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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Apr 08. 2023

집들이와 브런치

New York New York 5

집 정리가 끝나자 첫째와 둘째가 놀러 왔다. 아이들이 들고 온 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진 꽃다발을 화병에 꽂아 놓으니 집이 한층 밝아졌다.

좋아하는 영단어 중 하나가 Housewarming(집들이)이다. House(집)와 Warming(따뜻하게 하다)이 함께 만든 말, 집을 따뜻하게 하는 건 역시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가져온 건 꽃뿐만이 아니었다. 마침 집에 없어 사 와달라 부탁한 화장지 말고도 두루마리 휴지까지 있었다.

이사한 집에 휴지나 세제를 사가는 걸 어떻게 알았냐 물어보니 한국인 친구들끼리는 그렇게 한다고 한다. 다른 문화 속에서도 젊은 세대 사이에 굳건히 지켜지는 우리 풍습을 확인하고 왠지 뿌듯했다.


나는 아파트에 사는 게 좋다. 아이들이 어릴 땐 뜰이 있는 하우스에 살아 보기도 했지만, 역시 아파트가 편하다. 어린 시절 줄곧 아파트에서 자라서일까.

한창 활동적인 아이들을 위해선 하우스에 살아본 게 행운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학 기숙사로 떠나고 나서는 무척 허전한 공간이 되었다.

양가 부모님이 함께 오셔서 온 가족이 같이 지내기도 한 집이었다. 그렇게 꽉 찼던 집이 점점 비워져 가는 걸 보며, 이제 내가 떠나야 할 차례라고 느꼈었다.


아파트는 좋은데 땅과 가까이 살고 싶어 2층을 선택했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같은 블록에 프리스쿨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학교에 오가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열린 창문을 통해 들려온다. 학교에 늦어 부모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뛰는 아이들, 같이 뛰는 강아지, 유모차에 앉아 세상 구경을 하는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떠돈다.

프리스쿨 건너편엔 가톨릭 성당이 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열한 시가 조금 넘으면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학교에 오가는 아이들과 성당에서 나오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맑고 평온하다. 앞날의 희망에 마음을 빼앗겨서일까. 그런 그들의 표정을 닮아, 내 눈동자도 깊고 그윽해지길 소망했다.   


한국분이 운영하는 집 근처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온 가족이 함께 브런치라니 믿기지 않았다. 보고 싶을 때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하는 둘째를 먼저 보내고, 오후에 첫째와 맨해튼에 갔다. 커피를 사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아직은 여행 온 기분이다. 이곳도 삶의 공간으로 익기 시작하면 지금 느끼는 호기심은 언젠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란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영원을 알 수도 약속할 수도 없으나, 지금 이 순간의 행복만큼은 진짜기 때문이다.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


✳︎ '헬로, 뉴욕''아파트와 리쿠르트''지하철과 딤섬' 등 저의 뉴욕 이야기가 담긴 글은 <데일리 뉴욕>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dailyn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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