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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Jul 15. 2023

꿈을 품은 박물관

New York New York 8

주말, 줄곧 내리던 비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 아스토리아에 있는 영상박물관(Museum of the Moving Image; MoMI)에 갔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 세 정거장, 걸어선 20분 거리다. 지하철은 주말엔 운행하지 않는 노선이 있거나, 중간 역에 정차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날도 36번가 역에 서지 않는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박물관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후덥지근한 날 땀에 끈끈하게 절어 도착한 박물관. 며칠 전 만든 공립도서관 카드를 써볼까 싶어 퀸즈 주민할인이 되냐 물었더니, 턱수염이 텁수룩한 매표소 직원이 노인, 어린이, 학생, 장애인 할인 밖에 없다며 매우 미안해했다. 괜히 물어봐 그를 당황하게 했나 싶을 정도로 미안해하던 그는 전시의 대강과 관람 순서에 대한 설명도 아끼지 않았다. 입장료는 20 달러, 약 25,000원이었다.


카페로 이어지는 모던한 입구


영상박물관은 1988년 개관 이후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어 왔으며 미국 내에서 예술과 영상기술 연구에 헌신해 왔다고 한다.

박물관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카우프만 아스토리아 스튜디오(Kaufman Astoria Studios)는 1920년대부터 뉴욕 영화촬영의 심장부를 담당해 왔으며, 많은 영화와 TV 쇼가 촬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주말엔 박물관 안에서 영화도 상영하고 있어, <스타워즈>를 보려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대로, 맨 위 3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옛 카메라와 TV


LAIKA: Life in Stop Motion 전시에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stop-motion animation; 물체를 수동으로 조작하며 각각의 프레임을 촬영함으로써, 마치 물체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의 기법을 엿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영상 만들기, 영화음악 입히기, 목소리 더빙 등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라이카(LAIKA)는 <코렐라인(Coraline, 2009)>,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Missing Link, 2019)>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로, 이들 작품은 모두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된 애니메이션이다.


<코렐라인> 세트


The Never-Ending Screen of Val del Omar는 스페인의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며 최초로 다감각적 경험으로서의 영화를 연구한 호세 발 델 오마르(Jose Val del Omar, 1904-1982)의 작품 전시였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 1993)>의 주인공 로빈 윌리엄스의 분장 3단계


<스타워즈> 액션 피겨들


짐 헨슨(Jim Henson, 1936-1990)의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우리에겐 <세서미 스트리트>로 잘 알려진 그는 <머펫 쇼>, <프래글 록>, <다크 크리스털>, <래비린스>의 인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형들과 캐릭터 스케치, 스토리보드, 대본, 사진, 의상들도 볼 수 있었다.



<The Muppets Take Manhattan, 1983> 모형 세트


여섯 살 무렵 우연히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었다. 방송국도 프로그램 이름도 생각나지 않지만, 녹화를 하던 기억은 생생하다.

나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또래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진행자의 질문에 한 사람씩 대답하고 나서 다 같이 노래하는 순서로 짜여 있었다. 우리보다 어른들이 더 긴장하던 모습, 내게 주어진 도형 맞추기 장난감보다 앞에 앉은 아이의 인형이 갖고 싶어 곁눈질하던 일, 그리고 하얀 토끼인형이 녹화 중 내게 다가와 굵은 목소리로 "다음이 네 차례야" 하는 바람에 그만 인형탈 속에 아저씨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일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나는 여전히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인형극, 만화영화를 재미있게 보며 자랐다. 나날이 발전해 온 인형극 제작기법과 수많은 예술인들의 노력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토끼인형 속 아저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게 해 줬는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했던 유년기의 마음, 그 꿈들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게 해 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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