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쌀쌀하던 3월 어느 주말, 뉴욕 맨해튼에 있는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MoMA)에 갔다. 지난가을에 갔던 MoMA PS1과는 형제 같은 미술관이다.
19세기말 미술가들은 전통을 벗어나 현대미술을 창조했다.
모더니즘과 현대미술의 탄생은 산업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산업혁명으로 제조, 운송, 기술 분야는 빠른 변화를 맞게 되었고, 이는 서유럽, 북아메리카, 나아가 전 세계 사회, 경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이전 화가들은 부유한 후원자나 교회 같은 기관의 의뢰로 종교나 신화에 관련된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어 많은 화가들이 개인적 경험이나 스스로 선택한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꿈이나 상징, 색(color) 등을 새로운 기법과 매체를 이용해 표현했다.
MoMA는 아방 가르드(Avant-garde; 문화, 정치, 예술 분야에서 혁신적, 실험적, 창의적 기술과 사상을 가진 그룹) 예술가들의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작업이 무르익어 가던 18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연대별로 분류된 여섯 개 층의 전시를 맨 위층부터 보기 시작했다.
6층에서는 비디오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스탠 밴더빅(Stan Vanderbeek, 1927-1984)의 'Movie-Drome(1965)'은 천장이 둥근 돔 형태의 소극장 안에서 비디오와 슬라이드가 번갈아 상연되는 작품이다. 흑백과 컬러, 소리와 묵음이 교차하며 시각의 빠른 움직임(visual velocity)을 유도한다.
작품들 중에는 익숙한 작가의 잘 모르던 작품도 있었고, 아예 모르던 작가도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과 쿠프카의 그림이 그랬다.
같이 간 딸과 함께 오래오래 들여다본 그림이 있다. 바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피아노 레슨(The Piano Lesson, 1916)'이다. 학교 미술시간에 '야수파'라 배운 마티스 그림의 특징은 강렬한 표현과 선명한 색채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열린 창으로 보이는 초록빛을 빼고는 어두워 보인다. 그가 그린 다른 그림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여서 오래 바라봤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고 경쾌한 색감으로 봄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 있다. 스테타이머와 웨슬만의 작품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탐 웨슬만의 작품 'Still Life' 속 오렌지, 꽃, 스위치, 라디오, 식탁보 같은 일상의 사물들이 마음을 밝고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로버트 로젠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음영(Shades, 1964)'이다. 이 작품은 플렉시글라스라는 투명한 아크릴 판에 새긴 것으로, 하나의 고정된 판과 바꿀 수 있는 다섯 개의 판이 전구와 함께 알루미늄 틀에 끼워져 있다. 이것은 로젠버그의 첫 번째 일러스트레이션 책으로, 종이 대신 알루미늄과 아크릴 판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을 보며 문득, 글도 이처럼 여러 언어가 겹치고 합쳐 쓰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이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본연의 언어들이 모여 비로소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되는 것이리라.
피아노를 치는 여자의 표정과 포즈가 재미있는 나델만의 조각과, 루마니아의 조각가 브랑쿠시의 상상이 가미된 조각들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2층에서는 길러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길러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상영과 함께 이 영화의 세트, 디자이너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의 공동작업 과정, 소품과 인형 제작 과정, 그리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소개하는 기획전도 열리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 뿐 아니라, 미술관 곳곳이 뜯어볼수록 창의적이고 아름다웠다.
미술관 뜨락에 나와 잠시 바람을 쑀다. 빌딩 사이 하늘을 메운 구름이 정겨운 건 봄이기 때문일까.
꽃 대신 바람 냄새로 봄이 온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