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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Sep 22. 2022

거울 앞에서

세수를 마치고 욕실 벽 한쪽에 붙어있는 오목거울을 무심코 보다 깜짝 놀랐다.

눈 밑 주름과 다크서클이 얼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커다랗게 확대된 볼 여기저기 햇볕이 지나가고 또 지나간 자리엔 무수한 주근깨가 나 보란 듯 내려앉아 있다.

의기소침해져 돌아서니 곧이어 나타난 전신거울에 이번엔 배 부분이 도드라진 내 몸매가 보인다.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아줌마가 고향의 산해진미로 불어난 체중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서있다.


우리 집엔 그 흔한 전신거울 하나가 없다. 오랜만에 본 전신거울 속 내 모습은 총체적 난국이다.

모양내는 게 귀찮아 커다란 거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데 인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워 거울을 안 놓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머물고 있는 바닷가 숙소엔 거울이 많다. 조그만 방 안에 거울만 네 개다. 출입문과 가까운 욕실 근처엔 눈만 돌리면 거울들이 있다. 해질 무렵 방 안이 어둑해지면 다각도로 보이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바닷가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테라스 큰 창을 활짝 열고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를 방 안 가득 채운다. 그렇게 마음속의 나를 만나고 나서 세수하러 선 거울 앞에선 물리적인 나를 만난다.

오늘 거울 속의 나는 '마음속 나'만 챙기지 말고 자신도 좀 봐달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연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전시관에 다녀왔다.

시각은 물론 음악과 향기를 사용해 공감각적인 호소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관과 달랐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이 만든 기술로 자연을 데려다 놓음으로써 모든 감각이 편안하게 다독여지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내 시선을 붙잡은 건 거울이었다. 벽과 바닥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거울은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에의 감동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영화에 나오는 인형의 요술봉을 내 손에 쥔 듯 설렜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모두를 떠나 나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와 오롯이 혼자인 나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출발점일 것이다.

초라하고 볼품없어도, 외로움에 숨쉬기조차 힘들어도, 공허함에 가슴을 어루만질지라도 나 자신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중독과 집착을 헤집고, 마음속 어딘가 있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지금 거울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울, 다른 하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환상과 현실이 모두 거울에 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두려워하지 말고 똑바로 봐야겠다. 주근깨가 신경 쓰이면 앞으로는 자외선 차단제를 열심히 바르면 된다. 뱃살 때문에 자꾸만 들려 올라가는 웃옷이 신경 쓰이면 적게 먹고 운동하면 된다. 오늘의 내 모습을 잘 관찰해야 내일이 행복하다.

마음속에 거울 하나 두어 거기 있는 나 자신을 만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날카로운 현실 틈틈이 예술작품을 접하는 것에도 부지런해야겠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생기는 긴장감을 가라앉혀주는 건 글과 그림과 음악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해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오늘 나는 한층 깊어진 눈으로 거울에서 나를 보고 꿈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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