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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Nov 22. 2022

생각 많은 날

"자꾸 마시니까 괜찮아지지?"

이번에 산 커피가 입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 오던 내게 오늘 아침 남편이 건넨 말이다.

침대 속에서 꼬물거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벌떡 일어나 매일 아침 핸드 드립으로 커피부터 만든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를 시도해 보고 있다. 원두를 구입해 그라인더로 갈아서 밀폐용기에 옮겨 담는 일은 좀 귀찮긴 하지만,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 향을 떠올리면 기꺼이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커피는 첫맛에 산미가 강하고 텁텁했다. 향 좋고 구수하면 될 뿐 그리 많은 걸 바라지 않는 내게 신 맛, 과일 맛, 풀 맛에 초콜릿 맛까지 온갖 복잡다단한 맛은 왠지 심란하다.

"그러게, 자꾸 마시니까 그런대로 괜찮네. 그냥 나랑 안 맞을 뿐이지, 뭐."

그래, 나와 안 맞을 뿐 커피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살면서 얼마나 자주 오직 나 중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사람도 일도 단지 나와 맞지 않을 뿐인 걸, 좋다 나쁘다 가치를 부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이내 마음이 지옥이 되고 만다.

각자 자신의 영역, 자신의 세상에서 살아가다 경계를 넘어 서로 만나기도 한다.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다.

맞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고 평가를 하고 속상해하는 건 내 마음에 나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일일지 모른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해진다. 나와 맞지 않는 커피 맛을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나와 맞는 것을 찾아 행복해지면 된다.




지난여름 서울에 갔을 때 어린 시절 다니던 성당에 들렀다.

언제 가도 그대로인 성당과 뜰 곳곳은 온통 추억 투성이다.

안뜰에 자리한 조그만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창 없이 트인 카페는 안과 바깥의 경계가 없었다.

성당 쪽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맨 앞사람의 품에는 누군가의 영정이 들려 있고, 삼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홀로 또는 짝을 지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장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인 듯했다.

카페 앞에 가까이 온 영정 사진 속으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죽음과 연결 짓기엔 아직 너무 젊어 보였다.

갑자기 먹먹해진 내 마음과 달리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온해 보였다. 누구 하나 울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혹은 옆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카페 앞을 지나갔다.

잠시의 애잔함이 그들의 모습을 통해 평화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슬픔은 남았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애달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가 하려던 일을 미처 이루지 못하고 떠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 그를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가슴 아픔일 테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부지불식간에 찾아든다. 어쩌면 삶과 구분 지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울지도, 삶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죽음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게 삶일지 모른다. 다만, 그 가방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진다.

태어나고 떠나가는 모든 것이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누구나 기적처럼 세상에 왔다가 고요한 작별 인사를 남기고 돌아간다.   

아직 사람들은 그의 삶보다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는 죽음보다 그의 삶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도 순간을 즐길 줄 아는 경쾌함이 그 힘을 만들어낸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일이다.

그리고 작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는 막강하다. 폐부 깊은 곳에 차오르는 환희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강함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것 - 일상을 소중히 사는 것이다.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밖에 다른 길은 없다.

그렇게 만들어 가는 나의 삶은 어느 한순간도 의미를 잃지 않고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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