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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19. 2019

국부기념관에서는 격렬한 춤을 추지

6/25 Day. 7 

생전 좋아하지도 않는 마라우육면이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서 두근두근하며 국부기념관 역으로 왔다. 어려움 없이 책에서 상세히 소개한 식당 ‘마선당’에 도착했으나 하필 공사중이라 닫음.......      


내가 뭐 그렇지 허허 하면서 주변에 어디 갈 곳이 없나 매의 눈으로 탐색하고 독일식 비스트로를 발견하여 무작정 들어왔다. 학센은 너무 비싸서 연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수프와 샐러드와 간단한 빵까지 먹었는데 오 빵 겁나 맛있다. 방콕에서 이제 더 이상은 빵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거야 원. 거기가 부자 동네였는지, 샌드위치를 포함한 런치 세트가 700달러가 넘었다. 27,000원이나 된다. 으으. 누가 대만 물가 싸다고 했어.      


대만의 국부님 쑨원의 거대한 동상과 근무 중인 근위병 


국부기념관에 가서 잠시(정말 잠시) 구경하는데 비가 많이 와서 호텔로 돌아왔다. 여기서 정말 예상치 못한 풍경을 접했는데 기념관 한 구석에서 젊은이들 수십 명의 무리가 다함께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누구 하나가 리더가 되어 앞에서 열심히 동작을 가르쳤고 나머지 수십 명들은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고 춤을 췄다.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하필 국부기념관에서 현란한 댄스를 연습했던 것일까. 리뷰를 보니 어르신들이 사교댄스를 추기도 한다던데 왜 하필 거기인지? 심지어 되게 애매한 장소에서 추고 있었다. 사면이 뻥 뚫린 곳도 아니고. 중정기념당에는 그런 리뷰가 달리지 않은 걸로 보아 이곳만의 특색인 듯 했다. 장제스와 쑨원이 대만에서 가지는 정치적 역사적 위치가 다른 것인가. 금요일에 조이한테 물어봐야겠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호텔 앞에 왔는데 갑자기 빡쳐서(?) 그놈의 타이거 슈가에서 밀크티를 마셨다. 여기서는 대략 2000원. 단 게 들어가니 기분이 나아지긴 했다. 그걸 노리고 만든 음료인가. 메인역으로 이동하니 디화제 근처에 묵을 때보다 엄청나게 편리해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명동 같은 장소는 아예 가지 않는다.           


오후에 늘어져 있다가 씀씀 작업실이 여름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고 하여 약간 멘붕이 왔다. 이곳은 소글 글쓰기 수업으로 인연을 맺어, 나도 한 자리 얻어 글을 썼던 여성 전용 글작업 공간이다. 나의 글쓰기 선생님인 소은성 작가님에게 8월에 여행을 모두 마치면 글쓰기 수업 들으러 갈 거라고 연락을 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어찌 됐든 뭐라도 되어야겠지. 가을부터는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함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행을 다닐 때가 맞나 싶은데 당장 보름 후에 베를린으로 떠나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행동이 그저 헛된 짓이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더위 때문인지 더욱 무기력해져서 마냥 누워 있다가 호텔에서 2분 거리의 팀호완에 왔다. 9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 중 90퍼센트는 한국인들이다. 여기가 홍대인지 대만인지 모르겠다.      


서둘러 창펀과 고기 번을 먹고 구글 리뷰가 하나도 없는 근처 바에 왔다. 팀호완 요리를 간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긴 하더라. 그래도 제대로 된 맥주를 마셔야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았다. 역시 또 이리저리 헤매면서 들어와 보니 어떤 캡슐 호텔 1층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단 한 명도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1인용 호텔인가. 조금 전에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하던 여자애들이 나가고 나니 바텐더가 음악 소리를 키웠다.       


바텐더는 러시아 남자 같은데 내가 영어를 못할 줄 알았는지 주문해도 되냐니까 한 번에 못 알아들었다. 야 나 중국인 아녀. 비록 아까 마오쩌둥 같은 선글라스끼고 다녔더니 국부기념관 근처에서 중국 여자애가 나한테 스스럼없이 길 물어보긴 했다만. 그녀가 하는 말을 잠깐 듣고 있다가 나 중국인 아닌데? 하니까 헉!이러고 갔다. 망할.      


라거 큰 거 시켰는데 맥주 맛은 뭐 너무 무난하다. 작은 걸로 시킬걸. 왜 리뷰가 하나도 없는지 알았다. 이 펍은 아무 특색이 없다. 그러기도 참 쉽지 않은데. 무색무취인 분위기에 딱히 어울리고 싶은 사람들이 올 것 같지도 않다. 200달러나 하는 맥주 값이 너무 아까워졌다. 이거 미니어처 박물관 티켓 가격인데 젠장. 이제 슬슬 돈이 떨어져간다. 한국처럼 2000원도 카드 결제가 되는 줄 알고 환전을 많이 안했는데 현금 결제만 되는 식당도 많고 미니멈차지가 붙는 데도 많았다. 결국 배를 곯지 않기 위해서는 비싼 식당에서 여봐란 듯이 주문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방콕에서도 그래서 카드 겁나 많이 긁었다. 대만에선 택시 대신 우버를 탈 수 밖에 없었다. 현금을 막 쓰면 안되니까! 베를린 갈 때 유로 환전은 또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러고보니 마선당(아까 굳이 찾아갔다가 문을 닫아서 먹지 못했던)이 팀호완 바로 옆에 있었다. 젠장. 구글 맵에는 분점까지 나오지는 않았던 거다.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 구글 맵 개발자와 유지 보수팀 좀 맞아야 겠다. 지금 벌써 몇 번이나 엿을 먹었는지 모른다.    

  

배가 불러서 앉아 있기도 힘드네 호텔로 슬슬 돌아가야겠다. 가는 길은 잃지 않겠지 아마도.     

당연한 말이지만 난 또 잠시 길을 잃었다. 도대체 방향 감각이란 건 아예 없나보다.      


일곱 번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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