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ew York 7
이사를 마치고, 새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갔다.
DMV는 주정부의 차량 관리국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거나 신분증을 발급받는 곳이다. 따라서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지만, 미국의 공공기관 중 서비스가 가장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직원들 중 불친절한 사람이 많고 일 처리가 느리며 오래 기다리기로 악명이 높다.
미국에서 십여 년을 살아오며 DMV를 좋게 평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DMV에 가면 괜히 긴장하게 되고, 그래서 가기 불편해하는 곳이다.
다행히 나는 DMV에서 봉변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친절하게 대해주는 직원들도 만났다.
대신, 평이 안 좋기로 DMV와 막상막하인 우체국에서는 몇 번의 불친절을 경험해야 했다.
집으로 배달 온 소포를 외출 때문에 받지 못해 우체국으로 찾으러 간 적이 많다. 일을 볼 수 있는 창구 서너 개 중 한 두 개는 늘 비어 있어 기다리는 줄이 길다.
한참을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면 갑자기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 십여 분이 지나도록 안 나타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뭘 물어보거나 다시 한번 말해달라 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직원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친절한 일을 겪으면 무조건 인종차별로 귀결 짓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에 될수록 신중하게 판단하려 노력하지만, 우체국에서는 '이런 게 바로 인종차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온라인에서 DMV 시간예약을 하고 신청서류를 프린트아웃해 작성했다. 남편과 크로스 체크까지 해가며 필요한 서류를 꼼꼼히 챙겼다. 그곳의 분위기를 잘 아는 만큼 트집 잡히기 싫어서였다.
DMV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처음 가는 곳이고 예약 시간이 아침 일찍이라 택시를 탔다.
예약 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는데 입구에 서있던 보안담당 직원이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출입문 앞 안내담당 직원은 우리가 가야 할 창구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예약을 했어도 오래 기다릴 거란 예상과 달리 진행이 빨랐다.
준비해 간 서류와 신분증을 보여주고 접수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었다.
시카고 DMV 보다도 넓고 쾌적한 실내에 기분이 좋아졌다. 공식적으로 뉴요커가 될 생각에 한껏 들뜬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20분쯤 기다리니 전광판에 내 번호가 떴다. 지정된 창구로 가 다시 서류와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런데, 남편과 내가 한 집에 거주함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간 집 계약서를 훑어보던 직원이 내 서명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서명은 부속서류에 있다. 그러나 그 서류 또한 계약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계약서 상단에 남편 이름과 내 이름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이 가리킨 곳에 서명이 없으니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답답해서 몇 마디 설명을 하니 그녀의 눈빛이 방어적으로 돌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이, 옆 창구에서 무사히 새 운전면허증을 받은 남편이 와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서류를 더 가지고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허무하게 DMV를 나서며 한없이 억울했다. 최선을 다해 서류를 준비했고, 게다가 택시비까지 들여가며 온 걸 생각하니 속상했다. 예약하고, 시간을 들여 발걸음을 하고,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할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엇보다, 내가 내 집에 살고 있는 걸 더 이상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어이가 없었다.
바로 옆 창구라 사정을 들은 남편 담당직원이 미안했는지, 리얼 아이디(Real ID; 50개 모든 주에서 인정해 주는 미국 내 신분증)와 운전면허증을 통합해 발급하느라 심사가 더 까다로워져 그렇다고 남편에게 위로 비슷한 설명을 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추가 서류로 쓰기 위해 내 은행 계좌 하나를 더 열었다. 우리 일을 봐주던 은행직원이 DMV 얘기를 듣더니, 거절당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DMV 험담을 한바탕 늘어놓았다.
이렇게, 말로만 듣던 DMV의 진면목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주거지 확인 관련서류 하나를 더 준비해, 은행직원이 알려준 다른 DMV에 간 나는 마침내 뉴욕주 리얼 아이디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 이 글은 <데일리 뉴욕>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dailyny.net/archives/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