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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29. 2019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6/29 Day. 11 

드디어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 전시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 바로 앞의 엑스포 공원의 수많은 이들을 구경한 것이 더 즐거웠다. 미니핀으로 보이는 심각하게 귀엽고, 아주 작고 성질이 더러운 강아지가 있어서 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 강아지의 귀여움에 압도당한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강아지의 매력을 찬양하는 가운데 지나가던 타이완 사람인 척 은근슬쩍 합류했다. 강아지의 주인인 아저씨가 중국어로 뭐라뭐라 설명했지만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허나 강아지의 귀여움만은 따로 통역이 필요 없었다. 사랑받는 존재들은 이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들은 바로 일본 식민 통치 시절의 사진 위에 색색의 실로 수를 놓은 것들이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 





그 외 인상 깊었던 몇 몇 작품들을 아이폰에 담았다. 




호텔로 돌아와 대강 짐정리를 하고(그렇다 당장 내일이 출국이다) 팀호완에서 저녁 메뉴를 주문했다. 테이크아웃임에도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바로 옆의 아케이드에 갔다. 티셔츠나 몇 장 더 살까하고 매의 눈으로 스캔하는데 리타언니에게서 카톡 전화가 왔다. 어제 회사에서 빡치는 일이 있었는데 나도 없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너무 답답했다고. 그런데 카톡 통화 소리가 왜 이렇게 깨끗하게 들리냐며 너 사실은 일찌감치 한국으로 돌아온 거 아니냐며 다그쳤다. 언니에게 치아더 펑리수를 이렇게 저렇게 발음해야 했던 일화를 말해주자 빵 터졌다. 말해놓고 보니 너무 웃겼다. 그 일의 전말은 이러하다. 


며칠 전 조이네 바에서 어떤 과자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펑리수’라고 정직하게 발음하며 물어봤더니 대만 사람들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내 억양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글자 하나마다 음을 달리하여 말해봤다. 중국어에는 성조란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과 나 사이에 대환장 잔치가 열렸다.  


“펑?리수, 펑리?수?? 펑리수우우-???”  


이쯤되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냐. 허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결국 사진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이해했다. ㅍ훵리슈우- 라고 경쾌한 말투로 다시 반복하는 그들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다르냐!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오 그렇게 발음하는 거냐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타언니는 나의 헛짓거리에 까르르 웃었다. 너 진짜 재밌게 지내고 있구나, 그래도 얼른 와.  


방에서 마지막 딤섬을 먹고 슬슬 걸어서 스태리 나잇에 왔다.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기에 이곳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는데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헌데 가게 바닥에 떡하니 주인장 친구의 고양이 요다가 있다! 회색과 희색 털이 섞인 엄청난 미묘다. 


요다의 주인인 커플이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시애틀 출신 케일럽(샘 워싱턴과 놀랍도록 닮았다)에게 이곳의 더위에 익숙해졌냐고 물어보니 절대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도 않다고. 타이베이에 처음 도착했던 여름, 공항에 도착한 순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8년 째 대만에서 살고 있으며 중국어를 매우 잘한다. 오늘이 그의 생일이라고 하여 다 같이 치즈 케익 한 조각에 노래를 불러줬다. 그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치즈 케익 한 조각을 먹고 여자 친구와 요다를 데리고 떠난 그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그의 직업은 뮤직비디오 감독. 그날 밤에 열렸던 대만 뮤직 어워드의 애프터 파티에 가기 전에 시간이 애매하게 떠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대만의 유명 가수들과 같이 작업을 한 지 몇 년 되었다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냐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대만 관련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를 찍다가 이렇게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커리어를 전환하게 되었다고 했다. 


케일럽과 함께 대화를 나눈 이들 중에는 타이베이 출신의 개빈도 있었다. 사장님과 직원과도 꽤 친한 걸 보니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로 보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내 또래 청년들을 만나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주제가 있다. 바로 동아시아의 안보 상황이다. 개빈은 내게 북한의 핵무기가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전혀. 내 또래가 두려워하는 것은 취업난, 비싼 물가와 열악한 주거 환경, 증가하는 청년 자살률 등등이지 핵무기나 북한과의 전쟁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더니 굉장히 놀랐다. 열흘 전 방콕에서도 눔이 비슷한 걸 물어봤다. 북한이 무섭지 않냐고. 전혀. 내가 무서워하는 건 이런 요소와 함께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극우파들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들은 모두 놀랐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영어가 능숙한 개빈에게 혹시 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예전에 프랑스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프랑스라. 내가 아는 프랑스어는 아침과 저녁 인사, 고맙다는 말 뿐. 아 그 노래도 있었지, ‘레이디 마말레이드’에서 들었던 그 가사. 근데 그게 무슨 의미야? 하지만 개빈은 내게 대답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의미는 알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다고. 그런데 저쪽 테이블에서 프랑스어가 들렸다. 어떤 아리따운 여성들이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개빈, 너가 가서 프랑스어를 쓰는 저 여자들에게 물어봐봐. 손사래를 치며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내가 물어보는 건 별 문제가 없는 거냐고 물어보니 나는 아마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계산하는 틈을 타 인사를 했다. 


알리야와 멜라니라는 이름의 그녀들은 벨기에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알리야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은 벨기에에서 살고 있는 스리랑카 출신. 진짜 국제적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단어가 없다. 그녀의 친구인 멜라니는 벨기에에서 나고 자랐으나 지금은 1년 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위해 대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이번 여름 일본과 필리핀을 거쳐 타이베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고 내일 타오위안 공항에 벨기에에서 도착하는 친구들을 마중하러 나간다고 했다. 오 나도 내일 공항가는데! 참고로 그 노래의 가사는 여자에게 나와 함께 밤을 보내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대체 왜 이 노래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본인들도 모르겠다고. 나 역시 뜻을 알고 기겁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가사를 쓴 건가.  


벨기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쓰는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내가 축구 선수 에당 아자르를 안다고 하니 둘 다 깜짝 놀랐다. 월드컵 시즌에 나이키 광고를 보면 전세계 엄청난 선수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밤 알리야와 멜라니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벨기에는 인종차별로 한 획을 그은 무서운 나라였다. 인의예지라고는 1도 없는 풍습이 살벌한 오랑캐의 나라였다. 하지만 그녀들 둘 다 전혀 그런 개망나니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나보고 언젠가 꼭 벨기에에 여행을 와야 한다고 했다. 초콜렛과 와플과 맥주, 그리고 프렌치 프라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벨지움 프라이가 있기 때문에.  


아마 멋진 바가 아니었다면,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타이베이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이 도시의 밤이 아니었다면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낯선 도시의 여행자들은 누군가 먼저 인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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