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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08. 2023

테리

하루종일 눈발이 날린다.

한동안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겨울이 뒤늦게 정신이 드나 보다. 요 며칠 계속 눈이 내린다.

눈 오는 하늘을 바라보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 눈길을 아래쪽으로 던졌다. 조그만 검정 강아지가 보호자와 산책을 하고 있다. 신이 나는지 꼬리를 살랑대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강아지. 줄을 잡고 있는 남자는 강아지가 이끄는 대로 묵묵히 따라다녀 주고 있다.

저 멀리 강아지 두 마리의 줄을 잡은 여자가 나타났다.

울타리 때문에 그들은 서로 볼 수 없지만, 4층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겐 모두가 마치 한 폭의 그림에 담겨있는 듯하다.

갈색 강아지 두 마리는 눈 쌓인 화단을 열심히 냄새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누가 다녀갔을까, 눈 속에 뭐가 숨어있을까 알아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잠시 갈색 강아지들에게로 눈을 돌린 사이, 검정 강아지는 숫제 눈 속에 코를 파묻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작은 몸이 몽땅 눈에 파묻힐 것 같았다.

그들의 눈 속 산책을 보며, 누렁 검정 털색을 한 몸에 모두 가졌던 강아지가 생각났다.

작고 앙증맞은 몸집, 활달하고 귀여운 몸짓의 소유자, 그의 이름은 테리였다.


아빠 친구분인 K 아저씨의 노란 서류 주머니 안에 담겨,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안 된 테리가 우리 집에 왔다.

대학 3학년 중간고사 기간, 집에 혼자 있던 나는 그렇게 테리를 처음 만났다.

테리는 바닥에 놓아주자 바들바들 떨며 소변을 보고는 방 귀퉁이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아주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캥' 짖으며 내 손을 깨물려했다.

K 아저씨는 아빠에게 강아지를 키워볼 것을 계속 권하셨고, 아빠의 만류에도 기어이 당신의 반려견이 낳은 테리를 데리고 오신 거였다.

옛날 사람인 아빠는 강아지를 한낱 집 지키는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분이었고, 엄마는 동물을 극도로 싫어했다. 친구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 우리도 키우자고 조르다가 야단도 많이 맞았다. 잠깐만 데리고 있겠다고 들인 친구네 강아지와 함께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한 번은 외할머니께서 하얗고 복슬복슬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다 주셨는데, 며칠 만에 엄마가 돌려보내고 말았다. 학교 갔다 와서 텅 빈 강아지 집을 보고 대성통곡하던 기억이 난다.


친한 K 아저씨의 선물이라 할 수 없이 테리를 받아들인 부모님은 그러나 몹시 냉담했다.

첫날 거실 조그만 방석에 자리를 잡은 테리는 밤새 낑낑댔다. 어리디 어린 강아지가 엄마와 형제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나는 몰래 테리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내 이불속에 재웠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부모님이 잠들면 나는 테리를 내 방으로 데려와 놀아주고 나서 함께 자곤 했다.

동생과 나는 반려견 키우기에 관련된 책을 사서 읽었고, 테리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사들였다. 아빠는 여전히 테리를 본체만체했지만, 엄마는 물과 밥을 챙겨주며 테리와 점점 친해졌다.

테리는 자라면서 까맣기만 하던 털 사이로 금빛 털이 반짝이며 돋아났고, 애교 많고 발랄한 성격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번갈아가며 집에 남아 테리가 혼자 있지 않게 했고, 털이 너무 자라나 눈을 덮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털 관리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반려견 문화가 덜 발달했던 시절, 정보도 지식도 부족했다. 산책은 일주일에 한 번이 고작이었고, 바쁠 땐 잘 놀아주지도 못했다.

TV에서 강아지 훈련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테리 생각이 난다. 못해준 게 너무 많아 미안한 마음이 사무친다.

그러나 미안한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내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전부터 테리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하던 아빠는 이제 정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병원에, 아빠는 일터에, 동생은 군대에, 그리고 나는 결혼해 따로 살고 있으니 테리를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들 엄마의 입원과 수술로 넋이 나간 듯했다.

테리를 내가 데려오겠다고 했으나, 아빠는 이미 직장 후배에게 말해 놓았다며 어느 날 갑자기 테리를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테리와 이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 후 테리가 잘 지낸다는 소식을 몇 번 전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테리가 우리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데리러 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를 테리를 생각하며 나는 쓰라리게 울었다.


지금쯤은 테리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테리와 끝까지 함께해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동물을 좋아한다는 말조차 자신 있게 못 하고 살아왔다. 선뜻 다시 반려동물을 데려오지 못하는 것도 그때처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테리에게 못 다해준 것들을 다른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해 주고 싶다.


테리야, 부족한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나중에 다시 만나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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