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Oct 23. 2022

졸업 문집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그림일기부터다.

노트의 반을 갈라 위쪽엔 그림을 그리고 아래쪽엔 글을 쓰던 그림일기. 몇 줄 안 되는 글보다 그림에 더 집중하느라 다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크레파스나 색연필로 빈 데 없이 꼼꼼하게 색을 칠하다 보면 가끔은 얇은 노트 종이가 찢어지기도 했다. 속이 상해 한참을 펑펑 울고 나서 찢어진 부분을 테이프로 이어 붙이거나, 그도 안되면 아예 그 페이지를 뜯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그렇게 눈물 콧물 섞어 완성한 그림일기를 다음 날 선생님께 내면 수업이 끝날 때쯤 돌려받았다. 다시 받은 그림일기 맨 밑엔 '참 잘했어요'나 '잘했어요' 같은 선생님 도장이 어김없이 찍혀있곤 했다.


그림 없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아마 2학년 올라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림이 없는 대신, 바둑판처럼 네모 가득한 노트를 한 칸 한 칸 채워 글씨를 썼다.

한때 자음 획의 끝을 누가누가 더 길게 꺾어 쓰나 친구들과 경쟁하다 글씨를 이상한 모양으로 쓰는 게 버릇으로 굳어지는 바람에, 선생님께 주의를 받고 고치느라 애를 먹은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저런 유행이나 습관들도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 생긴 웃지 못할 일들이었다.

연필깎이 용 칼로 곱게 깎은 연필들, 까만 연필심이 너무 길거나 너무 짧게 나오지 않도록 적당하게 깎인 연필들은 단색인 것도 있고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은 것도 있었다. 숙제를 다하고 연필과 지우개를 필통에 가지런히 담아 책가방을 싸는 것도 내일을 위한 중요한 일상이었다.

네모칸 노트에서 줄 노트로 한 단계 올라선 건 3학년, 그리고 고학년이 될수록 노트 칸은 점점 좁아져 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외가와 친가를 왔다 갔다 하며 어른들 틈에서 이야기하고 노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곤 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 숙제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는 5학년부터 매주 한 번씩 교장 선생님과 도덕 수업을 했다. 학년 전체가 시청각실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각자 써 온 글을 발표도 했다.

정해진 주제로 노트 네 바닥을 채워야 하는 도덕 숙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양도 양이지만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려면 머리를 풀가동해야 했다.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면 호되게 꾸짖던 교장 선생님은 좀 무섭긴 해도, 흥미로운 주제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가끔 우스운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셨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긴 글을 써야 했던 그 수업은 우리의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하도록 도왔음에 틀림없다.

매일 쓰던 일기는 물론, 책을 읽고 써내던 독후감, 소풍이나 견학을 갔다 오면 쓰던 기행문, 삽화도 함께 그려 넣던 동시, 그리고 각종 포스터 문구까지 초등학교 내내 수많은 글을 썼다.


사진 Pixabay


초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둔 가을 이맘때 졸업 문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졸업을 기념하기 위한 개인 문집 속에는 6학년 한 해 동안 쓴 글과 사진들도 넣었다. 기획도 하고 목차도 만들었다. 글을 장르별로 실을지 아니면 쓴 시기별로 실을지도 스스로 정해야 했다. 칠팔십 페이지는 족히 되는 모든 글을 손수 옮겨 썼다. 사인펜과 색연필로 삽화도 직접 그렸다. 국어 시간이나 특별활동 시간, 쉬는 시간 틈틈이 모두들 문집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집의 제목을 정하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제목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생전 처음 만들어 보는 나의 첫 책 이름을 '열매'라고 부르기로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이룬 결실이란 뜻인 듯한데, 범생이 같고 재미없다. 한창 목표 지향적이고 지적, 사회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그대로 문집 제목에 묻어있는 것만 같아 대견하면서도 짠하다.


몇 년 전까지도 갖고 있던 연두 바탕 붉은 열매 그림 표지의 내 문집은 이사를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문집을 만들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만나며 졸업을 자축하던 일은 지금 생각해 봐도 뿌듯하다. 문집이 완성되었을 때 친구들과 바꿔보며 맨 뒷페이지에 서로 소감을 적어주던 일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감 마지막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고 중학교에 가서도 변치 말고 연락하자던 그 친구들이 그립다.

그때는 그 많은 글들을 일일이 손으로 쓰고 페이지 수를 매기며 내가 참 많이도 썼구나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 시절 내게 글을 쓸 기회가 많이 주어졌던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대한 치우친 생각들이 마음에 깊숙이 자리잡기 훨씬 전부터 글을 쓰며 글과 친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동안 쓰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쓰기 위해 돌아온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지금은 인생 문집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채워 나가고 있다. 이 문집의 제목을 뭐라 붙여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 내 글이, 내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그때 생각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왕따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