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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May 01. 2023

나의 시간

허리가 뻐근하다.

무거운 책을 나르다 삐끗한 후부터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침에 몸을 일으킬 때마다 허리를 넘어 온몸이 바늘에 찔리는 듯하다.

아침나절 내내 뻣뻣함이 계속된다.

몸을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기도, 설거지를 하기도, 기침을 하기도 겁이 난다.

그러고 보면, 요 몇 년 사이 하나 둘 아픈 곳이 생겨 있다.


영유아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팔을 타고 등과 어깨로 넘어가 팔을 뒤로 돌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일과 나이가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라도 내는 것 같았다.

희한한 건, 막상 출근해 교실에 들어가면 통증이 싹 사라지는 거였다. 퇴근하고 집에 와 잠자리에 들면서부터 다시 시작된 통증은 다음날 출근길을 몹시 괴롭혔다. 그러나 아이들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아무렇지 않았다. 긴장과 집중이 아픔을 감지하는 신경을 잠재우기라도 했던 걸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등의 통증은 지금도 가끔씩 살아나지만, 어깨와 손목은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많이 나아졌다.


그렇게, 내 몸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릴 때 나를 예뻐해 주던 어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내 눈에 건강하고 고왔던 그분들의 모습은 내가 자라면서 점점 약해져 갔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들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성과 소멸, 태어나 살다 죽음을 맞이함은 자연의 섭리지만, 그걸 지켜보는 건 왠지 슬프다.


3년 전 팬데믹이 시작되고 낯선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일을 하러 나가는 대신 재택근무를 했고, 카메라를 통해 만남을 가졌으며, 집 밖을 나설 땐 언제나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상생활의 리듬이 바뀌고 세상은 깊은 침묵 속에 빠졌다.

시간의 흐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은 흐르고 있는데, 내 삶은 흐르지 않고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내 시간과 세상의 시간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 낯선 감정은 세상을 떠돌던 알 수 없는 병에의 두려움과 섞여 마음 저변의 불안을 끄집어냈다. 마치 내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공포를 매 순간 기억하며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면 일상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세상의 시간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나, 나의 시간은 언젠가 끝이 난다. 그리고 끝이 있기에 나의 시간은 더 소중하다.

똑같은 날들, 평범한 일상에 질려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들이 일상이라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의미 있는 순간의 연속이 바로 나의 시간이 되는 이유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나로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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