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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28. 2022

가위눌림

어느 시골집 대청마루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수염을 기른 사람, 갓을 쓴 사람도 보인다.

댕기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마당에서 놀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한다. '추워, 너무 추워'라고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자꾸 목 안으로 꺼져 든다.

간신히 팔 하나를 들어 더듬더듬 이불을 끌어 오려는데, 나는 아직도 꿈 속이다. 팔을 들어 올렸다고 생각한 것도 꿈.

여전히 온몸이 빳빳한 채 땀을 흘리며 덜덜 떨고 있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귀에서 자꾸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같기도 어른 같기도 여자 같기도 남자 같기도 한 그 속삭임은 일정한 높이로 멈추지 않고 뭔가를 말하고 있다.

처음엔 한 사람이었다가 점점 여러 사람의 소리가 뒤섞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갑자기 내 몸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음 순간 누워있는 내가 보인다.

숨이 턱 막혀온다.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

분명 내 눈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밀쳐내고 싶은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바닥에 처억 눌어붙어 천근만근이다.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에 닿을 듯 확 다가온다.

그녀의 몸이 내 몸으로 쑥 빨려 들어온다고 느낀 순간, 온몸이 전기가 통한 듯 찌릿하다.

머리끝에서 시작된 소름이 순식간에 발끝까지 쫙 내려 퍼진다.

그리고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다.

내 몸 사이즈 말고는 한 치의 틈도 없는 상자 안에 누여진 기분이다.

꺼내 달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입술 한쪽도 달싹일 수가 없다.

정신이 또렷한 게 무섭다.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가위눌림 들이다. 여섯 살 때,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리고 바로 어젯밤 가위눌림이다.

가위눌림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다.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수면 부족, 과로, 시차로 인한 피로, 스트레스가 가위눌림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나는 가위눌림이 오기 전에 이미 그것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잠이 들락말락 할 때 느껴지는 싸늘함과 쭈뼛함은 곧 가위눌림을 불러오곤 한다.

어릴 때부터 잦은 가위눌림을 겪어 무섭진 않다. 다만,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는 안도감을 느끼기 전까지는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는 데 수차례 젖 먹던 힘까지 내야 한다.  

언젠가부터 내 가위눌림에 찾아오는 그녀가 나 자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압박감이 그녀의 형상으로 와서 내 몸을 짓누르는 거라고. 나를 괴롭히는 그녀는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출처가 불분명한 생각들에 휘둘리고 공연히 마음이 분주해질 때, 그래서 나 자신을 잘 돌보지 않을 때 어김없이 또 다른 모습의 내가 찾아온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녀는 내게 묻는다.

꿈에 섞여 찾아온 나를, 그 마음의 짓눌림을 다시 보살피고 보듬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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