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Apr 01. 2022

나의 기억

나는 무엇인가?

물리적 의미로서의 나는 '나의 뇌'이고, 철학적 의미로서의 나는 '나의 기억'이라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들어 무언가가 기억나지 않을 때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나이 먹는 게 실감 나기도 하고, 망각과 노화를 나도 모르게 연결 짓고 있는 게 웃프기도 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기억 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잊어버릴 게 많은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버리면 될 텐데, 마치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 안 어디에선가 초조함이 고개를 든다. 기억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면 나는 어쩌면 더 이상 나일 수 없다는 공포심도 생겨난다.


당장 써먹어야 할 단어나 지식의 편린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절의 나에 대한 기억이다.

오늘 갑자기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오래된 CD를 틀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가 있었다.

그 시절 내게 소중한 친구였던 S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엘비스를 좋아했었고, 직접 녹음한 그의 노래 테이프를 내게 선물했었다. 나는 그 테이프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음악과 함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나의 오감을 거쳐 생생해지기 시작했다. 어리고 감수성 예민했던, 그래서 도전적이고 용감했던 그때의 우리들... 그 감미로움에 취하여 나는 요즘의 답답한 상황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음악의 위대함이다. 음악만 있다면 타임머신 없이도 가고 싶은 시절로 얼마든지 되돌아가 그때의 나를 느낄 수 있다.


지나온 시절의 "나"들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나"도 있다. 그 안 좋은 느낌의 "나"들이 지금의 삶을 때로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미워했던 "나"도 사랑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게 있다면 추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안 좋았던 기억들 조차 희미해지거나 절반 정도의 이해로 견딜 수 있어지는 걸 보면, 지금까지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을 때 추억이 더 소중해진다.


오늘 밤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꿈으로 꾸고 싶다.

외가 마당에서 뛰놀던 꿈을 꾸고 싶다.

나를 무한대로 사랑해 주셨던 외할머니가 계시던 햇빛 환한 봄날의 마당에서 마음껏 놀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