었다. 


이 멋진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질 무렵 우리는 뮤지컬을 봤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는 영화만 수십 번을 봤던 터라 영국식 억양이 난무하는 뮤지컬을 봐도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다. 뮤지컬이 문화 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나라 답게 각 작품마다 공연하는 극장이 달랐다. 그나마 저렴하고 무대가 잘 보이는 좌석을 골라 여행 전에 미리 해당 극장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예매를 마쳤다. <빌리 엘리어트>는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Victoria Palace Theatre)’에서 공연하는데, 이 극장은 지하철 빅토리아 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 알고 호텔을 나섰다. 뭐 역에 가서 게이트 확인하면 되겠지. 그러나 빅토리아 역은 예상 외로 너무 거대했고 게이트 역시 많았다. 역 주변에 무슨 건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안내 지도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지하철 역에는 다 나와 있는데 이를 어쩌지. 구글 맵을 켜서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역 광장에 모여 있던 런던의 경찰관들이었다. 누가 농담이라도 했는지 세 명 모두 싱글벙글한 표정이어서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와 근데 드라마 <셜록>에서 본 거랑 똑 같은 유니폼입고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네. 신기해라. 


“안녕하세요.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아세요?” 

“오, 뮤지컬 보려고요? <빌리 엘리어트>, 아님 <위키드(Wicked)>?” 

“빌리요” 

“그러면 저기 ‘터미너스 플레이스(Terminus Place)’ 쪽으로 나가면 돼요. 공연 재밌게 봐요.” 


<위키드>를 공연하는 극장은 이름도 비슷한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Apollo Victoria Theatre)’. 내가 무슨 공연을 보는 지 물어본 후에 정확한 길을 알려준 그 경찰관의 얼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소소한 곤경에 처한 관광객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 반, 좋은 자리 구하는 게 어렵다고 소문난 뮤지컬을 보러 이 먼 곳까지 온 이방인에게 숨길 수 없는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 반. 그의 표정에 걸맞게 공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언젠가 이 도시로 돌아와서 다른 뮤지컬을 보리라 다짐했다. 비록 히드로 공항 입국 심사관은 짜증이 날 정도로 내가 여기서 뭘 할 건지 꼬치꼬치 캐물어서 도착하자 마자 진을 다 빼놓았지만. 


내셔널 갤러리. 일주일 동안 두 번 갔다 
첼시 
비오던 날의 노팅힐 
노팅힐 어느 상점의 강아지


이모와의 런던 여행은 수많은 타인들의 도움으로 별탈 없이 끝날 수 있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걷는 것과 어디 갈 때마다 지하철과 열차와 버스를 타고 열심히 찾아가야 하는 것에 크게 데인 이모는 그 후로 쭉 패키지 여행만 고집하고 계신다. 나는 봤다. 가끔 그때 런던 여행 참 재밌었다고 말하면서도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모의 얼굴을. 이모 저는 너무 좋았는걸요. 저만 너무 즐겨서 죄송했어요. 


세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런던 타워 중 한 건물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에서 만난 이들의 크고 작은 친절에 감격한 나 역시 나의 도시를 찾은 이방인들에게 종종 도움을 줄 때가 있

다. 지난 새해의 첫날 아침, 엄마가 입원해계신 여의도 성모 병원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걷고 있을 때 히잡을 두른 여자가 길을 물었다.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어디로 가야 하냐며. 마침 그 곳을 지나쳐 왔던 터라 그녀에게 이 큰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고 대답해줬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났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근데 오늘 대사관이 열까 모르겠네. 텅 빈 길 위에서 스스로를 칭찬하며 아주 잠시 동안 그 해 여름 런던에서 만났던 이들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여정은 다른 이의 친절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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