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by Anna Lee

오랜만에 동해 바다에 왔다.

물에 들어가는 건 끔찍하게 싫으면서도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신혼 때 남편과 놀러 간 부산에서 밤바다에 반한 뒤, 헤어진 연인에게 한 조각 남긴 차마 거두지 못한 마음처럼 밤바다가 문득 그리워지곤 했다.

멀리서 몰래 훔쳐보듯 숙소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다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닷가로 뛰어내려 간다.


밤바다는 낮 바다와 다르다.

높게 뛰어올랐다 부서지며 내려앉는 파도는 분노가 가라앉고 평화로워지는 마음속 같다.

끝 간 데 없는 검은 수평선은 닿을 수 없는 곳, 내가 가진 한계를 정직하게 알려주는 듯해 두렵고도 신비롭다.

바다의 웅대함 앞에 작아지는 대신 마음을 활짝 열어 그 짜고 비릿한 향기를 품어 보려 한다.


0A356DCD-3808-4208-A056-67CF9178FC14_1_201_a.jpeg




테라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 어느 음악보다 아름다운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파도의 불규칙한 리듬이 재즈의 자유로움을 닮았다.

바다에 취하고 취하여 아침임에도 몽롱하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감정을 행복감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릴 때 가족과 놀러 갔던 바닷가 -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했던 흙장난, 커다란 꽃 모양이 콩콩 박힌 고무로 만든 수영 모자 속에 모래를 가득 퍼담던 일, 햇볕에 등이 홀랑 타서 껍질이 벗겨지던 일, 그리고 셀 수 없는 별들이 교교히 떠있던 밤의 바닷가가 떠오른다.

총총한 별들과 하얀 물보라는 서로 바라만 볼뿐 닿을 수 없었다.

내가 그리움을 배운 곳은 아마도 바닷가였을 것이다.


바다는 내게 일탈이면서 동시에 일상에의 열망이기도 하다.

이제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바다를 그리워하겠지.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23D56714-EAA0-429E-87E4-0CD2C2803C9B.heic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