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찾아서
New York New York 6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NYPL)에 갔다.
이름은 '공립도서관'이지만 독립법인이 설립하여 민간 기부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뉴욕 곳곳에 공립도서관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브라이언트 파크에 있는 이 도서관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건물의 공식 이름은 Stephen A. Schwarzman Building이며, 1911년 문을 열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도서관 1층 홀에서 열리고 있는 보물 전시회 Treasures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이 125년에 걸쳐 수집한 5천6백만 점 중 선정된 아이템들을 이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전시회장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공연예술과 관련된 전시품들이 있었다. 예술가들의 성격과 스타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물건들이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교향곡(Symphony No. 32 in G-Major, K. 318, 1779) 악보 원본이다.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해 음악의 신동이라 불린 모차르트는 24세에 파리 여행에서 돌아와 이 곡을 썼다.
집에 와 들어보니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나, 기존의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난 호른, 베이스 악기들의 독립된 파트 등, 협연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곡이었다.
모차르트가 직접 쓴 악보를 보다니 꿈만 같았다.
모차르트의 악보 옆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의 구두가 있었다.
토스카니니는 라 스칼라 음악극장, 뉴욕 필하모닉, NBC 교향악단의 지휘자를 역임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다. 역동적인 지휘로 말미암아 수십 개의 지휘봉을 부러뜨리고 고질적인 오른쪽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의 신발은 영국 구두회사에서 바닥에 미끄럼 방지 기능을 추가해 특별 제작한 것이다.
토스카니니의 신발 옆으로 에밀 베를리너(Emile Berliner; 1851-1929)의 그라모폰이 보인다.
1887년 그는 자신이 만든 이 음반과 재생기로 특허를 받는다. 토마스 에디슨의 실린더 축음기가 막 상품화되려 할 때였다. 베를리너는 그 후 실린더 대신 플랫 디스크에 녹음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아동문학은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며 독립된 장르가 되었다. 이 시기 계몽주의의 도래로, 아동기는 성인기와 구별되는 개인의 초기시절로 정의되기 시작한다. 초기 아동문학은 도덕, 종교, 교육적인 지침을 반영하다가 점점 아이들의 상상력과 정서발달을 풍요롭게 돕는 글들로 발전했다.
도서관은 4십만 점의 다양한 아동문학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인형상자(The Doll's Casket, 1810)는 손그림이 그려진 열두 개의 미니북이 들어있는 귀한 아이템이다. 게임을 위한 종이도 함께 있다.
종교 파트의 전시품들은 세계 여러 곳의 종교적, 정신적 신앙을 드러내 준다.
댐밸라 베베 플래그(Damballah veve flag, 1990)는 스팽글과 구슬로 정교하게 장식돼 있는,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물건이라고 한다. 가톨릭 의식과 도상학(Iconography)이 서아프리카의 종교의식에 스며듦으로써,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해야 했던 아프리카 노예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댐밸라는 지혜와 풍요의 영혼을 상징한다.
팔리어로 적힌 불교 기도문(18세기)이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의 설법이 팔리어로 구전되다 기록되었으므로, 팔리어는 불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언어라고 한다. 불교 경전은 2,000여 년 동안 야자수나 대나무 조각에 기록돼 왔다. 팔리 경전은 팔리어로 보존된 소승불교의 표준경전이며, 이 기도문은 붓다의 설법뿐 아니라 버마(현 미얀마)의 수도승들이 지켜야 할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Bible, 1611)의 초판 모습이다. 킹 제임스 성경은 가장 널리 보급되고 영향력이 큰 영문판 성경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 제임스 1세 시절, 47명의 학자로 구성된 팀이 8년에 걸쳐 만들어낸 결정판이다. 이 성경의 텍스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최초로 영어로 번역해 대중화한 틴데일 성경(Tyndale Bible)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에게 <올리버 트위스트(1839)>, <크리스마스 캐럴(1843)> 등으로 잘 알려진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테이블과 의자다. 그는 <어려운 시절(1854)>의 초고를 이 의자에서 썼으며, <위대한 유산(1861)>을 이 테이블에서 집필했다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Comedies, Histories, & Tragedies(1623)>이다. 이 책은 'First Folio'라고도 불리며, 영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힌다. 36개의 작품이 들어있으며, 이중 <템페스트>, <맥베스>, <헨리 8세> 등 18개 작품은 초판 인쇄로 보인다고 한다.
사진작가 조지 찰스 베리스포드(George Charles Beresford; 1864-1938)가 찍은 버지니아 울프(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우)의 사진이다. 1902년 베리스포드가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는 첫 수필을 발표하기 전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였다. 편집자이자 저자인 그녀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Leslie Stephen; 1832-1904)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보인 문학적 소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1904년 울프는 브론테 가에 대해 쓴 첫 수필을 발표했고, 1907년에는 성(gender)에 대한 관점을 피력한 첫 단편을, 1915년에는 첫 소설을 발표했다. 1922년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1925)>으로 이어지는 짧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1918년 11월 16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다. 그녀는 평생 일기를 썼으며, 그녀의 일기에는 다른 모더니스트 작가들, 그들의 작품과의 깊은 연결이 드러나 있다. 이 일기에서 그녀는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 출신으로, 모더니즘의 대표적 소설가; 1882-1941)에 대한 미지근한 감정과 T. S. 엘리엇(미국계 영국 시인, 극작가; 1888-1965)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오리지널 '곰돌이 푸와 친구들(Winnie-the-Pooh and Friends, 1921)'의 모습이다.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은 1921년 첫 번째 생일에 런던 해롯 백화점에서 산 테디베어 푸를 선물 받는다. 그 후 이요르, 피글렛, 캥거, 티거가 푸의 친구들로 함께 있게 되었다. 크리스토퍼의 아버지 A. A. 밀른은 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동화 <Winnie-the-Pooh(1926)>와 <The House at Pooh Corner(1928)>를 썼다.
1947년 미국에 건너온 이 인형들은 밀른의 발행인 E. P. 더튼이 1987년까지 소장하다 도서관에 기증했다.
오늘날 뉴욕공립도서관의 주요 전시품이 된 '곰돌이 푸와 친구들'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있다.
어릴 때 즐겨 읽던 로버트 루이슨 스티븐슨의 <보물섬>이 생각났다. 우연히 얻은 보물섬 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는 동화와 소설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돼왔다.
어릴 때 상상했던 보물은 그림책에서 본, 영롱하게 빛나는 금은보화였다. 보물이 상징하는 건 일확천금, 바꾸면 돈이 되는 귀중품을 손에 넣는 게 곧 보물을 얻는 걸 의미했다.
진정한 보물은 무엇일까. 도서관에 전시돼 있는 물건들처럼,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예술가들의 기록, 그 처절한 고뇌의 흔적이 아닐까.
이렇게 남기는 한 편 한 편의 글이 세상 모두에겐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겐 소중한 보물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브런치스토리는 수많은 보물이 있는 보물섬인 셈이다.
✳︎ '헬로, 뉴욕', '아파트와 리쿠르트', '지하철과 딤섬' 등 저의 뉴욕 이야기가 담긴 글은 <데일리 뉴욕>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