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커피를 별로 즐기지 않는데, 오늘 아침 커피는 정말 오묘하다.
삼키고 나면 살짝 신 맛이 나면서 코에서 향기가 느껴진다. 봄의 냄새 같다.
내 취향이 아니면 별로 관심 없어하는 나에겐 신기한 체험이다, 내가 달달한 커피가 아닌 블랙커피가 좋다고 느끼다니...
지난겨울 차를 타고 가다가 추위에 얼어붙은 강을 보았다. 호수가 얼어있는 걸 보는 것보다 강물이 얼어붙어 있는 걸 보는 게 더 춥게 느껴졌었다. 늘 흘러 움직이던 강물이 꼼짝없이 서있는 게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슬펐었다.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게 있다면, 앞으로 가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게 있다면 글을 써서 흘려보내 줘야지 생각했었다.
더 이상 지난날로 돌아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니까. 그리고 나도 그 시간 안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앞으로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 시간과 상관없는 것들에게도 괴리감이 느껴진다. 나와 같은 세월을 살아온 이들과 공유했던 것들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과의 추억은 따뜻하고 그리운데, 지금의 그들과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나누지 못할 것 같다. 심지어 예전의 나도 내가 아닌 것 같다.
예전의 관계들이 다르게 보이고, 예전의 내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고, 예전에 그들과 공감했던 것들을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는 것,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다른 환경에서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만들어 낸 거리감, 우리가 겪은 삶의 변화들, 그리고 부족했던 우리의 소통...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 우리가 같은 시간을 다시 살 수 없듯이, 너와 나도 예전의 너와 내가 아니겠지. 그래서 외로운 건가 보다.
무언가를 매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나이를 먹고 나서야 깨닫는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일할 때였다.
아이들은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용변을 본다. 영아반을 주로 담당했던 나는 일정한 시간에 아기들을 먹이고 재우고 그들의 기저귀를 체크 업했다.
아기들은 각각 다른 성장 양상, 기질, 성격을 갖고 있어서 같은 시간에 잠들어도 깨는 시간은 각자 다르다. 같은 양의 음식이 주어져도 먹는 양은 각자 다르다.
모두 자기만의 루틴을 갖고 있고, 교사들은 그들의 루틴을 최대한 존중한다.
오랜 집콕 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나의 루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지만 이 심심한 반복 속에서 조그만 변화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매일 하는 건 중요하구나...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그걸 매일 하는 건 힘이 되는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던가.
나만의 루틴에 충실하는 것이 삶을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다.
견뎌내는 것 말고 이겨내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