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May 09. 2023

드라마 좋아하세요?

Do you enjoy watching TV shows?

유튜브라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 사회, 언론, 문화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유튜브가 첫 동영상을 업로드할 무렵 나라밖에 나와 살게 된 내게 만약 유튜브가 없었다면, 조명이 몇 개 꺼진 무대처럼 어둑한 해외생활이 됐을지 모른다. 알고리듬에 끌리거나 필요한 걸 찾아보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깨알 같은 재미를 누리고 있다.


가끔 지나간 옛 드라마를 찾아볼 때도 있다. 시리즈, 시트콤, 단막극, 특집극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학창 시절을 보낸 1980년대와 신혼시절을 지낸 1990년대 드라마들을 다시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들의 젊을 때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 추억을 불러오는 장소와 물건들을 생생하게 볼 수도 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흐른 시간이 모두 사라진 듯한 느낌,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같다.

지금의 정서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들, 지금이라면 욕을 얻어먹을 장면들이 나올 때면 쓴웃음이 난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부모,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 그리고 남녀의 역할을 선명하게 구분 짓는 대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드라마 속 어른들의 행동에 슬그머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이 멀지도 않은 과거에 여과 없이 방영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최근에 본 드라마는 공모전에서 입상했다는 1998년 작품이다. 자신이 누구란 걸 숨긴 채,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 여자친구 집에 셋방을 드는 어머니. 그녀는 해외에 있는 아들과 여자친구를 떼어놓기 위해 둘 사이를 방해하기도 하고, 여자친구의 사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기도 한다.

지금으로선 말 안 되는 설정과 어색한 대사들이 내 인내심을 자꾸 건드렸다. 여자친구에 감정이 실린 나는 오글오글 부글부글 주체를 못 하다가 그만 멈춤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뒤 문득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결국 다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한 집에 살며 정이 든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둘도 없는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가 된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역시 드라마는 해피엔딩이거덩" 중얼거리며 감동의 눈물을 훔친 나는 진정한 신파 애청자가 아닐까.


어릴 때부터 드라마가 좋았다. 내가 두세 살 무렵 방영되던 드라마 '아씨'의 주제가 첫 소절이 지금도 생각난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어린애가 하도 구성지게 불러 젖혀서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밤늦게 하는 드라마가 보고 싶어 안 자고 기다렸다가 어른들 몰래 방문 틈으로 훔쳐본 적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드라마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멋진 대사를 외워 써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내 드라마 사랑은 깊어갔다.


첫 아이를 낳고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나는 우연히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의 수강생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아이를 키우며 글도 써보겠노라 야무진 꿈을 꾸었다.

유명 드라마 작가들의 특강과 담임 작가님의 세심한 지도, 대본 쓰기 과제와 평가로 꽉 찬 시간을 보냈다. 그전부터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공부를 하면서는 드라마의 대사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 귀에 머물렀다. 드라마를 보며 다음 대사를 맞출 때도 많아졌다. 극의 구성과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머리 위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다면 아마 수도 없는 말풍선과 생각풍선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과제는 몹시 힘들었다. 소재를 찾기도,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가기도 어려웠다. 대학 때부터 글쓰기와 거의 담을 쌓은 채 살고 있던 나는 과제를 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방송작가 교육과정을 수료할 무렵, 친한 선배의 빈자리를 채워주다 초등학교 영어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더 많은 삶의 경험을 쌓은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글쓰기와 드라마 ⎯ 그 후 무슨 일을 하든 내 가슴 한편에서 언제나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드라마는 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주제로 삼으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다시 드라마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순환이 일어난다. 드라마의 OST나 패션, 유행어 등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작가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좋은 글, 짜임새 있는 스토리 전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드라마 속 인물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얻기도 한다.

결말을 열어놓는 드라마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인 드라마 안에도 진실은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옛 드라마와 그걸 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던 내 마음 한 조각이 거기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