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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09. 2019

나는 그런 남자들이 두렵다

6/11 Day.3 밤 

마음이 가라앉아 잠시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모기에 물려서 방으로 돌아왔다. 하루에 마사지를 두 번 받으면 기분이 더 좋겠다는 멋진 생각을 했다. 2분 거리에 있는 샵으로 기세등등하게 걸어갔다. 사실 설렁설렁 갔지만. 이번에 도전한 곳은 Bann Phuan. 반 푸앙이라고 읽으면 되려나. 머리와 어깨 마사지를 받았는데, 마사지 의자가 놓여있는 곳은 어쩐지 맨소래담 같은 톡 쏘는 냄새가 강하게 났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한다...... 크흐흐흐흣. 


아주 행복한 한 시간이었다. 가격도 고만고만한데 호텔에서 걸어가기가 딱 좋다. 이름도 모르는 마사지사에게 어깨를 맡기고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졌다. 오늘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바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내게 먼저 내리라고 배려한 한 남성 때문이었다.


그는 아마도 인도인이 아닐까 싶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동행한 여성과는 영어로 소통했다. 그녀는 아마도 태국인인 듯 했지만 딱히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둘은 무슨 사이일까? 나는 궁금했다. 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었다. 방콕을 찾은 관광객 중, 대강 몇 퍼센트일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외국의 남자들은 이 도시의 여자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원하는 바를 쟁취한다. 그 계약은 하룻밤일 수도 있고, 며칠일 수도 있고, 내가 듣기로는 몇 달 혹은 몇 년 일수도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한국의 남자 배우들도 방콕에 현지처를 두고 있다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 낯선 남자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것은 그의 젠틀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말하는 의도는 그다지 젠틀하지 않았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이렇게 질문했다. 


“옷은 갈아입을 거지?”


그의 뉘앙스는 이런 느낌이었다. 나랑 데이트하러 나갈 건데 너 그러고 나가? 예쁜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그리고 내게 먼저 내리라며 기다려줬다. 한국 남성들은 보통 여성에게 먼저 내리라든가 먼저 타라든가 하는 식으로 배려해주지 않는다. 그게 딱히 거슬린 적은 없었다. 다른 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여성 인권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국가의 남성들조차도 일상적으로 나를 배려한다. 처음 그런 모습을 봤을 때는 굉장히 놀랐다. 그럼 도대체 이 나라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차라리 대놓고 무시를 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 부조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내게 극강의 시원함을 선사해주는 마사지사의 손길에 넋이 나가 있으면서도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떠다녔다. 나는 왜 저 남자가 불편했나? 아무리 봐도 방콕에 있는 여자와 계약 관계인 것 같아서? 소위 현지처를 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의 젠틀한 태도였다. 


이 거리에서 방콕 여성을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은(백인이든 아니든) 허우대가 멀쩡하고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주 핸섬한 외모의 젊은 남자들도 종종 봤다. 성매매가 아닌 순수한 만남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통의 나라에서 일정 수준의 고등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수년 간 지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파악할 수 있다. 거리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남자들은 내가 그와 그의 상대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극동 아시아 출신인 여성인 나에게, 자신이 어리고 섹시한 방콕 여자를 밤거리에서 만나는 행위에 대해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나는 그들의 그 당당함이 무서웠다.


아주 정중한 태도로 하룻밤 혹은 며칠 즐길 여자를 사는 남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왜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어차피 자신들은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상대해주는 여자들은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윈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게 정말로 부도덕한 걸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건 안다. 그런데 그들의 당당함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하룻밤 섹스와 데이트의 대가로 돈을 벌었을까. 나는 그들이 부끄러워하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성매매를 멈추기를 바라는 걸까. 세계 어디나 섹스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공창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무턱대고 남자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내가 만약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태어난 사지 멀쩡한 백인 중산층 남자라면 그리고 방콕에서 휴가를 즐긴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당장 사귀는 여자는 없는데 휴가지에서 섹스는 하고 싶다면, 그리고 펍에서 홀로 맥주 한 잔 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방콕 여성이 다가온다면 나는 단번에 거절할 수 있을까. 이거야 말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닌가.


그런 모습을 매일 같이 바라보는 이 거리의 방콕 남자들은 자국의 여자들이 타국의 남성에게 자신의 여성성을 파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다. 저 여자들도 먹고는 살아야죠, 하지만 내 누나나 여동생이나 내 딸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가문의 수치니까. 라고 대답할까. 그전에 이런 질문에 대해 굉장한 불쾌감을 표현하지는 않을까. 


황홀한 마사지를 받으며 이런 의문들을 품고 있자니 나는 여전히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일은 뭘 해야 재미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짐 톰슨 하우스는 대체 언제나 갈 마음이 생기려는지. 왕궁과 사원은 아마 안 갈 것 같다. 지금 나한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일 점심은 뭐 먹지. 저녁은 또 뭐 먹지. 술은 어디서 얼마나 마시지. 마사지 클래스를 과연 수강할 것 인가 말 것인가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나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계속 우물쭈물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 


방콕에서의 세 번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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