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J 생일에 부치는 글
"출혈이 계속되면 수술받으셔야 합니다."
며칠째 계속된 유산의 징후에, 주치의한테서 들은 말이다.
임신 주수가 12주를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 때였다.
이상 증세를 느끼고 찾아간 동네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초음파상 정상이라고 했다. 그때 초음파로 처음 본 아기는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 증세는 계속되었고, 결국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날 저녁이라도 배가 아프면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말에, 딛고 선 땅이 나락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날 밤은 지금까지 살아본 중 가장 길고 하얀 밤이었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이 어떻게 하룻밤만에 몽땅 이해될 수 있는지 기막혔다.
다음날 찾아간 병원에서는 임신이 잘 진행되고 있고 아기도 건강하며, 다만 이상 증상의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회사에 급하게 병가를 내고 엄마 아빠 집에 가 누워 지냈다. 그렇게 한 주를 꼬박 누워만 있으니 어느새 유산의 징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꿈에서 어릴 때 뛰놀던 외가의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집채만 한 호랑이를 보았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아기의 움직임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날 이후 예정일을 사흘 넘긴 날까지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을 했다.
조그만 출판사 편집부는 모두 친하고 편했다. 매일 그들과 어울리고 글을 대할 수 있어,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웠다.
예정일이 지난 지 나흘째 되던 날 새벽 약간의 통증을 느낀 나는 바로 병원에 갔고 입원 열네 시간, 진통 두 시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작고 빨갛고 한쪽 눈만 뜬 채 아기는 나와 처음 만났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서 웃음이 터져본 것도 처음이었다.
입원실이 부족해 분만실 옆 회복실에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엄마가 된 첫날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창 밖은 온통 함박눈이었다. 굵은 눈발이 마치 아기의 뽀얀 살처럼 탐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하루종일 소낙눈이 내리던 그날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발표했다.
"헤이, 딸, 생일 축하해!"
"응, 낳아줘서 고마워!"
언제나처럼 주고받은 생일축하 메시지. 우리 둘이 함께 애쓴 그날의 기억을 반추해 보는 고마운 날이다.
딸의 생일은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날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세상에 온 모든 이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