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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16. 2019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내 인생에 다시 안 올지도 몰라

7월 18일 

드디어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아침에 잠깐 깼다가 오후 3시에 겨우 일어나 배를 채우러 나왔다. 빈터펠트 플라츠 근처에 그리스 레스토랑이 있어서 천천히 동네 마실할 겸 걸어왔다. 베트남 여행 때 환상적인 그리스 요리를 먹어서 그 이후로 계속 꽂혀있었다. 그리스 음식 그리스 음식 그리스 음식.... 허나 늘 그렇듯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은 문을 닫기 마련. 지난 여행 때부터 종종 일어났던 일이라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보수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딱히 좌절하지 않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대체 가능한 식당을 찾다가 태국 요리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들어갔다. 어느 나라에서든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태국 요리와 중국 요리가 가장 안전하다. 특이하게도 이 동네에서 태국, 중국, 일본 레스토랑보타 한국 음식점의 숫자가 더 많다. 리타언니가 너 요리 뭐 할 줄 아는 것 있냐며 한식을 팔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참고로 나는 계란 후라이조차 대강 만든다. 시원한 바깥 자리에 앉아 한참 독일어 메뉴판을 뚫어질 듯 바라보다가 결국 허구헌 날 먹던 치킨 팟타이와 망고 라씨를 주문했다.      


그나저나 이 동네 정말로 아름답다.      


아까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커다란 나무 아래를 걸어오는데 불현듯 깨달았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어쩌면 이제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랑말랑한 감정에 취해 있을 때 팟 타이가 나왔다. 언뜻 주방을 보니 요리사들이 태국 사람들인 듯 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고. 음식을 보는 순간 약간 이성을 잃어서 허겁지겁 포크로 먹다가 불편해서 그냥 젓가락으로 쏙쏙 집어 먹었다. 한국의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이렇게 유용한 도구를 개발해주셔서. 마지막 남은 치킨 한 조각까지 쏙쏙 다 골라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가 누적되어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는 오후였고, 어제 그 남자에게 붙잡혀 있느라고 다 쓰지 못한 일기를 쓰고 싶어서 다시 단트라에 갔다. 설마 오늘도 또 마주치지 않겠지. 그런데 그 날은 단트라에서 퀴즈 대회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안쪽에 있는 모든 자리까지 심지어 카운터 좌석까지 동네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서 바깥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총명함을 종종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순간이다. 바에서 노닥노닥하는 문화가 전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한 달에 몇 번은 아주 열정적으로 다방면의 지식을 시험하는 순간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나는 태어나 대차게 술을 들이키면서 퀴즈를 풀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시간이 늦어 외부 테이블을 정리해야 한다기에 총총 방으로 돌아왔다. 소냐와 그의 아들 레니가 함께 요리하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요리를 하는 풍경은 참 정겹다. 고등학생처럼 앳된 얼굴의 레니는 올해 스물한 살. 당연히 아직 어린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엿한 성인이었다. 작년에는 1년 동안 캐나다에 있었다고 한다. 친구와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소냐는 아들이 확실한 계획이 없이 노닥거리는 걸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스물한 살. 나도 그 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보호 없이 외국으로 나갔다. 


내가 과연 어른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를뿐더러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던 그 때. 과외비가 나오면 친구들과 탕수육 먹으러 가기 바빴고, 어느 여름에는 태어나 처음 받은 장학금으로 북경행 비행기표를 샀다. 리타 언니와 교환 학생으로 북경에 있었던 쭝궈 언니* 이렇게 셋이서 폭풍우가 몰아치던 천안문 광장에서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무엇도 할 수 있을 것만 거짓말 같던 날들이었다. 스물 한 살이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선물과 같은 순간.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레니를 걱정하는 소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성인의 길에 들어선 자식들을 못미더워하는 엄마들을 숱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냐, 스물한 살에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고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런 아들, 딸들은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존재해요. 그리고 그런 작품들은 대체로 재미가 없죠. 레니 역시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실패하면서 답을 찾아나갈 거에요. 다른 많은 청춘들이 그러했듯이, 제가 그러했듯이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춤을 춥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베를린의 여름밤이니까요.    



* 김쭝궈.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으로 강남에서 나고 자랐다. 각주에 강남 출신임을 꼭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자식 대신 논문을 낳아 얼마 전에 김박사님이 되었다. 현재 모교에서 포닥 과정 진행 중. 장건강에 좋지 않은 마라샹궈와 삼겹살같은 음식을 좋아한다. 경기 모처의 우리 집까지 운전해서 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열심히 운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 운전은 서툴지만 뒤차 운전자의 안부를 묻고 싶은 욕망만큼은 서툴지 않다. 속에 화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과연 내가 그녀의 새 차 돌궐이를 직접 보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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