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이 사이의 잔재를 확인하러 거울 앞에 섰다.
같이 일하던 미국인 친구는 밥 먹고 나면 늘 "내 이에 초록색 있어?" 하고 물었었다. 우리는 이 사이의 고춧가루를 걱정하지만 샐러드를 많이 먹는 그들은 이 사이의 풀을 걱정한다.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나 혼자 웃으며 약 2초 간의 점검을 마친 후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멈칫한다. '얼굴도 한번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는 거울로 몸의 특정 부위만 확인했지,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러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쓴웃음이 난다.
거울을 가장 열정적으로 들여다봤던 때는 역시 사춘기 때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거울과 멀어졌다.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더욱 거울을 안 보게 되었다.
어쩌면 거울을 보는 횟수와 나 자신에 대한 관심도는 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빠서 거울 보는 일이 소홀해지던 때를 지나, 이제는 나이 들어가는 게 보기 싫어 거울을 피하게 되는 것 같다. 늘어가는 주름과 처지는 피부가 나를 자꾸 거울에서 밀어낸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어 진다.
내면의 나와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와 만나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지금 어떤지 표정과 안색을 살피는 것도 나를 돌보는 한 방법이다.
나와 눈 맞추고 나를 바라보기 위해 거울을 보자. 찬찬히 꼼꼼하게 내 얼굴을 살핀 후 "아, 예쁘다" 한 마디 해 주자.
물리적으로 나이 들어감은 숫자나 줘 버리고, 자유로워지자.
하루 중 나 자신과 주파수를 맞출 때는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할 때, 그리고 글을 쓸 때이다.
늦잠을 자거나 바깥 볼 일이 있는 날을 빼고는 꾸준히 아침 스트레칭을 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요가 동작들과 조합해서 나만의 짧은 스트레칭 동작을 만들었다. 매번 번거롭게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의 동작들을 하면 된다.
스트레칭을 하며 내 몸 구석구석에 인사를 한다. "잘 잤니? 아픈 데는 없어?"
숨을 좀 돌리고 싶을 땐 반듯이 누워 창 밖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멍 때리기를 한다.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생각도 붙잡지 않고 그냥 흘려보낸다. 그러면 내 몸을 잠깐 떠났던 마음이 한층 가벼워져 돌아온다.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글을 쓸 수 없었던 지난날의 내가 생각난다. 나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글 쓰는 일로 힘겹게 시작했었다. 글쓰기는 마치 나 자신이 탈탈 털리는 듯한 쑥스러움을 동반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나면 몹시 허전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비워낸 자리에 치유와 사랑이 채워진다.
긴 겨울을 지나 짧은, 그러나 찬란한 봄이 오는 이곳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이제 봄을 맞은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전부 내 글로 옮겨놓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그러기엔 부족하기만 한 나의 글솜씨 사이에서 가끔은 끙끙 앓기도 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글쓰기가 주는 희열을 넘지 못한다.
글쓰기는 나의 감정들을 꺼내어 빛을 비추어 준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