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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Sep 17. 2022

바닷가에서

오랜만에 동해 바다에 왔다.

물에 들어가는 건 끔찍하게 싫으면서도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신혼 때 남편과 놀러 간 부산에서 밤바다에 반한 뒤, 헤어진 연인에게 한 조각 남긴 차마 거두지 못한 마음처럼 밤바다가 문득 그리워지곤 했다.

멀리서 몰래 훔쳐보듯 숙소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다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닷가로 뛰어내려 간다.


밤바다는 낮 바다와 다르다.

높게 뛰어올랐다 부서지며 내려앉는 파도는 분노가 가라앉고 평화로워지는 마음속 같다.

끝 간 데 없는 검은 수평선은 닿을 수 없는 곳, 내가 가진 한계를 정직하게 알려주는 듯해 두렵고도 신비롭다.

바다의 웅대함 앞에 작아지는 대신 마음을 활짝 열어 그 짜고 비릿한 향기를 품어 보려 한다.





테라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 어느 음악보다 아름다운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파도의 불규칙한 리듬이 재즈의 자유로움을 닮았다.

바다에 취하고 취하여 아침임에도 몽롱하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감정을 행복감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릴 때 가족과 놀러 갔던 바닷가 -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했던 흙장난, 커다란 꽃 모양이 콩콩 박힌 고무로 만든 수영 모자 속에 모래를 가득 퍼담던 일, 햇볕에 등이 홀랑 타서 껍질이 벗겨지던 일, 그리고 셀 수 없는 별들이 교교히 떠있던 밤의 바닷가가 떠오른다.    

총총한 별들과 하얀 물보라는 서로 바라만 볼뿐 닿을 수 없었다.

내가 그리움을 배운 곳은 아마도 바닷가였을 것이다.


바다는 내게 일탈이면서 동시에 일상에의 열망이기도 하다.

이제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바다를 그리워하겠지.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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