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Nov 25. 2022

땡스기빙에 나는

Thanksgiving Day

이번 주는 땡스기빙 위크다.

땡스기빙 데이(Thanksgiving Day)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멀리 사는 가족까지 모두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즐기는 미국의 큰 명절이다.

1620년 경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왔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들을 도와준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는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영국 전통인 추수 행사를 그대로 유지해 칠면조를 잡고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땡스기빙의 유래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여러 번의 땡스기빙을 겪으며 이방인의 눈으로 본 다른 문화의 명절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장엔 땡스기빙 휴일을 겨냥한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TV에선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다. 길거리에선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나도 아이들 어릴 때 공주가 나오는 디즈니 영화를 보러 다녔던 기억이 많다.

미국 땡스기빙 위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블랙 프라이데이다. 땡스기빙 다음 날인 금요일은 유명 마트나 백화점에서 대규모의 세일을 감행해, 새벽부터 줄 선 사람들이 문이 열리자마자 가게 안으로 물밀듯 들이닥치곤 한다. 교통 혼잡과 주차 전쟁, 서로 물건을 차지하느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때문에 경찰들이 이 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주로 가구나 전자제품이 인기 있는 품목인데, 요즘은 팬데믹을 지나오며 쇼핑 열기도 한풀 꺾인 듯하다.

땡스기빙이 지나면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제는 핼러윈 직후 11월 초만 되면 흘러나온다. 예전엔 땡스기빙에 가족이 모이면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캐럴과 장식이 11월 초부터 발맞춰 등장한다. 아무리 거의 모든 것이 상업화된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땡스기빙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건 여전히 생소하다.


땡스기빙 데이 저녁식사 전통 메뉴는 칠면조 구이, 으깬 감자와 그레이비, 옥수수 요리, 크렌베리 소스, 사과 파이나 호박 파이 등이다.

미국에 와 처음 한 두 해는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마트에서 터키를 사다 오븐으로 직접 요리해 보았다. 그러다 긴 조리 시간과 먹고 남은 칠면조 고기의 처치 곤란으로 내 레시피 북에서 점점 밀리는 요리가 되고 말았다. 조류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의 예민한 후각 때문이기도 하다. 기름에 튀겨 진한 양념을 묻힌 치킨이 아니면, 백숙이나 밥반찬 닭요리에서 남들은 모르는 미묘한 새들의 향기를 느끼는 나에게 칠면조는 그냥 거대한 닭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요즘은 식당이나 마트에서 땡스기빙 밀 세트를 주문해 식탁으로 옮겨와 먹는 집들이 많다. 명절에 부엌일이 바빠 주부들이 스트레스받는 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땡스기빙이 들어있는 11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다채로운 활동이나 행사를 기획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도록 돕는다. 민요를 부르거나 땡스기빙을 주제로 한 미술작업을 하기도 하고, 간단한 소품이나 의상을 활용해 역할극을 하기도 한다.

학교나 교회, 가정에서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땡스기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도 땡스기빙이 다가오면 칠면조 그림 옆에 고마운 사람들과 감사할 일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들고 오곤 했다.


매년 이맘때면 떨어져 사는 가족 생각이 간절하다. 타향에 남편과 아이들과 나 이렇게 넷이 전부인 우리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곳을 떠나면서 매년 땡스기빙을 근처 여행으로 대신해 왔다.

올해는 서울에서 다른 해보다 이른 편인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 - 가족이다.

미운 듯 고운 듯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한 그 제각각 목소리가 오늘 유난히 그립다.


한 줄 요약: 가족이 곁에 없는 명절은 외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의 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