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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r 01. 2023

잠에 대하여

잠이 많아졌다.

저녁에도 아침에도 잠이 쏟아진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자꾸 졸리기만 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마음과 다르게 몸은 다시 이불속으로 숨는다. 쌀쌀한 날의 포근한 이불속, 나는 기꺼이 이부자리의 포로가 되고 만다.

이불이 몸을 감싸줘야만 잘 자는 나는 한여름에도 목까지 이불을 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곤 한다.

잠들기도 잘 자기도 어렵다는 내 나이에도 나는 꿈도 없는 잠을 잔다.


어려서 나는 한번 잠들면 쉽게 못 깼다.

"쟤는 잘 때 누가 업어가도 모를 거야." 이모들과 엄마는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모르고 쿨쿨 자는 나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밤 잠이 없던 나는 성탄 자정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엄마 옆에서 한 번도 졸지 않고 미사를 드렸다. 주위 어른들은 내가 아이답지 않은 신앙심을 가졌다며 감탄하셨다.

중고등학교 땐 제시간에 자라는 잔소리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밤늦게까지 깨어 있던 건 꼭 공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아기 때 낮밤이 바뀌는 바람에 키우기 힘들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나의 올빼미 잠버릇은 어쩌면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밤 잠이 없는 대신 아침잠이 많았다.

일찍 일어난 날은 오전 시간 대부분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며 보내야 했기에, 고 3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제발 나를 잊어달라고 담임 선생님께 간청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체중 미달에 키도 작아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게다가 툭하면 어지럽고 잘 체했다. 아침에 일어나다 쓰러진 적도 있고, 학교 가다 어지러워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침이 무서워졌는지 모른다.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속에 몸을 묻어 두었다가 조심스레 밖으로 나오게 됐는지도 모른다.


잠들기 어렵고 자꾸 깨는 날들이 있었다.

그 괴로움 속에서, 시간과 상관없이 졸릴 때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걸 터득하곤 견딜 수 없을 만큼 졸음이 올 때에야 침대로 갔다. 어떤 날은 밤 열 시, 어떤 날은 새벽 두세 시였다.

몹시 우울한 때가 있었다.

며칠을 밤에서 깨어나지 못해 낮으로 올 수 없었다.

한 방울 삶에의 애착으로 그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깊은 휴식이 준 선물이었다.


한번 뭔가에 몰두하면 관성의 법칙에도 충실해져 다른 일로의 빠른 전환이 쉽지 않다.

잠도 계속 자야 하고 - 눈을 떴다 감으면 바로 또 잠드는 나의 능력을 가족들은 몹시 신기해한다 - 먹을 때도 오래오래 끊임없이 먹으며, 드라마도 앉은자리에서 끝장을 내거나 그게 어려우면 다음 에피소드 예고편이라도 보고 일어나야 한다. 집을 치우거나 정리를 시작하면 온 집을 다 해치워야 비로소 다른 일로 넘어간다.

일하러 나가지 않은 후로 시간의 제약을 덜 받게 되자 나의 이런 논스톱 증세는 더해졌고, 뭔가에 정신이 팔리면 세상을 잊는 일이 반복된다.


요즘 잠이 많아진 건 우울감도 몸이 고장 난 때문도 아닌 듯하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모으고 싶거나, 할 일이 많음에서 오는 약간의 불안감이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제 잠을 깨야겠다.

꿈과 휴식을 가져다주는 나의 잠에게, 열심히 일하고 나서 즐거운 쉼으로 다시 만나자고 속삭여 본다.

그땐 어릴 때처럼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엄마 따라 간 목욕탕에서 살갗이 빨개지도록 때를 밀리고 나서, 비누냄새 가득한 노곤한 몸을 따뜻한 이불속에 누이고 초코우유를 아껴 먹다 소르르 드는 그런 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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