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Mar 25. 2023

그날의 일기

'오늘부터 나는 작가다'로 시작되는 어느 날의 일기다.


오늘부터 나는 작가다 :)

지난 주말에 걸쳐 보낼 글들을 쓰고 다듬고, 나를 소개하는 글과 내 글의 목차들을 정리해 화요일에 보냈다. 그리고 약 하루 반만인 어제 새벽, 축하 이멜을 받았다.

어제 하루종일, 지금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구름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좋다고 해준 게 기분이 좋다. 자갈밭 사이에 누워있다가 나에게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분,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해 준 기분이다. 기쁘다.

그런데 이제부터이다. 너무나 써놓은 글도, 준비도 없이 덜컥 '작가님'이란 호칭을 받았다.

부지런해야겠다.

집중해야겠다.

내 이야기의 올들을 더 타이트하게 만들어서 작은 감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겠다. 


내가 썼나 싶게 샤랄라 한 모습이 우습기도, 오글거리기도 하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일기를 공개하는 건 초심을 탐구하고 싶어서다.

옛날 듣던 노래를 들으면 노래를 듣던 때가 고스란히 재현된다. 노래를 듣던 장소, 함께 듣던 사람, 그리고 거기 흐르던 냄새까지 그대로다.

어쩌다 발견한 옛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그때 내가 했던 생각, 그 무렵 주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이 생각난다.

옛날 읽었던 책을 펼치면 책을 읽던 내 마음 상태가 떠오른다. 슬프고 화나고 통쾌했던 감정이 살아난다.

글도 그렇다. 글에 묻어있는 내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

내겐 오래전 썼던 글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어서 내 글도 좋아할 수 없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내 글들을 모으고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내 글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나 자신을 아끼기 시작한 건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그러니 오늘은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도 될 것 같다.


1년이란 시간은 묘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시간 안에 아득히 먼 시간도 들어있다.

감사하게도 그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모두를 가질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무채색이 아니라 알록달록했다. 묵음이 아닌 높고 낮은 소리가 있었고, 때로 그 소리들은 흥얼거림을 넘어 노래가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는 나를 만났고 친해졌다. 길을 걸으며 글벗들을 만나 길벗도 되고 말벗도 됐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것, 돌 된 아기가 첫걸음마를 떼고 비로소 가보고 싶은 세상을 만나듯 나도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리라는 것, 이게 지금 내가 아는 전부다. 

앞으로도 나를 알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 1년의 소회를 구독자님들에 대한 축복과 감사의 마음으로 갈무리하려 한다.


사진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쓰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