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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Oct 01. 2022

당신과 나의 꿈을 찾아서

영화 <오마주(Hommage)>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기내 극장의 등받이 작은 화면으로 본 덕에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 오직 나만을 위한 스크린이었으니까.

좋아하는 이정은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것과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 스틸컷의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이 영화의 초대를 흔쾌히 받아들이게 했다 - 영화 <오마주>(2022).


뚱하고 심란한 표정의 지완이 영화 초반 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내가 거울을 본다면 딱 저 표정일 거야'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지완은 자신이 만든 세 편의 영화가 모두 흥행에 실패하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사무실 구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거미줄과 깨진 채 방치된 집 유리창이 흐트러진 삶의 질서를 말해주는 듯했다.

남편과 아들마저 시큰둥한 상황에서, 지완은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아들인다. 1960년대 우리나라 1세대 여성 감독 홍재원의 영화 <여판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더빙 작업 중 많은 장면이 잘린 것을 발견한 지완은 사라진 필름을 찾기 위해 홍 감독의 지인들을 수소문해 만나게 된다.

그들은 낡았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의상, 찻집, 극장, 그리고 영사기와 함께 삶의 뒤안길에 선 사람들이었다. 홍 감독의 추억은 마치 흑백 필름 같던 그들의 일상에 잠시나마 찬란한 색채를 입혀준다.

자신의 일에 가졌던 확신이 점점 희미해짐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지완도 그들을 만나며 자신감을 찾기 시작한다. 중년의 여감독 지완은 현실과 결코 나란할 수 없었던 자신의 꿈을 세월에 떠내려간 오래된 것들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터벅터벅 헝클어진 걸음으로 귀가하는 지완에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홍 감독의 그림자.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갔던 그녀의 환영 같은 그림자를 느끼는 지완.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었을 선배 여감독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지완은 위로를 얻는다.  


낡은 극장에서 팔다 남은 모자마다 둘려있던 띠가 잃어버린 장면의 조각들임을 발견한 지완은 극장 천장의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필름들을 미친 듯이 비춰보기 시작한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바래져 가던 그녀의 영화에의 열정이 그 빛을 되찾는 장면이었다.


사진 Pixabay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이 배인 자동차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나타나는 홍 감독의 그림자. 지완은 이제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림자를 마주한다.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웃집 여자의 귀환도 지완에겐 마치 부활과 같은 기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줄곧 나의 시선을 데리고 다녔던 건 홑이불이었다.

홍 감독과 같이 일했던 편집기사 옥희의 집 빨랫줄에 널려있던 커다란 홑이불은 지완과 옥희에게 스크린이 돼준다. 빨래를 걷으며 홑이불 뒤편에서 그림자가 되어 이야기하던 그들의 모습, 홑이불을 영사막 삼아 되찾은 필름을 돌려보던 두 사람의 만감이 엇갈리던 얼굴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불이 스크린이 되듯, 일상에서 꾸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삶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일에 대한 사랑이 낡은 영사기 속 필름이 되어 시골 마당 안 홑이불에서 빛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옥희가 지완에게 말한다.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


이제는 낡아버린 것들이 지완에게 무심하게 던져주는 희망이 나에게도 끝까지 살아남는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나의 삶도 훗날 누군가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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