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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12. 2019

샌프란시스코는 수많은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4 

이번에는 미서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시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2006년,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 마음 속에 찔리는 것이 있지만 여튼 공부란 것을 하기는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몰래 일하며 불법 이주 노동자의 삶을 약간이나마 느껴 보기도 했다. 일년 동안 유람할 도시를 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나는 항상 그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향취가 남아있는 해안가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60년대 히피 문화가 시작된, 가장 불온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도시. 한여름에는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게이 프라이드가 열리는, 극동의 이방인에게는 너무도 초현실적인 도시. 


이런 수많은 매력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바로 마이클 베이의 영화 <더 록(The Rock, 1996)> 때문이었다. 국가에게 버림받고 전장에서 무참히 희생되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신의 부하들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전쟁 영웅 에드 해리스. 그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VX 독가스(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을 살해한 바로 그 가스다)를 훔쳐서 알카트라즈 섬을 방문한 관광객 수십 명을 인질로 잡고 국가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다. 그리하여 전직 영국 정보부 MI5 요원인 숀 코네리와 FBI 생화학 무기 전문가 니콜라스 케이지가 우여곡절 끝에 알카트라즈 섬에서 악당을 물리친다. 사실 누가 진짜 악당인지는 영화를 보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더 록>은 마이클 베이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찍은 아주 그럴 듯한 액션 영화다. 이 영화 속에 샌프란시스코는 조악한 비디오 화면에서도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기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알카트라즈는 바다 위에 세워진 교도소다.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그 유명한 알 카포네가 수감된 적이 있다는 바로 그 무시무시한 교도소. 어학원에 등록하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나 같은 유학생들을 위해 간단한 투어를 기획해준다. 담당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교도소 탐방에 나섰던 것은 3월의 아주 쌀쌀한 토요일이었다. 알카트라즈 섬은 항구에서 통통배 같은 스피드보트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해안과는 불과 2km 남짓 떨어진 셈이니, 그 옛날 재소자들은 어쩌면 헤엄쳐서 도망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바다에는 상어가 득시글거린다고 하며, 무엇보다 파도가 너무 강하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대차게 멀미를 했다. 멀미 때문에 정작 교도소 구경은 제대로 못했다. 알 카포네가 수감되었다는 독방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인간이 머물기에는 너무 협소한 공간이었다. 방문객들이 많아서 섬은 활기찬 기운이 있었지만 교도소 내에 들어서니 한기로 섬뜩했다. 아무리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지만 내가 왜 바다 건너 교도소까지 구경을 갔는지. 


나 같은 비 미국인들을 위해 마이클 베이는 영화 중반,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을 한번에 소개해주는 자동차 추격신을 넣었다.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죄목으로 숀 코네리는 살벌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어찌저찌 잠시 탈출하는데 그가 도시의 반을 때려부수며 자신의 딸을 찾아간다.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온 척, 하고 싶으면 중반의 이 장면을 몰입하여 여러 번 볼 것을 추천한다. 가장 유명한 명소 몇 군데가 아주 재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 장면을 보면 샌프란시스코는 수많은 언덕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는 정말로 언덕이 많고 한결같이 급경사다. 주먹만한 눈덩이를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가 거대한 눈사람이 되어 지나가는 행인을 덮치는 상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의 무자비한 언덕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곳을 방문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데, 나 역시 범상치 않은 경험이 있다. 


어느 여름 밤, 친구의 차를 타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인 ‘코이트 타워(Coit Tower)’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는 소박한 취향의 검소한 유학생이었기에 나는 운전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스틱 자동차를 몰고 있었다. 스틱 자동차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기어를 바꿀 때 자칫하면 차가 미친듯이 언덕 길 아래로 후진해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운전 미숙이라고 대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짜릿한 경험을 연속 두 번이나 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당황한 친구는 언덕 아래에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괜찮아, 우리 뒤에 아무도 없었어.”


두 번이나 미끄러진 후에야 뒤에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패닉 상태였다. 언덕 하나 없는 서울의 우리 동네가 그리웠다. 그래도 흥분한 상태에서 보게 된 도시의 야경은 훨씬 더 짜릿한 매력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볼 정도로. 


허나 언덕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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