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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02. 2023

뜨거운 이별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2022년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인생은 아름다워(2022)>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입니다. 흘러간 대중음악을 소재로 만들어, 동전을 넣고 음악을 골라 듣는 음악상자(Jukebox)라는 이름이 붙여진 뮤지컬 장르죠. 영화의 플롯과 노래를 맞춰야 하기에 자칫 어색한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이미 아는 노래들이라 관객이 식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영화 초반에 시한부, 게다가 첫사랑 이야기까지 나오자 역시 마음 비우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뻔한 스토리, 오글오글한 춤과 노래 장면들을 상상했거든요.


드디어 첫 노래 '조조할인(이문세, 1996)'이 옛 서울극장 앞을 배경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오글거림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 보려고요.

그런데 염정아, 류승룡 배우의 기막힌 노랫소리에 실눈을 뜬 저는 배우들의 발랄한 의상과 춤, 결 고운 화면에 그만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압도당한 채 영화를 보았지요.

배우들이 직접 부른 197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친 노래들과 우리 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친근한 캐릭터들, 그리고 노래에 기대지 않은 스토리는 몰입하기에 충분했거든요.


사진 vogue.co.kr


낙천적이고 덜렁대기 잘하는 세연(염정아)과 무뚝뚝한 남편 진봉(류승룡)의 이야기는 세연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고 3 수험생 아들(하현상)과 사춘기 딸(김다인)을 둔 엄마로, 주부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세연은 진봉에게 마지막 생일선물로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남편에게 첫사랑을 찾아달라니 말도 안 된다며 일축하는 진봉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둘은 세연의 첫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영화는 그 여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과 둘의 옛 추억을 노래에 담아 보여줍니다.


세연은 첫사랑 정우(옹성우)의 흔적을 찾지만, 숨어있던 사연에 세연도 또 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마터면 세월 속에 묻힐 뻔한 세연과 현정(심달기)의 우정도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진봉은 이별을 앞둔 아내를 위해 잔치를 열어줍니다.

가족, 친구들, 그리고 세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 현정(염혜란)도 함께합니다.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꽃피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곧 눈물을 거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잠시 화면이 멈춘 듯 세연과 딸 예진이 사람들 속에서 마주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곧 떠나야 하는 엄마와 보내는 딸, 바라보는 둘의 눈빛 속에 많은 이야기가 오감을 느낀 건 저뿐이었을까요.


사진 ize.co.kr


영화는 이렇듯 무겁고도 흔한 소재를 밝고 예상 밖인 마무리로 이끌어 갑니다.

명랑함 속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슬픔에 빠지려는 찰나, 누군가 내 어깨를 어루만지며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도 합니다.

군데군데 잊을 수 없는 장면들과 매일매일 흥얼거리게 만드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추억을 느끼는 세대에게도, 노래를 처음 들어보는 세대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선곡이었죠. 음악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도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 강도 높은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애썼다는 배우들의 노래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면 주위 사람들이 코러스가 되었다가 노래가 끝나면 다시 자연스럽게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플래시몹(flash mob)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영화에 있어 귀중한 시도였던 만큼, 앞으로도 이렇게 멋진 뮤지컬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건 지난가을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영화 곳곳에서 은행잎과 가을 풍경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알록달록 예쁜 색감, 청량한 화음, 첫눈 등 어느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 장면들이 영화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몇 가지 반전이 있지만,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세연이 사실은 세상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었던 걸 알게 됨이 가장 큰 반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뜨거웠던 그들의 사랑처럼 그들의 이별도 뜨겁습니다.

뜨겁게 뜨겁게 살아갈만한 세상입니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나요
눈부신 그 시절 나의 지난날이 그리워요
⎯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이문세, 2006)'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ZA4jJg0XG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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