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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Oct 09. 2022

왕따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새로 친구 하나가 전학을 왔다. 눈매가 갸름하고 머리카락 색깔이 옅은 B는 원색의 옷을 자주 입었다. 나는 B의 머리카락 색과 B가 즐겨 입던 화려한 색의 옷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밝은 색 옷과 반대로 B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 B와 말할 기회가 별로 없던 나는 처음엔 새 학교가 낯설어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교실을 이동할 때나 체육시간에 잠깐씩 보는 B의 얼굴은 하얗던 피부가 거뭇해 보일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B가 몇몇 남자아이들에게 심하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B의 이름 글자 중 자음 하나를 바꾸면 비속어가 된다는 게 놀림의 이유였다. 새로 전학 온 탓에 B를 지켜줄 친구가 없는 틈을 타 그들의 짓궂은 괴롭힘은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놀리는 아이들에 둘러싸인 채 밥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B를 보았다. 그 자리에서 어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만 나는 곧 후회가 되었다. 여러 명이 왁자지껄할 때 내가 말해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지나쳤지만, 놀림당하는 친구를 외면했다는 생각이 가슴 한쪽을 찔렀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들고 B에게 다가갔다. "나랑 같이 밥 먹을래?"

낯을 가리는 편인 나로선 큰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나를 움직일 줄은 몰랐다.

B는 선뜻 "그래!" 하더니 비어 있는 옆자리를 내밀었다.

그날 이후 B는 내 친구들과도 친해져 같이 다니게 되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건 물론, 교실을 옮기거나 체육 시간에 조를 짤 때도 우리와 함께 했다. 놀리던 아이들도 B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우리에게 온 평화는 오래지 않아 내게서 그 날개를 거두어 갔다.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점심을 먹을 때도 체육시간에도 친구들은 나와 같이 있어주지 않았다. 쉬는 시간엔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무렵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소풍 며칠 전부터 친구들과 놀거리 먹거리 계획을 세우며 들뜨던 예전과 달리, 그들 중 누구도 내게 함께하길 청하지 않았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흩어지곤 했다. 나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져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제일 친하게 지내던 H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왠지 전화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날 H한테서 들은 이야기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B가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함께 놀았다는 것이다. 부유한 B의 집엔 없는 것이 없으며, B의 아버지가 외국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사 오신 외제 학용품도 아낌없이 나누어 받았다는 것이다.

"근데 B가 그러더라, 선생님이 너만 예뻐한다고. 저번에 네가 질문했을 때도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는 거라고 얄밉다고 했어, 너랑 놀지 말라고."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했던 것 같다. 그랬던 거구나 궁금했던 것들이 풀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몹시 쓰라렸다.


무슨 이유였는지 그들에게서 버림받은 H가 내 단짝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한동안, 나는 친했던 친구들한테서 가위로 오려내진 것처럼 쓸쓸하게 학교 생활을 해야 했다. 겉으로는 그럭저럭 지내는 듯 보였겠지만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락으로 떨어졌다. 괜히 눈치가 보여 선생님께 질문을 하거나 발표하기도 꺼려졌다.

선뜻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 게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픈 경험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내 의견을 뚜렷이 말하기보다 사람들 사이로 숨는 쪽을 택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닐까 한동안 고민도 했었다.

잠깐의 따돌림의 기억은 꽤 긴 시간 동안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얹혀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우연한 기회에 꺼내 보게 된 왕따의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작고 구겨졌던 마음을 이겨내고 잘 살아왔기 때문일까.

잘 견뎌냈다고 이제 괜찮다고,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예쁜 어린 시절 기억들 속에 끼어있던 못생긴 기억은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마음이 자라도록 돕고 있었다. 머물고만 싶은 예쁜 기억과 달리, 못생긴 기억은 머물지 말고 앞으로 가라고 내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아픈 기억도 보듬을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여기 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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