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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Dec 28. 2022

그녀가 쓰는 법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1942. 6. 3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오래전에 읽은 시가 며칠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해 백일장에서 입상해 상품으로 타 온, 아직도 책장 한 귀퉁이에서 존재감을 호소하는 시집 하나를 빼 들었다 -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40년 세월 나를 따라다니느라 색 바래고 낡은 책 속에 잠자던 시가 왜 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을까.


브런치에 온 지 9개월이 넘어간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작가'라고 불리며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 호칭에 걸맞기 위해 무던히 애써 온 날들이었다.

팬데믹으로 하던 일도 그만두고, 아이들도 품 밖 독립을 한 덕에 글쓰기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학창 시절 이후 글쓰기는 내 사전에 없었다. 글을 쓰려고 하면 무거운 돌덩이가 등을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목 어딘가에 걸려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못한 채 켁켁대며 살아온 느낌이었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빠져들던 글쓰기의 즐거움이 어른이 되면서 말하기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람들과 어울려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살았다. 기록도 돌아봄도 없이, 그저 안에 고이는 것들을 입을 통해 쏟아내기 바쁜 날들이었다.

그러다 혼자가 되면 멍하니 쓸쓸했다.

가슴에 차서 넘실거리다 결국 밖으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것들을 몇 장 끄적임에 주워 담고 나면, 며칠 후 그것들은 휴지통 속 쓰레기 신세가 되었다. 내 안에서 나온 것들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을 버리면서 시원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미워하면서 가엾어했다.

점점 나 자신과 대면하기가 어려워졌다. 바빠지려 했고 바쁜 척했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두렵고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공허감이 무서워 더 떠들고 더 소리쳤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갈망, 기록해 남기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던 어릴 때 마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게 맞는 걸까 생각하기보다, 쓰고 싶은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그 무렵, 지속적으로 쓰고 소통할 계기를 마련하려고 내민 내 손을 잡아준 게 브런치였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인 글을 쓰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클리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글감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사냥꾼이 되어야 했고, 애써 잡은 글감을 어떻게 요리할지 몰라 그냥 썩히고 마는 쓰라린 경험도 해야 했다. 힘들여 쓴 글을 막상 발행하려 하면 오만 가지 생각이 클릭하려는 손가락을 얼어붙게 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엔 막혀있는 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거 빼고 다 해보리라, 나도 모르게 헤집어 놓은 머리카락을 거울에 비춰보며 쓰게 웃던 날도 있었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서, 나라 안팎이 험난했던 시대에 타지에 나와 살며 생각과 다르게 쉽게 써진 시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내 글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리움이 고독이 때로 어처구니없음이 나만의 감정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로 9개월을 살아오면서, 가끔씩 초심을 불러오기 위해 '왜 쓰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글을 쓰는 것은 세계와 나를 관찰하는 지난한 과정이고, 사진을 찍듯 순간을 붙드는 작업이며, 깜깜한 암실에서의 인화를 거친 사진이 빛 속으로 나오듯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한 편 한 편의 내 글 속에는 내가 있다.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생각과 마음과 감정과 영혼의 조각들이 글 여기저기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며 나와 만나는 일이 이제 두렵거나 괴롭지 않다.

순간이 모여 일상이 되고, 일상이 쌓여 생활이 된다. 그 모든 순간이 내 글에 녹아들므로,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력을 키워야 할 때다.


윤동주 시인처럼 나도 쉽게 써진 글 앞에 부끄러울 수 있을까. 후루룩 쓰고도 부끄럽지 않을까 봐 두렵다.

희열은 짧고 고독은 길기만 한 글쓰기를 왜 하는 것일까.

늦사랑에 빠진 마음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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